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P는 작은 휴대폰 불빛에 의지한 채 어두운 등산로를 말없이 그렇게 걸었다. 사방은 고요했고 빛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 휴대폰이 모두 배터리가 다 닳으면 큰일이므로 내 휴대폰은 주머니 속에 아껴두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P와 여행을 떠나 온 지 벌써 4일이 지났다.
갓 전역을 한 나에게 학교 생활은 정말 신선한 재미를 주었지만, 잠시뿐이었다. 아르바이트, 공부, 시험으로 도배된 한 학기를 온몸으로 견딘 나는 이내 물 밖으로 내던져진 물고기처럼 지쳐 허덕였다. 무언가 나를 충전할 것을 찾고 있던 나는, 우연히 어느 블로그 글을 보게 되었다. ‘걸어서 부산까지.’ 제목부터 낭만적인 냄새가 풀풀 풍기는 글이었다. 내용도 지금은 잘 기억 안 나지만 길가의 풀을 벗 삼아, 하늘의 별을 벗 삼아, 어쩌고저쩌고 낭만적인 내용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우연히 보게 된 글은 내 가슴에 잠자고 있던 여행자의 눈동자에 불씨를 지폈다.
하지만 당연히 내 미친 여행 계획에 동참하려는 친구는 없었다. 걸어서 부산까지 간다니. 조선시대 사람들도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나는 혼자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마침 친구 P가 전역을 했다. P 역시 나 못지않게 낭만에 눈이 멀어버린 상태였다. 갓 전역한 군인들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라 하겠다.
P와 나는 의기투합하여 여행 계획을 짰다. 여행 경로를 짜고 경비를 계산했다. 낭만이라 하면 무전여행이 인생의 진리다. 그러나 추운 겨울에 가는 여행이기에 돈이 없으면 정말 길가에서 얼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돈을 40만 원씩은 모아서 가기로 했다. 목숨은 소중한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방학 후 한 달 동안 정육점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정육점 일은 힘들었지만, 여행 생각을 하며 버텼다. 같이 일하며 친해진 아저씨들에게 여행 계획을 주절주절 설명하기도 했다.
그렇게 설이 지나 2월이 되었고, 나와 P는 학교에 서 여행을 시작했다. 첫날 목표는 분당의 할머니 집이었다. 알바를 하느라 설에 못 찾아뵈어서 찾아갈 겸, 숙박비와 아침 식사비를 아낄 심산이었다. 우리는 걸어서 잠실대교를 건넜고, 제2 롯데월드를 지나 송파구에 도달했다. 겨울이라 해는 빨리 졌고, 우리는 결국 할머니 집에 도착하지는 못했다. 할머니께는 다음날 아침에 들어간다고, 먼저 주무시라고 연락을 드렸다. 새벽 2시쯤에야 우린 분당에 도착할 수 있었고 할머니 집 근처의 찜질방에서 잠을 청했다.
낭만 여행의 둘째 날. 아침을 할머니 집에서 먹고 길을 떠났다. 사실 둘째 날까지 여행은 꽤 성공적이었다. P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걷는 것은 즐거웠다. 핸드폰으로 유명한 노래를 틀어 따라 부르며 걷기도 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걷다 보니 금방 밤이 찾아왔고, 둘째 날 밤은 경기도 오산의 한 여관에서 묵었다. 계산해보니 하루에 35km 정도를 걸어온 셈이었다. 계획에서 벗어나지 않은 수치라 나와 p는 기뻐하며 잠에 들었다.
그렇게 셋째 날 아침이 밝았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안 쑤시는 곳이 없었다. 당연한 결과였음에도 당시의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P 역시 무릎이 아프다고 말했다. 우리의 걷는 속도는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몸이 아프자 낭만이라는 단어는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걸으면서도 우리는 점점 말이 없어졌고, 여행은 그저 되돌아가지 못해 앞으로 나아가는 모양새가 되었다. 셋째 날 밤, 우리는 평택의 한 여관에서 묵었다.
그렇게 4일째가 되던 날. 날아갈 것 같던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는 천안의 어느 길을 걷고 있었다. 평택부터는 정말이지 시골이었다. 사방에 빛은 일절 보이지 않고 고요했다. 지나다니는 자동차조차도 드물었다. 그렇게 넓디넓은 광야 같은 곳을 걷다가 그만 날이 저물어 버렸고, 잘 곳이라도 찾으려 돌아다니다가 어떤 등산로를 넘게 된 것이다.
휴대폰 불빛에 의지하며 등산로를 넘자 멀리서 불빛이 보였다. 어느 순간 가로등도 구경하기 힘든 동네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빛이 너무 반가워 아픈 다리를 이끌며 빛을 향해 걸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잠을 잘 곳이 없었다. 경찰서가 있는 작은 동네이긴 했지만 숙박업소는 없던 것이다. 밖에서 자면 얼어 죽는다는 생각에 최악의 경우 경찰서에서 잘 각오를 하며 주변을 더 돌아보기로 했다. 그러던 우리 앞에 교회가 나타났다.
‘광덕교회’
안에 사람이 있다면 염치 불고하고, 하룻밤 추위만 피하게 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교회에 들어갔다. 이상하게도 난방과 조명은 켜져 있었지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난방이 언제부터 켜져 있었는지 몰라도 교회 내부는 추위에 지친 우리가 거부하기엔 심하게 따뜻했다. 나와 P는 ‘아마 우리와 같이 잘 곳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일부러 켜 둔 것이리라’ 생각하며 교회 의자를 하나씩 차지하고 누웠다. 딱딱한 의자의 불편함도 잠시, 피곤했던 우리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새벽, 누군가 나를 건드리며 깨웠다. 일어나 보니 어떤 할아버지가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내가 누운 의자의 앞자리에 앉아있었다. 아마 새벽 예배를 위해 나온 교인이었던 것 같다. 부끄러운 마음과 죄송한 마음이 들어 황급히 일어났다.
“아, 정말 죄송합니다! 금방 나가겠습니다.”
할아버지는 너무도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에요. 하지만 이제 곧 예배 시간이라, 예배 시간에만 일어나 계시고 예배 끝나면 다시 주무셔도 돼요.”
아, 이 사람은 천사일까? 톨스토이의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생각났다. 천사가 하늘에서 쫓겨나 교회에서 추위에 떨고 있을 때, 더욱 천사 같은 남자가 나타나 천사를 도와준다. 비록 4일간 면도도 못하고. 등산로를 헤치며 걸어와 지저분한 옷을 입고 온 나는 천사와 거리가 멀지만, 내 앞에 앉은 이분은 정말이지 천사가 아닐까. 동화 같은 생각도 잠시, 조용했던 교회는 누군가의 코 고는 소리로 시끄러워졌다. 내 뒤 의자에 누워 자고 있던 P가 범인이었다. 부끄러움은 깨어있는 나의 몫. 나는 황급히 P를 깨우며 동시에 교회에 모인 몇 명의 사람들에게 사죄의 말씀을 드렸다. 그렇게 거지꼴을 한 천사, 나와 P는 교회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여행은 실패했다. 우리는 공주까지 꾸역꾸역 걸어가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곳에서 p의 무릎이 악화되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였다. 결국 우리는 버스를 타고 광주 P의 집에서 놀다가, 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바퀴가 왜 인류 3대 발명품으로 꼽히는지, 그 이유를 몸으로 느끼며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허무맹랑하지만 즐거운 여행이었던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모든 사람은 과거를 미화하는 재능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광덕교회에서 만난 그 천사 같은 할아버지의 인자함은, 미화를 하지 아니하더라도 성스러움 그 자체였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그 할아버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기억난다. 사람은 그 할아버지와 같이 아름다운 관용을 어려운 이웃에게 베풀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겐 참으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