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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집 이야기 Jun 14. 2017

감성이 촌스러

-찌질해도 오글거려도 괜찮아-

언제나 쿨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 안에 담기고 남는 것들도 질척이는 감정이 아닌 기분 좋은 잔상이기를 바랬다. 다시 들여다봐도 이불 킥 하거나 땅 파고 들어가지 않을 그런 감정들만 남아 괴롭지 않기를 원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언제나 흔들림 없이 그 모양 그대도 있는 바위처럼! 편안한 나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내리는 비에도 차가운 바람에도 굳굳이 버텼다. 괜찮은 척했다. 그러지 못한 다는 건 내게 불편하고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우는 건 창피한 일이었고 달라질 것 없는 일에 감정을 소모하는 건 에너지 낭비였고, 사랑스러운 표현은 낯 간지러움에 손발이 오글거렸다. 사실 누구보다 감정에 예민했기에 최대한 반응하지 않으려 표현하지 않으려 노력했는지도 모른다. 가장 쉬운 건 외면하고 도피하는 것이기에.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바라봐주게 한 꿈이 있다.


2017년 5월 15일 월요일
이양이 내게 자기가 입던 옷을 주겠다고 이야기한다. 어색하게 웃으며 대꾸했지만 별로 받고 싶지 않다. 사이즈는 줄인다 해도 내 스타일이 아니다. 솔직히 촌스럽다.

2017년 5월 25일 수요일
우리 집 거실이다. 이양이 천 2개를 가지고 가방을 만든다고 이야기한다. 꽃무늬 천이 너무 촌스럽게 느껴진다. 거기에 비즈도 단다고 한다. 천도 촌스러운데 비즈까지 달다니! 내색하진 않지만 별로 받고 싶지는 않다.


이양은 친한 지인으로 한때는 사이가 좋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멀어졌고 거리를 두어야 했다. 나는 그녀의 감정들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감정의 소용돌이였다. 지나칠 만큼 모든 감정을 느꼈다. 마땅히 느껴야 할 만한 감정들도 있었지만 때론 오해 섞인 감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갖 것들을 거침없이 여과 없이 그대로 표현했다. 대충대충 좋게 좋게 넘어가는 나는 점점 질려버렸다.


그녀에게 세상은 온통 감정이었고 의혹이었으며 불평등한 곳이었다. 그녀가 감당해야 할 일들에 안쓰럽기도 했다. 저러다 정말 큰일이 나는 게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다. 온갖 감정들을 표현하다 그 속에서 질식해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내 기준이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내게 옷을 준다고 한다. 아직 준건 아니지만 그녀가 입었던 옷을 곧! 준다고 한다. 사이즈가 맞지 않으면 수선할 수 있지만 옷 전체의 스타일을 바꾸기는 어렵다. 새 옷을 사는 게 더 나을 것이다. 나는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면 공짜라도 되도록 받지 않는다. 그리고 필요해서 받았다면 수명을 다할 때까지 열심히 사용한다.


옷은 나를 표현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직접 대화를 하지 않고도 지금 당장 주변에 앉아 있는 사람의 옷을 관찰해 보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자리에 가는 건지 상상해 볼 수 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카페에 있는 직원은 편한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앞치마를 착용하고 있다. 카페에서 음식을 다루기에 앞치마를 했을 것이고 베이지색 편한 셔츠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색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녀는 눈에 띄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다. 일이 끝난 뒤에는 편안한 자리에 약속이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추측해 본다.


이양의 옷이 헌 옷 이라서가 아니다. 촌스러운 그녀의 옷이 싫었다. 그녀는 내게 지나친 감정 표현의 표본이었다.(이것 또한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이다. 그녀는 한때 나와는 멀어졌지만 다른 이들과는 잘 지냈다.)


촌스러운 옷이란 그녀가 표현하는 감성이었다.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그녀를 나는 촌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옷을 입는다는 건 스스로 촌스러운 감성을 표출하는 것이었다. (한 끗 차이의 단어지만 내게 감정과 감성은 무엇일까? 어떠한 일에서 느끼는 기쁨이나 슬픔, 분노 등의 마음이나 기분을 감정이라 한다면 감성은 감각적 자극을 받아 표현하는 능력이라 생각된다. 나는 감정을 잘 느끼는 사람에게 감정적인 사람이라 하고, 감각적 자극을 잘 표현하는 사람을 감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며칠 뒤 꿈속에서 이양은 다시 한번 개인적인 공간인 집으로 나를 찾아온다. 이번엔 꽃무늬 누비 천을 가지고 가방을 만들겠다는 한다. 천을 흘깃 보니 겨우내 우리 집 거실에 깔려있던 담요랑 비슷하다. 거기에 비즈까지 달겠다고 한다! 꽃무늬에 비즈가 달린 가방이라니! 개인적 취향이지만 솔직히 끔찍하다. 2개를 만든다고 하니 하나는 내 것 인가 보다.


불안이 꾸물거린다. 한번 정도는 들고나가 줘야 하겠지 하는 생각도 든다. 에코백 종류의 가방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생각나지 않는다. 솔직히 내 스타일이 아니야 라고 말한다면 직접 만들어 선물한 그녀가 받을 상처는 너무 크다. 더 허물없는 사이였다면 가능했을지도. 하지만 꿈은 내게 그런 교묘한 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가방은 소지품을 담고 다니는 물건이다. 장소에 따라 가방도 달라지지만 안에 담기는 내용물이 달라지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간단한 화장품과 이동 중 읽을 책, 필기도구 정도만 넣고 다닌다. 나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다. 마음에 들지 않은 옷이나 가방을 하고 나간 날이면 하루 종일 은근히 신경 쓰이는 그런 기분! 한 번쯤은 누구나 겪어보았을 것이다. 아무도 내게 관심 없고 다시는 만나지 않을 사람들이라도 가끔 그렇게 미치도록 신경 쓰이는 날이 있다.

입었던 옷을 받지 않으니 이번에 그녀는 직접 만들어 주겠다고 한다. 공산품인 옷보다 더욱더 그녀의 취향이 온전히 담긴 물품이다. 그녀의 감정으로 자르고 다듬어 마무리해 탄생한 감성 가방이다. 내가 받아 착용할 가방과 옷이 촌스럽다. 나를 표현하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나! 꿈이 내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왜 하필 촌스러움 일까? 내가 도저히 입을 수 없는 과감한 의상일 수도 있고 사이즈가 너무 다른 의상일 수도 있었다.


촌스럽다는 감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이렇다. 쿨함을 외치는 내가 한밤중에 몰래 써 내려간 지난날의 일기를 보는 기분이다. 요즘은 긴 글 대신 짧은 글로 자신을 표현한다. 몇 개의 단어가 들어가는 문장도 쪼개 해시태그를 달아 간지러움은 잘라내고 단편적으로 표현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어떤 연예인의 예전 글을 보며 웃지만 오래전 봉인해두었던 싸이월드의 비공개 일기장에 내가 쓴 그런 글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의 얼마나 될까?! 물론 이불 킥할 표현들에 중2병의 호기로움도 있지만 언제부터 이런 종류의 새벽 감성을 오글거림으로 취급하게 되었을까?


나에게 이런 오글거림은 불편하고 어색한 감정이다. 수학여행에서 캠프파이어를 하며 공식처럼 부모님 이야기를 꺼내 눈물을 흘리게 만들고 편지를 쓰게 하거나, 생일에 다 같이 노래를 부르며 초를 끄고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들이다. 이게 대체 뭐가 촌스럽다는 건지 누군가는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꿈은 내게 말하고 싶었던 것 인지도 모른다. 한쪽으로 치우쳤던 내 쿨함에게!


너무 오랫동안 해보지 않아서 이런 감정 표현은 나에게 유행이 지난 옷처럼 취급받고 있다. 하지만 유행은 돌고 돌아 다시 온다. 한때는 촌스러웠던 청청 패션이 다시 등장하고 언젠가 스키니는 가고 다시 나팔바지를 입는 날이 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둥글게 앉아 노래를 부르며 초를 끄고 사랑한다는 말을 자연스레 표현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문득 거실 소파에 앉아 그녀가 잘라 만들겠다던 천과 비슷한 바닥에 깔린 담요의 일부를 유심히 봤다. 최근 유행이기도 했지만 오래전부터 잔 꽃무늬를 좋아해서 몇 개의 원피스와 블라우스도 가지고 있다. 자세히 보니 이리저리 잘 자르기만 한다면 그렇게 나쁘지도 않을 것 같다. 나는 보기도 전에 이미 촌스러움으로 규정짓고 곤란해하고 있었다. 어쩌면 의외로 내 취향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가끔 누군가가 건네준 물건들로 취향이 조금 달라지기도 하니까!


이양은 내가 칼같이 다린 흰 셔츠처럼 뻣뻣해 보였을 것이다. 표현을 하지 않으니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답답해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서로 얼마간의 시간을 가진 뒤 그녀와 나는 다시 잘 지내고 있다. 그녀가 조금 성숙해지기도 했고, 나도 타인을 조금은 넓은 눈으로 보게 되었다. 타인의 감정 속에 온 몸으로 뛰어들지 않고 내 영역을 확보하며 스펙트럼이 넓은 그녀의 감정 영역에 감탄하며 서로 간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친한 사이에도 서로 간의 간격을 유지한 다는 건 어렵고 중요한 일인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가진 넓은 감정의 영역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내 감정도 들여다보며 적절히 표현하려 노력하고 있다. 촌스럽지만 일단 한 번쯤은 이양이 만들어 준다는 그 가방을 받아 내 물건을 담아 보고 그녀의 옷을 입어 보는 시간이 내게는 필요한 것 같다.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해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게 꼭 멋들어진 쿨함이 아닌 찌질함이 묻어나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들이라 할지라도 일단 한 번쯤은 꺼내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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