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24-26 04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by 김토끼

주말마다 나는 파란 버스를 탔다. 파란 버스는 독립문, 서대문, 종로의 거리를 차례대로 지나 을지로입구역에 나를 내려준다. 그곳에서 지하철 2호선으로 갈아타고 잠실역에서 내렸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주인공, 베르테르가 사랑한 여인의 이름을 혹시 기억하는지. 그녀의 이름을 딴 마트에서 난 주말 알바를 하고 있다. 출구로 나와서 5분 정도 걸어가면 마트가 보인다. 내가 일하는 곳인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며 여러 가게를 지나친다. 화장품, 가방, 시계 등등. 또 지하로 내려오면 어묵을 파는 곳, 우유를 파는 곳, 샴푸를 파는 곳. 내 생각이지만, 이곳에서는 계급의 높고 낮음을 옷차림과 직원 목걸이(혹은 명찰)로 판단한다. 방금 마트로 들어와 여느 평범한 대학생 손님의 옷차림을 한 나에게는 여러 사람이 친절하게 말을 건다. ‘고객님 화장품이 새로 나왔어요.’ ‘고객님 새로 나온 만두 시식 한번 해보고 가세요. 지금 1+1 행사 중이에요.’ 새로 나온 물건은 왜 이리 많은 건지. 일일이 ‘네, 저도 여기 직원이에요. 지금은 출근하는 중이고요. 고객님이 아닙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그저 어색한 웃음을 띠우며 네네 하고 말았다. 광대뼈가 아픈 느낌이다. 나는 지하 1층, 놀이공원으로 통하는 출구 쪽에 있는 자동차용품을 판매하는 곳에서 일한다. 혼자 일하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왔다고 보고할 필요는 없다. 가방을 벗어 행사상품 밑에 걸려있는 플래카드 뒤편으로 쑤셔 넣고 직원 목걸이를 맸다. 실시간으로 나의 계급이 떨어지는 순간이다. 출구 쪽에 있는 계산대 뒤편에는 텅 빈 카트들이 줄지어 서있다. 하나를 몰고 나는 더더욱 지하로 내려갔다. 마트의 내부는 누군가 항상 청소를 하고 있다. 심지어 깨끗한 바닥인데도 또 청소하시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지하, 직원들만 이용하는 물류창고는 아무도 청소를 하지 않는 모양이다. 바닥은 군데군데 박스가 깔려있고, 깔려있지 않은 곳은 색이 벗겨지기 일보직전인 초록색 우레탄 바닥이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뻣뻣하고 투명한 비닐봉지들이 가끔 발에 치이기도 한다. 천장에는 폭신해 보이는 먼지들이 덮여있고, 짙은 유채색의 배관들이 얽혀있다. 먼지를 듬뿍 마시며 자동차용품 매대의 증정품이 쌓여있는 곳에 무사히 도착했다. 운이 좋았다. 사실 일한 지 3주가 넘었지만 아직도 길이 헷갈린다. 그래서 대부분은 옆에서 물건을 운반하는 분들에게 물어보고 찾아오게 된다. 그 사람들은 이곳 어두운 지하 창고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는 것 같았다. 워셔액, 차량용 핸드폰 충전 케이블. 차량 유리를 닦는 티슈 등의 증정품을 카트에 채운 후 미로를 빠져나왔다. 지하 1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시계를 봤다. 앞으로 8시간 45분 후면 퇴근이구나. 힘이 빠졌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카트를 끌고 내가 일하는 매대로 향한다. 이제 아무도 나에게 웃으며 새 재품이나 시식을 권하지 않는다. 카트를 고객들의 동선에 방해가 안 될 만한 곳에 세워놓고 내 자리로 가면 일할 준비가 끝난다. 때로는 매대 주변을 돌아다니지만, 내 주된 업무는 자리에 서서 지금 엔진 세척제를 사면 증정품을 준다고 외치는 일이었다. 가만히 서있다 보면 다리가 서서히 아프고, 심지어는 발바닥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발바닥이 아파올 때쯤에 나는 담배를 피우러 간다. 혼자 일하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담배를 허락받을 필요는 없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 제일 좋은 점이다. 마트는 6층까지 있지만, 흡연실이 있는 외부 옥상은 4층에 있다. 요즘 흡연자들은 찬밥신세이기 때문에 면접을 볼 당시, 나는 면접 담당자에게 담배를 피운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그쪽에서도 물어보지 않았으니. 매장에서는 다양한 손님들을 볼 수 있다면 흡연실에서는 다양한 직원들을 볼 수 있다. 지저분한 요리사 모자를 쓴 중년의 남자. 형광색 조끼를 입은 남자. 요란한 짧은 치마를 입고 동물 귀 모양 머리띠를 한 여자. 정장 차림의 남녀. 흡연실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표정이 없었다. 핸드폰 불빛을 보며 담배연기를 뱉을 뿐이었다. 가끔 어디선가 한숨이 새어 나오기도 한다. 옥상에서 사람들과 말 한번 나눠본 적 없지만, 그 한숨의 의미를 대충은 알 것 같았다. 늦은 7시쯤에 직원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출근 후 점심도 원하면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직원 식당은 한 끼에 3500원. 두 끼면 7000원이 된다. 거기에 잠실까지 오는 교통비는 왕복 약 3000원. 점심까지 먹는 다면 하루에 만 원을 쓰게 되는 셈이다. 내 일당은 7만 원이다. 만원을 빼면 6만 원이 된다. 그렇게 된다면 시급이 적어서 그만둔 저번 알바와 차이점이 없지 않은가. 나는 속으로 굉장히 치밀하게 계산했다. 생각해보니, 마트에서 일하는 동안 그렇게 많은 생각을 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직원식당의 밥은 질은 편이고, 국은 싱거운 편이다. 아직도 유난히 싱거웠던 아욱국이 기억에 남는다. 밥을 다 먹고도 1시간 정도 더 일을 해야 해야 했다. 일이라고 해봤자 서있는 일이지만. 시간이 가장 느리게 가는 시간대이기도 하다. 마트에는 시계가 없기 때문에 내 손목에 걸려있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인지, 내가 많이 쳐다볼수록 시곗바늘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발바닥이 또 아파 와서 일부러 움직이며 이미 정리되어 있는 물건을 정리하는 척을 했다. 그렇게 9시까지, 나는 손목시계의 분침과 함께 미적미적 움직였다. 다음날도 출근을 하는 날이라면, 증정품을 담아두었던 박스를 가방을 놓았던 곳에 놓고, 카트를 반납하면 된다. 하지만 다음날이 쉬는 날이었기 때문에 증정품을 원래 있던 미로 같은 지하 물류 창고에 갖다 두었다. 지하 창고에서 올라오며 목걸이를 빼고, 플래카드 밑에 있던 가방을 메었다. 나에게 물건을 추천해주거나 시식을 해보라는 사람들을 지나치며 1층으로 올라와서 9시간 전에 들어왔던 문으로 나왔다. 사람들은 여전히 마트로 들어가고, 나오는 중이었다. 밖은 까만 밤이 왔지만 밖에서 본 마트 내부는 낯인 것 같이 환하다. 안에 있는 사람들이 현재 시간을 잊어버린 것이 아닐까 조금 걱정이 되었다. 발이 조금 아파서 천천히 걸었다. 지하철에 기적적으로 자리가 있었으면 생각하며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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