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휴선 Oct 24. 2021

#20. 인간의 본성



"공모전 참가를 위해 부끄러운 수준으로 마무리 지었던 작품을 결과에 상관없이 끝까지 마무리 지으려 합니다. 브런치 북은 회차 추가가 불가능하여 21화 부터는 매거진에 올라갑니다.  2021.12.14. 휴선 올림"






<보시는 건 한 공공기관의 건물입니다. 꼭대기 쪽에 옥상에서 걸어둔 듯한 하얀 천이 펄럭입니다. 현수막 같기도 하고 식탁보 같기도 한 이 천에는 ‘박 모 이사장과 한 모 팀장을 고발한다. 억울한 말단 직원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죽음을 대가로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 생에는 부디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라는 내용의 글귀가……. 이렇게 길에서도 알아볼 수 있게 쓰여있었습니다. 오늘 오전 해당 기관의 직원이었던 스물여섯 살 이모양이 건물 옥상에서 투신하기 전 직접 내건 것으로 보입니다. 어렵사리 회사 관계자를 취재한 결과 이모양이 평소에도 회사생활에 고충이 많았으며 최근에 어머니를 여의고 우울증세를 보였다고 설명했습니다. 경찰은 이모양이 회사에서 불합리한 처우를 당한 것에 무게를 두고 해당 기관을 수사할 예정입니다. KBS 뉴스 이세형 기자입니다.>


***


“에… 일단 비상사태다. 여러분도 아는 것처럼 어제 그런 일이 일어나서… 콜록!”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반일식 팀장은 커다란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기침을 했다. 그 소리가 너무 마르고 인위적이어서 반 팀장을 주목하고 있던 회의실 안의 직원들 대부분이 일부러 낸 것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내일부터 경찰에서 관련 있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참고인 조사를 한다고 했다. 조사라고 해서 뭐 겁먹을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뭔 교사 가능성이 있는 지를 본다고 하더라고? 우리끼리니까 하는 말이지만 이건 어차피 유서… 라고 해야 되나? 아무튼 그 현수막에서 언급된 이사장님하고 한 팀장을 말하는 걸 테지. 그리고 추가로 지목될 대상자들은, 아마 오전에 사건 발생 당시에 건물에 있었던 사람들도……. 간단한 조사만 받으면 될 거야. 크흠!”


반일식 팀장은 웅성거리기 시작한 사람들이 자신을 주목하고 있음에 부담을 느끼며 다시 헛기침을 했다. 하필 손으로 입을 가리지 않는 바람에 목에 묵혀있던 가래 조각이 허공으로 튀어나왔고 그걸 본 몇몇 직원들은 으 하고 신음소리를 내며 얼굴을 찌푸렸다. 정작 당사자는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았고 오직 자신이 펼칠 연설에만 머릿속으로 집중하고 있는 듯했다.


“팀장님! 그럼 이 주임 하고 한 팀장은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구석에 등을 기대고 서 있던 남경필 과장이 궁금증을 참으며 한참을 입술을 깨물다가 마침내 용기를 내어 물었다.


“글쎄, 두 사람은… 회사에서 꾸린 진상조사위가 조사를 하겠지, 아마도 말이야……. 자세한 건 나도 몰라. 어찌 됐든. 이런 절차는 대충 다들 짐작하는 거니까 쓸데없이 묻지들 말고! 이게 중요해, 이게. 이사장님의 간곡한 전달사항이기도 하니까 잘 새겨들어두세요. 그러니까 오늘 아침 간부회의에서 이사장님이 하신 당부의 취지는…….”


반 팀장은 중대한 결정을 공표라도 하듯 말을 전하기 전에 백태가 낀 혀를 날름거려 자신의 입술을 핥았다.


“……앞으로 뭐가 됐든, 이 일과 관련해서는 말이야, 자기가 다니는 회사의 이미지가 걸린 일이니까 다들 알아서 잘하라는 말씀이십니다. 알지? 여기는 심지어 사기업도 아닌 공공기관이라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하이에나들에게 물어뜯기지 않도록 최대한 높이 자란 수풀을 찾아서 바싹 몸을 낮춰 엎드리는 거야. 재수 없게 걸려서 누가 물어보면 그냥 기계적으로 ‘몰랐습니다.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하면 돼. 괜히 아는 것도 쥐뿔도 없으면서 이상한 살 붙여가지고 혼란만 가중시키지 말고, 이런 일관된 방식으로 처리하는 게 더 깔끔하고 차라리 속도 편한 거라고. 뒷일은… 회사에서 알아서 잘 처리할 거니까. 다들 내 말, 이해했을 거라 믿습니다. 자, 그럼 해산! 가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일들 해!”


옹기종기 모여 있던 직원들은 갑작스러운 해산 통보에도 일사불란하게 몸을 움직여 회의실 문밖을 빠져나갔다. 평소에 험담하길 좋아하는 몇몇 사람들이 자리를 나서며 속닥거렸다.


“진학인! 넌 나 좀 잠깐 보자.”


반 팀장은 열의 맨 끝에 붙어 이동하던 학인을 불러 세웠다. 넋이 나간 학인의 얼굴은 다 타고 식어버린 연탄 같았다. 살구빛으로 변한 꺼칠한 얼굴은 부스러기가 많은 쿠키처럼 푸석푸석했고 동공은 몸통에서 분리된 생선 대가리처럼 공허했다. 느릿느릿 몸을 돌려 다시 돌아오는 움직임 역시 삶의 의지를 상실한 폐인 같았다. 반 팀장은 그런 자신의 부하를 안타까운 눈초리로 응시하며 쯧쯧 혀를 찼다.


“야, 야. 정신 차리고 인마, 일단 앉아 봐. 네 동기가 그렇게 돼서 유감이다. 그래도 지금 병원에 있다지? 운 좋게 탄력 좋은 버즘나무 가지에 부딪혔다가 옆에 있던 교통신호제어기 지붕 위로 떨어진 덕분에 그 정도지…. 만약 그대로 곤두박질쳤으면… 어이구! 상상하기도 싫다, 싫어!”


반 팀장은 끔찍한 순간을 상상이라도 했는지 껌뻑 껌뻑 눈을 질끈 감았다 뜨기를 반복했다. 그는 긴 한숨을 푹 내쉬어 무게를 잡고는 조심스럽게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기 말이야… 진 주임, 어쨌든 너 이정윤이 동기잖아? 분명 정의감에 불타오른 척하는 기자 새끼들이 네가 동기라는 정보를 들은 순간부터 적극적으로 인터뷰를 따려고 하겠지. 암, 그건 안 봐도 비디오야. 너는 그동안 당연히 이정윤하고 교류가 잦았을 테니까 걔 입장에서 대답할 수 있는 유일한 적임자라고. 내 말이 맞지?”


학인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말이다. 그 기자 놈들이 너를 뭐라고 꼬드기든 간에, 네가 아는 걸 너무 솔직하게 다 까발릴 필요는 없다고 일러주고 싶다.”


조금 의외였던 반 팀장의 말이 죽어 있던 학인의 얼굴에 약간의 사기를 일으켜 주었다.


“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걔네야 분명 그러겠지. ‘익명을 보장해주겠다.’라든지, ‘이 인터뷰로 피해가 가지 않게 하겠다.’라면서 신상이 폭로될 염려에 대해 안심을 시켜주거나, 아니면 ‘회사는 쉬쉬하려 할 테니 더 나은 세상과 다친 동기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진실을 세간에 밝혀야만 한다.’라는 대의를 상기시키면서 어떻게든 너를 꾀려고 말이야.”   


“그건 꾀는 게 아니라 전부 맞는 말 아닌가요?”


또박또박 발음하는 학인의 되물음에는 어떤 감정이 실려 있었다. 


“맞지, 맞아. 근데 그게 꼭 정의(正義)는 아니라는 말이야.”


여전히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학인의 퀭한 눈이 갈피를 잃고 두세 번 끔뻑거리자 반 팀장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쿵쿵 때리며 재차 설명을 시작했다.


“이 놈아, 진짜 뭔 뜻인지 몰라서 그러는 거야? 아니면 알면서 동의는 못하겠으니까 모르는 척하는 거냐? 어차피 이번 사건의 시나리오는 다 짜여 있어. 뭐, 상사가 업무 지시하고 부하가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다, 부하가 개인적인 일로 심적 고통을 겪고 있다는 점을 상사로서 충분히 인지하지 못했다, 진상조사 후 적절한 수준의 징계 처분…… 뭐 이런 식으로 갈 거란 말이지! 물론 어린 너의 머리로는 이해가 안 가겠지만 아무튼 그런 게 다 있어, 인마.”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시는 거예요! 어떻게 명백히 피해자가 있는데 회사는 가해자의 편을 들 수가 있죠?”


반 팀장의 설명을 들은 학인은 마치 자신의 일처럼 분노해서 소리쳤다. 하루 종일 성대를 놀린 쓴 탓인지 그의 목소리는 순간 운지가 잘못된 현악기처럼 제 소리를 잃고 말았다. 그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오해하지 마라. 이건 이사장님이나 한 팀장 개인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우리 회사를 위해서다. 그리고 윗 분들도, 나도 다 사람이야. 인도적으론 당연 저렇게 된 이정윤이가 너무나 안타깝지만, 나머지 직원들도 살아야 될 거 아니냐? 지금 제대로 매듭 안 지어 놓으면 국정감사 때 사정없이 물어 뜯겨서 실밥 다 터지고 그나마 메꿔놓은 상처는 다시 벌어질 텐데 그땐 어떡할래? 수습 불가야! 생각해봐라. 이런 상황에 놓인 공공기관을 어느 부처가 좋게 평가해줄 것 같냐? 강도 높은 문책을 바라는 여론을 의식해서라도 보여주기 식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어떤 방식으로? 당연히 하나지. 대가리 날리고, 경영평가 최하점.


“그까짓 평가가 한 사람의 생명의 가치보다 더 중요하세요? 그리고 조직을 이끄는 리더가 책임을 지는 것도 문제 될 게 없어 보이는데요?”


반 팀장을 바라보는 학인의 시선에 이젠 혐오감이 어려있었다.


“참나, 너 방금 그까짓 평가라고 했냐? 태평한 소리 하고 앉아있네!”


그러나 학인의 반박을 들은 반 팀장은 오히려 콧방귀를 뀌었다. 그의 얄팍한 인내심으로는 더 이상 학인의 어리광을 감내할 수 없었다. 조금 전까지 부하를 설득하려던 부드러운 반 팀장의 어조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학생을 꾸짖는 선생님처럼 단호하게 바뀌어있었다.


“그 같잖은 평가 등급 차이로 결정되는 성과급이 얼마 인지나 알아? 우리 집 애들, 쌍둥이야. 내년에 동시에 대학교 입학한다고. 그럼 돈 들어갈 곳 천지인데 이러다 평가 최하등급 받고 땡전 한 푼 못 받으면, 그건 누가 보상해줄 건데? 네가? 아니면 자살 시도한 이정윤이가? 아니면 내가 잠이라도 줄여서 새벽에 노가다라도 뛰어야 하나? 걔야 자기 억울함 푼다고 그랬다지만, 그렇다고 또 계속 다녀야 할 다른 직원들은 무슨 죄가 있어서 피해를 받아야 하냐? 민폐지. 회사일이라는 건 어떤 사람의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달라지는 거다. 절대적인 선이 있을 것 같아?”


“본인은 오죽했으면 그런 선택을 했겠습니까?”


반 팀장은 학인의 항변을 무시했다.


“그리고 인생은 말이다, 때론 이기적으로 살 필요도 있는 거야! 매정하게 들리겠지만 네 동기야 앞으로 검사 결과가 어떻든 이제 물 밖에 난 고기나 마찬가지지만, 네 회사 생활은? 괜히 나섰다가 자칫 찍히면 앞으로 골치 아파진다고 이 화상아! 왜 직장인들이 40대가 넘으면 위에 사람들 몇 마디에 굽실거리는 줄 아냐? 자존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잃을 게 많은 걸 알기 때문이야. 너도 네 동기들처럼 때려치울 거야? 인마, 넌 그 정도로 나약하지 않잖냐? 그러니까 내 말대로 해. 알았지? 그럼… 믿는다! 진학인!”


이렇게 말하고 반 팀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저벅저벅 회의실을 걸어 나갔다. 학인이 아직 대화가 안 끝났다는 듯 반 팀장을 불렀지만 그는 빗물을 터는 두꺼비처럼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몰라, 몰라!’를 외쳐댔다.

조금도 풀리지 않은 복잡한 심경으로 자리로 돌아간 학인은 고민에 휩싸였다. 만약 언젠가 이런 순간이 온다면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동기를 선택할 줄로만 알던 자신이었다. 그런데 막상 반 팀장의 말을 듣고 나니 의외로 줏대 없는 마음이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리기 시작했다.


‘반 팀장이 말한 정의(正義)는 과연 무엇일까? 한 사람의 결백을 위해 다수가 희생하는 것이 정의 일까? 아니면 다수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한 사람을 죽이는 게 정의일까? 회사는 참으로 기이한 곳이다. 삶 속에 펼쳐진 작은 삶. 진정한 모습으로의 나를 드러내지 못하고 가면을 쓰고 살아남아야 하는 곳. 희로애락 중 노(怒)와 애(哀)가 부풀려진 지옥 같은 곳…….’


문득 이런 생각이 학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쳤다. 끊임없이 지끈거리는 두통이 이어졌고 쉽사리 판단을 하기 어려웠다. 학인은 금단 현상이 일어난 골초가 주머니를 뒤지 듯, 우측 모서리가 조금 부서진 책상 서랍을 열어 더듬기 시작했다. 연식이 오래된 서랍은 바닥이 휘어 열고 닫을 때마다 끼익 끼익 기분 나쁜 소리를 냈다. 클립과 메모지 등의 필기구로 지저분한 서랍에서 꺼내 든 물건은 조그마한 나무토막이었다.


‘거절의 주사위.’


맨질맨질한 나무 표면이 원래 주인의 손등의 촉감을 떠올리게 했다. 꽤나 오랜만이었다. 걔라면 어떻게 했을까? 분명 소신껏 결정했을 텐데. 학인은 한동안 주사위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씁쓸하게 과거의 연인을 추억했다.


학인은 떨리는 손으로 추억의 물건을 책상 위로 살며시 내던졌다. 손을 떠나 유리 표면 위에 부딪힌 작은 나무토막이 탕! 탕! 요란한 소리를 낸 후 핑그르르 팽이처럼 회전하다가 그만 마우스에 부딪혀 책상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가 줍는 시늉을 할 새도 없이 곧바로 뒤에 있는 서랍장 틈으로 숨어버렸다.


“젠장!”


학인은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지껄이고 말았다. 옆에는 체형이 방아깨비 같은 김창희 주임이 허리가 굽은 채로 앉아 있었다. 우연히 두 사람이 눈이 마주쳤지만 어떠한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순간 학인의 머릿속에는 놀람과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평소 같으면 예의를 운운하며 잔소리를 퍼부었을 그였을 텐데.  


‘어쩌면 정윤이 쏘아 올린 작은 변화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그는 당당히 시선을 거두며 생각했다. 사소한 사건이라도 생기지 않으면 정체가 풀리지 않는 곳. 적어도 학인이 겪은 회사는 연휴 날 완전히 막혀버린 고속도로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 누가 이 정체의 시작점인지는 알 수 없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19. 떠나는 세 사람 중 -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