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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선 Jun 02. 2018

디지털 디톡스가 아닌 휴먼 디톡스

나를 잃고 너무 복잡한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언어를 사용하며 감정을 지니고 타인과 불가피하게 유기적으로 맞물려 살아간다. 불가피하다는 의미는 인간들끼리 연결되어 있는 고리를 자의적으로 끊기가 힘들다는 의미이다.

고의적으로 연결고리를 차단하고 어디 깊은 산속으로 도망가지 않는 한, 인간은 데우칼리온과 피라가 어깨너머로 돌맹이를 던진 순간부터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게 만들어졌다.


어느 시점이라고 딱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인간들은 분명 과거부터 연결고리를 넓히려고 노력했음이 분명하다.

더 쉽고, 빠르고,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한 결과로 여러가지 발명품이 생겨났다.

편지를 시작으로 전보나 전화기, 이제는 유물 취급 받는 삐삐, 시간과 거리의 제약을 극복하고 서로를 연결 시켜주는 인터넷까지 발명되어 실시간으로 대화가 가능하게 되었다.

  

출처 : http://m.inh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7553


그러던 어느 순간, 인간관계에 신물을 느끼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회사에서 직원들, 업체사람들 또는 고객들과 부딪히는데 업무가 끝나고 나서는 친구들 혹은 심지어 가족들과도 부딪힌다.

여기서 부딪힌다는 의미는 관계가 틀어진다거나 싸운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단순하게

사람을 마주함을 내포하고 있는 의미로써 쓰였다.


함께 웃고 떠들며 즐거웠던 시간이 어느새 불편하게 다가온다. 짧은 심지에 불이 붙은 다이너마이트를 들고 있는 인질 처럼 시계를 힐끗 거리며 괜히 초조하다.

인간관계에서 그렇게 중요하다던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내 정신에 칼을 꽂는 할복 행위처럼 그려진다. 이런 사람들의 머리속에는 ‘한 순간이라도 조용히 혼자 있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꽉 차 있다.

 

이들은 사회성이 결여 된 것이 아니다. 단순하게 사교성이 부족하다며 비난할 수 없다. 단지 지나치게 간섭하고 참견하는 인간관계에 일순간 질려버렸을 뿐이다. 고리타분하고 이타적인삶을 강요하는 이 세상속에서 자신을 좀 더 찾고 싶은 욕망에 굶주려 있다.


다시 말해서, 현대 사회에서 사람과 사람간의 거리는 너무 촘촘하다. 큰 잉어를 잡기 위한 어망이 아니라 마치 개울가에서 떠내려오는 다슬기를 잡을 용도로 나온 그물망 처럼 좁혀져 있다.

실시간으로 메시지가 전달되는 인터넷의 발달로 단 한 순간도 타인과의 관계에서 벗어나기 힘든 상황에 갇혀 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메시지 하나를 보내는 순간에도 우리의 뇌는 신경을 쓰게 되어 있다.


한 달 일정표가 타인과의 계획으로 빼곡히 차있고, 각종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사생활을 공개하고 다른 사람으로 부터 관심, 즉 댓글이나 하트(Like) 받기에 중독된 이 시대의 사람들은 헨리 소로의 ‘월든(Walden)’이란 책을 탐독할 필요성이 있다.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Walden


월든은 1800년대 미국 ‘월든 호숫가’에서 혼자 집을 짓고 약 1년 6개월 동안 최소한의 물적자본과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며 살아온 저자 헨리 소로의 에세이다.

소로는 인간들이 집착하는 무조건적인 물직적 자본 추구가 얼마나 허망한지 비판하고, 그런 것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다는 원초적 삶을 직접 실천한다.

그는 실제로 자신이 직접 지은 작은 방 만한 집의 창가에 앉아 2시간 넘게 일광욕을 하며 사색하는 것을 즐겼다.


물론 소로의 같은 삶이 항시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무리를 지어 사회를 생성한다는데 그 의의가 있는 것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 사람들은 집단만이 중시되는 일방향적인 삶에 지쳐있다.

거절 할 수 없는 각종 모임들뿐만 아니라 사내회식이나 가족 모임까지. 심지어 단체로 소속되어 있는 채팅방에서도 퇴장하는 것을 미래의 관계를 위해 심각히 고민해야 하는 이 상황. 어쩌면 이 것이 개인주의 혹은 이기주의를 부추기게 되는 요즘 사회적 풍토의 원인이 아닐까.

소로의 경험은 과도하게 과열된 인간관계의 늪 없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인터넷과 각종 기계에 빠져 한 시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신드롬에서 벗어나고자 ‘디지털 디톡스(Degital Detox)’라는 말이 생겨났다.

생각해보면 사실 이 현실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기계에서 벗아니는 것이 아닌 인간으로 부터 잠시 벗어날 여유가 필요한걸 수도 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생각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휴먼 디톡스(Human Detox)’라 말하고 싶다.


역설적이지만 한 주를 되돌아 보는 의미로, 일주일에 하루쯤은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지 말고 자발적 히키코모리가 되어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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