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영호라고 합니다. 저는 시인입니다.’ 라고 나를 소개하는 것이 나의 꿈이다. 평생에 걸친 염원까지는 아니지만 그냥 그렇게 되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 느낀다. 나를 그렇게 소개하고 있는 ‘나’에게 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는 것을. 그냥 간단히 말하자면 내게서 그 재능이라는 녀석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다. 침대에 누워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사건은 작년 이맘때쯤 시작되었던 것 같다. 아직도 손에 잡힐 듯 기억이 선하다. 2016년 7월 20일 나는 전역했다. 인생에서 있을 통쾌한 일 중에 3손가락 안에 꼽힐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전역을 함과 동시에 나는 복학을 준비하게 되었다. 수강신청을 하는 나의 눈에 띈 수업은 시 창작. ‘국문과라면 시 한편은 쓰고 졸업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막 전역한 군인들은 무모하다. 무모하고 또 무모하다. 그들의 가슴속엔 무언가 불타오르고 있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수많은 수업 중 시 창작 수업을 듣게 되었다. 아.. 그 수업을 듣지 않았더라면, 지금은 이렇게 괴롭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의 나는 이런 나의 심정도 모르고 그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그 전까지의 나는 그냥 시를 좋아하는 평범한 국문과 학생이었다. 보들레르의 시집을 사서 읽었고, 이상의 시를 좋아했다. 시는 소설과 달리 짧은 글이지만, 그 속에 작가의 세계가 녹아들어있다. 작은 뒷골목에서 큰 우주까지 시는 담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시 창작 수업에서 나는 어떻게 했는가.
그 수업에서는 창작시를 의무적으로 한편 이상은 지어야 했고, 그것을 사람들 앞에서 발표해야 했다. 나는 국문과이지만 글에는 젬병이다. 당연한 말은 아니지만 축구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과, 실제로 잘하는 사람은 다르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알기 쉬운 이치이다. 그렇다면 글 중에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시는 어떻겠는가. 나는 시를 처음 써봤다. 당연히 형편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나는 시를 썼다. 시를 쓰는 고민을 하는 것은 굉장히 즐거운 일이었다. 국문과 학생인 지라 글쓰기 과제를 꽤 많이 받는 편이다. 과제는 고통으로 시작해 고통으로 끝난다. 주제를 정하는 고통. 글의 개요를 짜는 고통. 글을 쓰는 고통. 제출기한까지 써야만 하는 고통. 밤을 새는 고통... 세자면 끝이 없다. 하지만 시는 달랐다. 주제를 정하는 것도 즐거웠고, 밤새 고민해 한 줄을 적어내도 행복했다. (내 주관적인 생각에 불과하지만) 기막힌 표현을 찾아냈을 때 행복했다. 제출 기한이 다가올수록 내 시를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아.. 어쩌자고 나는 시 창작의 매력에 빠져버렸던가. 그렇게 나는 내가 지은 첫 시를 사람들 앞에서 발표했다. 사람들의 평가는 다양했다. 내 시가 좋았다는 사람, 이 부분이 마음에 안든다는 사람, 이 부분만 맘에 든다는 사람.. 난 그저 어떤 사람도 내 시가 애송이의 장난질이며 아마추어의 냄새가 너무도 깊이 나서 혐오스럽다는 말을 듣지 않아 마냥 좋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아마추어였기 때문에, 자신의 시도 남들이 감상을 말할 것이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발표가 끝나고 자리에 돌아와 앉은 나는 예전과 달라져있었다. 시인이 되고 싶었다. 사실 사람들의 평가에 조금은 안일한 생각을 한 것도 사실이다. ‘나는 시 쓰는데 재능이 있구나.’ 처음 쓴 시가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다니. 내친김에 시를 몇 편 더 지어보았다. 내가 볼 때 전에 쓴 시보다는 좋은 것 같았다. 아.. 나는 내 주관에 사로잡혀 눈과 귀가 멀어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마침 학교에서는 문학상 공모전이 진행 중이었다. 공모전 본부에 내 분신 같은 시들을 A4용지의 형태를 빌려 제출했다. 사실 상금이 탐났던 이유도 없지 않았다. 1등 100만원, 2등 3등까지 상금이 있었다. 공모전 발표까지는 굉장히 설렜던 것 같은 기억이 있다. 24시간 내내 설렌 것은 아니다. 가끔 서랍에서 오래된 물건을 발견하듯 문득문득 공모전에 대한 생각이 발견될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내 재능을 인정받을 생각에, 상금을 받을 생각에 설레고는 했다. ‘잘 싸웠지만 졌다.’ 라는 말이 있다. 말도 안 되는 말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줬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나는 그냥 ‘싸웠지만 졌다.’ 1등은커녕 입상에는 발도 올려보지 못했다. 학교의 모든 학생이 참가한 것이라면 ‘그래. 나는 시를 쓴지 채 한 달도 안 된 풋내기니까 그럴 수도 있지.’라며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학교의 문학 공모전은 인기가 없기로 유명하다. 시 부문에 지원한 사람은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20명 정도에 불과했다. 나는 그 20명 중에서 3등조차 하지 못했다. 명색이 국문과인데도 말이다. 동기들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속에선 무언가 무너지고 있었다. 자신이 재능이 있다고 굳게 믿던 23살 대학생은 그렇게 현실의 벽에 부딪쳤다. 그렇게 1년 후. 나는 아무것도 달라진 것 없이, 나이만 한 살 많아진 채로 침대에 누워있다. 거실로 나가 식탁위에 놓여있던 물을 마셨다. 컵에는 물이 반밖에 없었다. 나는 정말 재능이 없는 것인가. 누구에게 물어보지도 못했다. ‘응. 그래. 너 재능 없어.’라는 말이 두렵기 때문일까. 침대 밑에는 이제는 제법 낡은 티가 나는 보들레르의 시집이 굴러다녔다. 책의 뒷면에는 보들레르의 사진이 박혀있다. 나는 그 사진을 보았다. 보들레르도 나를 보았다. 그는 요상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괜히 나를 비웃는것 같아 책을 뒤집어 놓고 잠에 들었다. 그날 밤 꿈을 꿨던 것 같다. 사실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원래 꿈 내용은 잘 기억 안 나지 않는가. 다만 좋은 꿈이 아니었던 것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