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마지막 시험이 끝나고 한 학기가 끝났다. 건물 틈으로 산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이 들어왔다. 버스를 타고 집에 가려 건물을 빠져나왔다. 캠퍼스의 나무들은 이미 앙상한 가지들만 남아있었다. 가을에는 나무 밑에 쌓여있던 나뭇잎들도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또 있었는데, 바로 내 통장 잔고가 그러했다.
학교를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난 그 두 가지 일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병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언제나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싶어 진다. 아니, 아르바이트는 출근하는 매일매일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든다. 시험기간이 되면 그 생각이 내 귀에 한층 더 또렷이 들리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시험을 보기 전 나는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3달 동안 했다. 고깃집 알바는 일단 몸이 굉장히 힘들다. 여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주휴수당도 안 챙겨주고, 월급도 정해진 날짜 없이 자기가 주고 싶을 때 주는 이상한 사장을 만나서 나는 몸도 마음도 개고생 중이었다. 아르바이트비가 언제 들어오냐고 묻는 것도 무언가 눈치 보이는 일이었다.
세 번째로 월급날이 뒤로 밀리자 ‘내가 왜 매번 내가 일한 대가를 눈치 보면서 받아야 한단 말인가’ 생각이 들었다. 마침 때는 대학생이 아르바이트를 가장 그만두고 싶어 진다는 시험기간. 나는 그 길로 고깃집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다. 그렇게 시험이 끝날 때까지 1~2달 동안 알바를 쉬며 벌어둔 돈(이라고 해봐야 얼마 안 되지만)을 야금야금 까먹으며 지냈던 것인데,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내 통장 잔고도 끝나버렸다. 방학에 집에 붙어있으면 사실 돈 쓸 일이 별로 없지만 나는 집에 잘 붙어있지 않았다. 밖에 나오면 모든 것이 돈이다. 밥, 음료, 담배, 교통비 등등. 좋든 싫든 다시 알바를 시작할 때라고 생각해 집에 돌아온 나는 알바천국 사이트에 들어갔다.
집에서 뒹굴거려 봤자 나이와 살만 늘어갈 뿐이다. 다음 학기에 쓸 돈도 벌어둘 요량으로 주 5일 하는 아르바이트를 찾았다. 하지만 방학이 되면 주 5일 일하려는 대학생은 늘어나고, 그 수가 늘어난 만큼 일자리는 줄어든다. 그러다 보면 남는 아르바이트 자리는 거의 항상 똑같다. 텔레마케터와 상하차, 호텔 서빙 그리고 술집. 텔레마케터는 남자를 잘 뽑아주지 않고 상하차는 너무 힘들다. 이번 방학도 그냥 음식점 일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한 아르바이트 자리를 발견했다.
‘남성 고수익 아르바이트 구합니다’
월급 300이라는 숫자는 가난한 대학생을 유혹하기 충분한 액수였고, 나는 찾아온 기회를 놓칠세라 마우스를 움직여 그 문구를 클릭했다. 성인인증을 하라는, 아르바이트 4년을 해본 이래로 처음 겪는 일을 마주쳤지만 당시에 난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성인인증을 한 뒤 적혀 있는 전화번호를 휴대폰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옮겨적고 문자를 보냈다.
“알바천국 보고 문자 드립니다. 혹시 아르바이트 자리 남았나요?”
그날 답장은 오지 않았다. 카톡이었다면 읽었는지 정도는 확인할 수 있는데 문자는 확인할 수도 없고 답답한 노릇이었다. 직접 전화를 걸기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고수익 아르바이트는 물 건너가나 싶었지만 그다음 날 밤, 도서관에서 만화책을 보고 있던 나에게 답장이 왔다.
“본인 사진 3장만 보내보세요.”
술집이라더니 얼굴을 보고 뽑는 건가. 바텐더 같은 일인가. 그때까지도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외모 지상주의에 치를 떨면서도, 나는 사진을 최대한 잘 나왔다고 생각되는 세장을 필사적으로 골라서 보냈다. 또 한동안 답장은 오지 않았고, 내 얼굴이 거절당한 건가 생각이 들어 슬리퍼를 터덜터덜 끌며 집으로 돌아왔다.
지원자와 밀당을 하는 건지(그렇다면 그 효과는 뛰어났다고 하겠다), 답장은 또 다음날 왔다.
“내일 면접 가능한가요?”
“네, 내일 괜찮습니다.”
“그럼 내일 6시까지 홍대입구 역 3번 출구로 오세요.”
나는 다음날 저녁 홍대입구로 향했다. 내 얼굴이 먹힌 건가 싶어 뿌듯하기도 하고, 오랜만에 면접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그저 기뻤다. 하지만 홍대 입구에 도착했을 때,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면접 장소를 알려주지 않고, 그저 계속 어디 방향으로 오라는 말만 해주었기 때문이다. ‘가게로 오라고 하면 그냥 한 번에 찾아갈 텐데..’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며 번화가에서 벗어나 골목골목으로 들어갔다.
“빵 빵!”
골목길을 헤매며 면접 담당자에게 문자를 보내던 내 뒤에서 suv 한 대가 경적을 울렸다. 설마? 앞 창문이 내려가더니 차에 탄 사내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면접 보러 오신 분 맞죠?”
“네? 네, 맞긴 하는데..”
“뒤로 타세요.”
면접을 그동안 많이 봤지만 차에서 보는 면접은 처음이었다. 잠시 당황한 나는 이내 그런가 보다 하며 차에 올라탔다. 조수석에도 다른 사람이 앉아있었다. 주변이 어두워 앞에 앉은 두 사람의 얼굴은 보기 힘들었다. 운전석에 앉은 남자의 눈을 가끔씩 백미러로 볼 수 있을 뿐이었다.
“키가 몇이죠?”
“173입니다.”
“그건 깔창을 끼면 되고. 렌즈 끼시나요?”
“아니요? 껴본 적 없습니다.”
“흠. 안경을 끼면 초이스가 안되는데.”
남자는 다짜고짜 내 키를 물어보더니, 초이스가 안된다는 말을 했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내가 당황한 것을 느꼈는지 조수석에 탄 남자가 운전석에서 내게 질문하던 남자에게 귓속말을 몇 마디 했다.
“어.. 이런 곳에서 일해 보신 적 있으세요?”
“이런 곳이라니 어떤...”
“저희는 맨 빠예요.”
“네?”
“맨 빠(man bar) 라구요.”
술집의 종류인가 싶어서 설명을 들어보니, 흔히들 말하는 호스트바였다. 나는 호스트바에서 호스트로 일하는 ‘고수익 아르바이트’에 지원했던 것이었고 면접을 보는 중이었다. 운전석에 앉은 사람은 계속 설명을 이어나갔지만 나는 그 순간 속으로 생각이 팽창하여 모두 알아듣지는 못했다. 인센티브가 어떻고.. 근무 시간이 어떻고.. 잘만하면 어떻고..
그렇게 설명이 끝나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좋을지 몰랐다. 운전석의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하.. 그럼 생각해보시고 연락 주시겠어요?”
“네? 네! 그럼 생각해보고 연락드릴게요.”
나는 차 문을 열고 나와 골목을 빠져나왔다. 뒤를 돌아보고 싶었지만 돌아보면 안 될 것 같았다. 가슴에 누군가 줄을 메달아 놓아서 그 줄에 끌려가듯 부자연스럽게 주변이 환한 곳으로 나왔다. 환한 곳으로 나와서도 나는 잠시 주변을 돌아다녔다.
“호스트바라고.. 호스트바.. 월 300만 원..”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홍대 길거리를 배회하던 내 앞에는 어느새 옛날에 친구와 같이 왔던 적이 있는 파란 간판의 냉면집이 나타났다. 거리는 어두웠지만 냉면집은 간판도, 내부도 환했다. 나는 냉면집으로 들어가 물냉면 하나와 만두 하나를 시켰다. 돈도 없는 주제에 한 끼에 14000원을 쓰다니. 자책하며 음식을 기다렸다. 하지만 입이 허전했던 나는 무언가 집어먹을 것이 필요했다.
음식이 나오고 나는 차가운 냉면과 뜨거운 만두를 번갈아 가며 입에 쑤셔 넣었다. 14000원이라는 가격이 무색하게 음식은 빨리도 사라지고 있었다. 얇은 냉면 면발을 젓가락으로 휘휘 젓다가 왠지 착실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스트바라는 직장을 비하하는 생각은 아니었다. 그냥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을 뿐이다. 이 냉면과 만두는, 착실하게 살자는 마음을 먹은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속이 차가워지며 냉정을 되찾게 되었다. 그냥 겨울에 냉면을 먹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음식점을 나와 홍대입구 역으로 향했다. 지하철 역으로 내려가는 나는 핸드폰으로 알바천국 사이트에서 구인 공고를 뒤적거렸다. 알바 자리는 여전히 그저 그런 자리밖에 없었다. 돈은 적게 받을 지라도 모두 고수익 아르바이트보다는 낫지 않을까 생각을 하며 그중 어느 한 곳에 문자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