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를 경험하고도 너를 만나러 갔던 이유에 대하여.
잘 잤어? 오늘도 아침 회의를 하고 업무를 시작하고 있겠구나.
어젯밤에 어떻게 전화를 끊었는지,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대충 기억이 나지만, 결론은 확실하게 해야겠어.
거의 매일 소소한 일상을 나누고, 하루가 끝날 무렵이면 서로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누었던 시간들. 사실 이런 부분들이 참 신기하고 소중했어. 1시간이 10분처럼 느껴져서 전화를 끊을 때면 늘 아쉬웠어. 그만큼 너와의 시간이 내게는 좋았고, 기억할 만한 순간이었다는 뜻일 거야.
하지만, 다시 생각을 해봐도 우리는 연락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그 이유는, 어쩌면 부산 여행에서 마주했던 것들이 모두 좋아서, 그 기억에 계속 머물러 있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교통사고 이후의 기분이 좋지 않아서 내 안의 감정들을 좋았던 기억들로 채우고 싶었나 봐.
긴 시간 동안 바쁜 와중에 틈틈이 나랑 연락해 줘서 고맙고, 바라는바 모두 잘 되었으면 좋겠다.
안녕:)
퇴근길 회전교차로에서 택시와 부딪히면서 황금연휴를 맞이했다. 차가 한 바퀴 돌며 풀숲으로 빠졌다. 그 사고로 인해 오른쪽 어깨, 등, 팔, 손목 등 오른손잡이인 나에게 부상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다음 날 예약해 둔 부산 여행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그대로 출발했고, 바다 건너 부산으로 향했다.
그와 처음 연락하던 날, 카톡에서 느껴지는 그의 말투에, 깊은 배려와 다정함이 묻어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그렇게 친절한 사람은 본 적이 없었기에 그를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역시 7시간을 달려 강원도에서 부산으로 내려왔다. 그의 본가는 경상도였고, 직업 특성상 3~4주에 한 번씩 휴가를 낼 수 있었다. 김해공항에서 만난 그는 비가 올 것이라며 분홍색의 우산을 준비했다. 또, 차에 냄새가 날까 봐 차량용 방향제를 구입해서 늦었다며 미안해했다. 그리고 우리가 향한 곳은 광안리였다. 광안리 바다가 보고 싶다는 내 말을 기억해 주었다. 날씨가 흐린 탓에 광안리 어느 고층 뷰 카페에서 끊임없는 대화로 시간을 채워갔고, 오후 다섯 시가 되었을 무렵 카페의 고즈넉함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광안리에서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때에 많은 인파 속에서 나를 놓칠까 봐 계속 뒤돌아보던 그.
'만약 내가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행동할까.'
궁금해서 숨어 보았다. 그는 바로 뒤돌아서 나를 찾기 시작했다.
다음날에도 우리는 바쁜 일정을 보냈다. 오전에는 감천문화마을, 오후에는 오륙도 스카이워크와 해운대로 향했다. 그날의 날씨가 모든 일을 다 했다. 우리의 기분도 한껏 올라와 있었다. 해운대에서는 스카이캡슐 모노 레인을 탑승할 수 있었는데 기차를 좋아한다는 나의 말을 기억해 주었다. 인파 속에 묻혀 우리는 다시 해운대 바다로 향했고, 햇볕 아래에서 반짝이는 윤슬을 볼 수 있었다. 장소 이동을 하면서도 우리의 대화는 끊이질 않았다.
그 와중에 그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나는 그와 만나고 싶은 걸까.'
'이 배려를 호감이라고 생각해도 될까.'
'그는 어떤 생각을 하는 걸까.'
한참을 생각했지만, 결국 답변을 찾지 못해서 그에게 물었고, 그는 냉정하게 답변했다.
"이성적인 끌림은 없어."
그 말 하나에 내 마음은 출렁거렸다. '그의 다정했던 행동들이 그저 몸에 밴 습관이라고?' 씁쓸했다. 오랜만에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서 무척 반가웠나 보다. 그도 나와 같은 마음이길 바랐다. 더 이상 그와 대화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감정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만나지 않았더라면 후회했을까.’
다음날, 친구로 지낼 수 있냐는 그의 말에 단칼에 거절하고 모든 차단을 해버렸다. '이게 잘한 건가?' 여전히 의심이 들어서 오월을 쉽게 보내주진 못할 것 같다. 싹 틔운 감정은 사랑이 되지 못한 채 사라지고, 몇 날 며칠을 괴로워하다 옅어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