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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Aug 13. 2021

돌에 새겨진 숫자는 슬프다.

 외할머니가 잠이 드신  일어나지 못한다는 전갈이  것은 지난달 마지막 일요일 오후였다.


외손녀 사위의 이름을 언제나 정겹게 부르시곤 손을 꼭 잡고 웃던 그녀의 눈은 초점을 잃었다. 지난 오월 연휴에 찾았을 때 날 못 알아보는 건 서운할 겨를도 없었다. 그렇게 예뻐하며 키웠던 외손녀에게 무덤덤 맥락 없는 단어를 간간히 뱉어 내곤 피안의 경계를 넘나드는 듯 잠을 청하는 그녀를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낸 처를 그저 먹먹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휴가를 내고 아이들 스케줄을 조정하고 장인어른 어떻게 모시고 갈지 상의하던 분주한 가운데 깨어나셨다는 기별이 왔다.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내려가서 뵙기로 작정을 하고 처외삼촌에게 전화를 드렸다.


맑은 미음만 겨우 몇 수저 넘기는 정도였다. 무엇이 그리 갈급한지 바짝 마른 입술을 연신 물수건으로 닦아내던 외삼촌의 손길이 떨린다. 몇 주 전 이장한 처 외할아버지 묘소 이야기가 오가고, 긴 세월 흘러 이제야 함께 있을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길 하며 세월의 무심함을 탓한다.


냈던 휴가는 기일을 다했고 파견근무를 위한 인터뷰가 잡힌 날이라 어찌하지 못해 출근을 했다. 부고를 받은 건 그날 저녁이었다. 새하얀 수의를 입은 그녀는 새털보다 가벼웠다.


삼복더위에 칠십팔십을 바라보는 할아버지 할머니 상주들은 지쳐가고 무리지은 증손주들의 재잘거림도 뜸할 즘 발인을 하고 한 줌 재로 돌아온 그녀를 대지로 돌려보내는 시간이 되었다. 돌에 새겨진 글이 이렇게 슬플 수 있을지 몰랐다.


1950 9 27

열아홉에 시집와 스물다섯 되던 난리통에 남편은 이 세상을 버리고 저리로 가셨다. 홀몸으로 세 아이를 키우며 한국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밀고 살아낸 그녀가 이제 그의 곁으로 돌아간다.


2017 8 3

67. 푸른 치마 꽃다운 스물다섯 새댁이 난리통에 남편을 보내고 67년을 살아낸 시간. 화살처럼 내리 꽂히는 햇살 아래 헛소리처럼  숫자만 되뇐다. 돌에 새겨진 숫자는 슬프다.


! 아둔한 자여, 가녀린 숨결이 아직 대기와 교감하고 있을 ,  그녀의 손을  잡고 속삭이지 못하였던가! 고맙다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2017 여름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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