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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Aug 09. 2019

까미노 생각 없이 걷기_27

외롭고 높고 쓸쓸함이 사라진 길

순례 기간 뒤로 갈수록 공립 알베르게에 묵는 것이 더 편하다. 공립은 6유로 사설은 10-12유로이니 굳이 가격이 이유 일리는 없다. 퍼블릭 시설은 그 사회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된다. 작은 마을엔 없지만 규모가 있는 도시에는 반듯이 순례자를 위한 공립 알베르게가 있고 일정 수준을 담보한다. 완벽한 타인들과 한 방을 같이 쓰는 것도 괜찮다. 특히 순례자들은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가짐이 있어 더욱 그러하다.




마을 초입에 공립 알베르게가 있으면 금상첨화다. 절대로 베드가 차지 않는다. 순례자들의 심리는 조금이라도 산티아고 가까운 곳에 머물고자 한다. 따라서 그 마을에 머물기로 작정했더라도 초입의 알베르게는 건너뛴다. 어제 갔던 포르토마린의 공립은 내가 마지막 베드를 차지했다. 마을 깊이 있어 순례자들의 심리적 안정에 도움을 주었던 것이다.
오늘 알베르게는 마을 초입에 있어 베드가 텅 비었다. 오늘 넓은 방에서 잘 잘 수 있을 것이다. 팔십 개 베드가 있는데 중국 레이디 두 명, 젊은 청년 하나, 그리고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중년의 여인 한 분 그렇게 다섯이다. 모두 멀찍이 떨어져 베드를 잡았다.
순례길에 만난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여성분들은 스스로 내게 말 걸어오지 않는 한 외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내가 그리 호의적으로 생기지 않았다는 것도 이번에 걸으면서 깨달았다.



100킬로미터 남짓 남은 구간부터 순례자들이 급증했다. 급기야 오늘 아침부터는 길을 가득 메우고 걸어가는 무리에 기가 질릴 지경이다. 발소리에 말소리에 카페에서는 줄을 서야 하고 도무지 순례가 가지는 높고 쓸쓸함은 어디 가고 번잡함만이 남았다.

일찌감치 마을 초입의 공립에 짐을 풀고 씨에스타를 하고 나왔다. 알베르게 앞에 앉아있는 시작부터 늘 보아왔던 건장한 은발의 레이디와 인사하였다. 그동안 눈인사만 주고받았지 이야기는 처음 했다. 나와 같이 7월 11일에 까미노를 시작했으니 걷기로는 꽤 달인인 셈이다. 무릎이 안 좋아 테이핑을 하고 늘 붕대를 말아 일정한 위치에 묶고 다닌다. 처음 순례자 다운 대화를 했다. 삶도 길을 걷는 것과 비숫한데 길을 걸어보지 않으면 그게 어떤 건지 잘 못 느끼는 것 같다.. 뭐 이런 대화다. 아직은 희미하지만 내 근육에 새겨진 실마리를 찾아가는 앞으로의 여정이 기대된다 했다. 그녀는 스웨덴에서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 길을 떠난다 했을 때 주변에서 다 우려했다고 한다. 지금 그녀는 얼굴이 밝다.


줄 서서 경쟁하듯 걸어가는 오늘 아침 모습을 보고 글이고 뭐고 집어치우고 싶었는데 사람 마음이란 게 간사하여 오후에 좀 눈을 붙이고 그늘에 앉아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누었더니 다시 평정해졌다. 앞으로 이틀 뒤면 산티아고에 도달할 것이다. 물리적으론 그러하지만 나는 이미 나의 산티아고에 와 있다.

2019.8.4.

오늘의 사족 1. 꼭 캔에 들어 있는 올리브를 사야겠다. 저녁 먹고 슈퍼에 들러 맥주 한 캔과 올리브를 사 와서 알베르게 앞 벤치에 앉아 글을 끄적이는데 비닐봉지에 들어 있는 것보다 훨씬 풍미가 좋다!



2. 저녁으로 먹은 문어도 맛이 괜찮다.



3. 동네 할아버지 산책하는데 멍멍이들도 따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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