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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Sep 22. 2020

부도암 그리고 두꺼비

밥에 대한 옛 기억이 소환되다

동화사는 조계종 팔공총림의 본 사찰이다. 가람의 규모가 장엄하다. 거느린 말사도 많고 부속 암자도 여럿이다.

생각해보니 85년 여름인가 보다. 동급생 어머니가 동화사의 신심 깊은 신도였다. 그 인연으로 동화사 부속 암자인 부도암에서 여름 한철을 보냈다. 부도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암자라 하여 부도암이라 이름 지었다한다. 다른 곳과 달리 비구니 스님이 주석하는 암자다.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으나 미모가 출중한 스님이 몇 분 계셨고 그중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던 스님이 특히 뛰어났던 것 같다. 옛 기억을 신뢰할 수 있다면 한 달에 두 번 찰밥을 먹었다. 스님들 머리 깎는 날이면 공양간에서 찹쌀로 밥을 지었고 왠지 모를 긴장감이 밥을 먹는 내내 흐르곤 했다. 면도질한 파르스럼 반들반들한 머리와 옻칠한 바루가 위로 반원 아래로 반원을 그리며 공양시간 내내 어른거렸다.  

절집엔 식객이 몇몇 더 있었는데 옆 방에 인류학 전공의 인류학적으로 생긴 대학생 형이 있었다. 다윈의 The origin of species를 보여주며 다윈의 천재성에 대해 막걸리를 마실 때마다 열변을 토하곤 했다. 실제로 토하기도 여러 번 했다.


이 모든 기억의 소환은 이 녀석 덕분이다.   


어제 저녁 늘 그렇듯 금강변을 따라 퇴근하던 길에 이 커다란 녀석을 마딱뜨렸다. 강변길을 걸으며 뱀은 여러 번 보았으나 두꺼비는 처음이다. 뱀 보다 훨 심지가 굳다. 도대체 움직일 태세가 아니다. 꽁무니를 살살 건드려 겨우 풀숲으로 건너가게 하였다. 뒤이어 자전거 편대가 쌩하니 지나간다.


그해에도 장마가 지나가고 부슬하게 비가 내리거나, 습기를 가득 품은 대기가 낮게 깔릴 때면 어김없이 이 녀석들이 절 마당 가득 기어 나왔다. 시내로 밤마실 나간 동급생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암자 뒤편 선녀가 내려온다는 조그만 용소에서의 목욕도 끝나갈 늦은 밤이면 나트륨등 아래 그로테스크한 그 소리를 듣곤 했다.

개구리들은 선창과 함께 떼창을 이어가다 약속한 듯 소리 내기를 멈춘다. 두꺼비들은 독립적이다. 그들은 시작도 끝도 합을 맞춰 소리 내지 않는다. 온갖 종류의 불협이 조화를 이룬다.


아직 끼니 전이라면 가슴 아파하실 어머니는 연로하고, 같이 저녁 먹을 사람 없는 거처로 향하는 걸음은 허허롭기만 하다. 내 입에 밥 들어가는 고마운 일을 기쁜 마음으로 해주신 모든 어머니들 보살님들 떠올린다. 한때 시동생들 거두어 먹이며 새댁 시절을 보냈던 형수님이 떠나신지도 1년이 되어간다.

며칠 뒤면 추석이다. 절에서 오랫동안 합창 지휘를 했던 형수님 기일도 다가온다. 내게 먹여주신 그 고마운 밥을 어찌 다 갚고 갈 수 있으리오.

그립고 아련하고 그리고 언제 들어도 고마운 그 말..

"밥 같이 먹자"

금요일 오후 상경하는 기차간에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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