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급하게 들여다보기-
어떤 시기에 내가 꾸었던 악몽에 대한 이야기이다.
엄마가 친구의 아기라면서 돌도 안된 아이를 데려왔다. 아이를 싼 싸게를 푸는데 아이는 손과 발이 없다. 나는 당황스럽지만 겉으로 티 내지 않고 있고, 엄마는 아기가 귀여운지 웃고 있다.
어떤 남성의 집에 경찰들이 무리 지어 찾아온다. 남자는 거실 바닥이 망가져서 본인이 직접 시멘트 공사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남자는 어떤 의심을 받고 있는 듯 하지만 다른 증거가 없어 경찰들은 돌아간다. 나는 그 시멘트 바닥 아래 10대 소녀가 묻혀 있다가 죽은걸 안다. 그 소녀가 얼마나 답답했을지 마음이 아프다.
누구나 마음속에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갓 태어나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기도 하고, 태어나기는 했으나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해 방치되기도 하며, 때론 이렇게 스스로에게
무참히 짓밟혀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보통 꿈속에서의 아이는 어린 시절의 나를 나타내기도 하고, 내 안의 가능성들을 말하기도 한다.
내 꿈속에서 이제 막 태어난 돌도 안된 아이는 손과 발이 없었다. 아기는 손발이 없이 태어났고, 10대 소녀는 어떤 남성에 의해 시멘트 아래 매장되어 답답하게 죽어갔다. 내가 이렇게 만들어버린 내 안의 일부분은 무엇이었을까?
이때 나는 콜센터 알바를 처음 시작하고 3개월 정도 되었을 때였다. 내가 파트 근무를 선택한 이유는 하루에 5시간 근무 후에 개인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다시 포트폴리오를 정비하기까지의 시간이 필요했고, 일정기간 버티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수입이 필요했다. 이르게 작업을 하고 저녁시간에 파트 근무를 시작했다.
그러나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기 전보다 작업은 더 진행되지 않았다. 일이 힘들어서라기 보다
감당해야 할 감정 노동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세상의 또라이들을 한데 모아 만나는 기분이었다.
나는 매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도 대신 죄송하다고 몇 번이나 말해야 했고 무작정 우겨대는 고객들에게 회사의 입장을 설명해야 했다. 이곳은 고객에게는 마법의 나라였다.
우기면 다 되는 마법의 나라! 노골적으로 그런 혜택을 바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건 사고가 나고 일차적으로 상담사의 책임이었으며 모든 것은 무조건 고객의 기분이 상하지 않아야 했다.
이러한 감정들에 치이고 치여서 나는 지쳐버렸다.
출근하기 전에는 매일 배앓이를 했다. 5시간 근무를 하고 집에 돌아와 잠을 청할 때는 한없이 우울해지기도 했으며 다음날 일어나서도 몇 시간씩 멍하니 있다. 출근하기를 반복했다.
물론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고객도 있었으며 성향이 좋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 일을 천직으로 너무나 멋지게 상담을 하고 별거 아니라고 툭툭 털어내는 상담사들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부분에서 이곳은 나에게 맞지 않은 곳이었다.
5일 근무였지만 늘 사람이 없어 특근이 진행되었다. 특근을 진행하지 못할 때에는 그에 합당한 사유를 말해야 했다. 좋은 동료도 있었고 때론 즐겁기도 했지만 피로한 감정들은 쌓여만 갔다.
그리고 손발이 잘리고 나서야, 시멘트 속에서 갑갑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나서야 내 상태를 돌아볼 수 있었다. 손발이 잘려버린 아이는 스스로 살아갈 힘을 잃은 나 같았다. 어쩌면 스스로 잘라 버렸을지도 모른다. 차가운 시멘트 속에서 갑갑하게 죽어가야만 했던 여고생을 생각하면 답답함과 슬픔이 몰려왔다.
나는 스스로 잔인한 살인자가 되어 내 안의 여고생을 가두어야만 했다. 여고생의 가능성과 해맑음이 지금의 내게는 사치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현실이라는 바닥 속에 꽁꽁 숨겨 두어야만 했던 게 아닐까.
그리고 몇 번의 악몽을 더 지나고 나서야 나는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이때 나의 상태는 최악으로 치달아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아내고는 그만두겠다는 이야기를 전달했다. 그날 밤 나는 다른 꿈을 만난다.
어떤 축제 같은 곳에 있다. 구경하는 사람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나는 그 장소에서 나와 집으로 가려고 한다. XX역에서 카카오 택시를 부른다.
택시는 5분 정도 후에 도착한다는 알림을 띄운다. 역 안쪽으로 소란스러운데 여고생이 도와달라고 소리를 친다. 경찰이 두 명의 남학생을 끌고 나온다. 그 뒤로 소리친 여학생이 나오는데 그녀의 얼굴은 상처 투성이고 여기저기 피가 묻어 있다. 폭행을 한 남학생들을 경찰이 끌고 가고 여고생은 그 뒤를 따르며 자신이 당한 부당함과 폭행에 대해 이야기한다.
XX역은 내가 근무했던 곳의 지하철 역이다. 이곳에서 나는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부른다. 택시는 목적지가 정해졌을 때 부를 수 있다. 5분 안으로 온다는 택시는 나의 온 감각인 오감으로 내가 내린 결정인 것이다.
그리고 기다리면서 나는 몇 달 동안 내 안에서 무참히 감정노동을 당해 피투성이가 되어 버린 여고생이 구출되는 것을 본다. 어쩌면 이 소녀는 시멘트 아래 깔려 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죽어야만 했던 소녀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꿈을 꾸고 나서 나는 더욱더 확신할 수 있었다. 맞지 않은 어떤 일을 내가 그만두었을 때 스스로 더 이상 괴롭히지 않는 것이며 내 안의 폭행당한 나를 구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 경찰이 되어 내 안의 여고생을 구출해낸 것이다. 그리고 내가 택시를 타고 어디로 가는지를 지켜보는 것도 앞으로 내가 할 일이다.
끔찍한 악몽을 꾸고 한밤중에 벌떡 일어났을 때 꿈은 내게 적절하게 그리고 시급하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내 안의 아기를, 여고생을 돌보라고 말이다. 악몽을 꾸었다고 외면하지 말고 악몽을 꾸었을 때야말로 자기 자신을 더 보듬어줄 필요가 있을 때 라는걸 알아주자.
나 자신을 알아주는 건, 안아주는 건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