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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Oct 04. 2021

교회의 구성원

원로, 장로 그리고 교우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성서 본문을 읽겠습니다. 성서 일과에 따른 오늘 본문은 민수기 11장, 야고보의 편지 5장, 마르코의 복음서 9장, 그리고 시편 19장입니다. 하늘뜻 펴기 요청을 받고 성서 본문을 찾아서 읽으며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하늘뜻 펴기를 맡을 때마다 늘 불안과 초조 그리고 막막함에 시달렸으나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도 여러 번 하다 보면 극복할 수 있는 내공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성서를 읽고 묵상을 하면 이야기 구조가 떠오르고 어떤 예시를 들어야 할지 갈피가 잡히는 경험을 합니다. 때론 그러한 경험이 신비롭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럼 오늘 본문을 읽어보겠습니다. 사실 본문의 순서를 어떻게 배치하는가도 상당히 고민이 되는 부분입니다. 저는 오늘 하늘뜻의 제목을 “교회의 구성원: 원로, 장로 그리고 교우”라고 붙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장로와 원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장로, 권사, 집사와 같은 직분을 채택하지 않은 우리 교회의 특징과 나이가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모두를 님으로 호칭하는 평등한 관계를 추구하는 우리 교회의 관계 형성 지향에서 살펴볼 지점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제목을 지었습니다.

민수기는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 땅을 탈출하여 가나안으로 가기 전 광야생활을 다룬 히브리어로 씌어진 성경 중 4번째 책입니다. 흔히 모세 5 경이라고 불리는 구약성서의 맨 처음 5번째 중 4번째 책입니다. 이를 영어로 Numbers 또는 Book of Numbers라고 부르는데 백성 민자에 숫자를 의미하는 수를 붙여 민수기라 이름하였습니다.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의 각 지파별 호구 조사한 인원수가 나오기에 이러한 이름을 붙였나 봅니다. 오늘 읽는 성서는 공동번역서를 사용하였습니다.


민수기 11장

4. 그들 가운데 섞여 살던 외국인들이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을 하자, 이스라엘 백성도 다시 우는 소리를 했다. "아, 고기 좀 먹어봤으면.

5. 이집트에서는 공짜로 먹던 생선, 오이, 참외, 부추, 파, 마늘이 눈앞에 선한데,

6. 지금 우리는 먹을 것이 없어 죽는구나. 보기만 해도 지긋지긋한 이 만나밖에 없다니."

10. 백성들이 저희들 천막 문 어귀에 끼리끼리 모여서 우는 소리가 모세의 귀에 들렸다. 야훼께서 크게 화가 나셨다. 모세는 몹시 걱정되어

11. 야훼께 울부짖었다. "어찌하여 이 종에게 이런 꼴을 보이십니까? 제가 얼마나 당신의 눈 밖에 났으면, 이 백성을 모두 저에게 지워주시는 겁니까?

12. 이 백성이 모두 제 뱃속에서 생겼습니까? 제가 낳기라도 했습니까? 어찌하여 저더러 이 백성을 품고 선조들에게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고 하십니까? 유모가 젖먹이를 품듯이 품고 가라고 하십니까?

13. 어디에서 이 백성이 다 먹을 만큼 고기를 얻어주란 말씀입니까? 저에게 먹을 고기를 내라고 아우성입니다.

14. 이 많은 백성을 저 혼자서는 도저히 책임질 수 없습니다. 너무나 무거운 짐입니다.

15. 진정 이렇게 하셔야 하겠다면, 차라리 저를 죽여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과히 밉지 않으시거든 이런 꼴을 더 이상 보지 않게 해 주십시오."  

16. 야훼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너는 이 백성을 지도해 온 장로 칠십 명과 함께 나에게로 오너라. 그들을 데리고 만남의 장막으로 와서 서 있어라.

24. 모세는 백성에게로 나아가 야훼의 말씀을 전하고 백성 가운데서 나이 많은 장로 칠십 명을 불러 모아 장막 주위에 둘러 세웠다.

25. 야훼께서는 구름 속으로 내려오시어 모세와 말씀하시고, 그에게 내리셨던 영을 칠십 장로들에게도 나누어주셨다. 영이 그들에게 내려 머물자 그들은 입신하였다. 그러나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26. 그런데 장로 명단에는 올라 있는데 성막으로 가지 않고 진중에 남아 있던 사람이 둘 있었다. 그 한 사람의 이름은 엘닷이요, 또 한 사람의 이름은 메닷이었다. 그들에게도 같은 영이 내려 진중에서 입신하였다.

27. 한 젊은이가 모세에게 달려와 엘닷과 메닷이 진중에서 입신하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28. 젊었을 때부터 모세를 섬겨온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아뢰었다. "우리의 영도자여,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십니다."

29. 모세가 그를 타일렀다. "너는 지금 나를 생각하여 질투하고 있느냐? 차라리 야훼께서 당신의 영을 이 백성에게 주시어 모두 예언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집도 절도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는 광야에서의 40년, 먹을 것이 없어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로 연명하던 40만 명이 넘는 민족을 이끌고 가는 모세의 한탄과 울부짖음을 이해할만합니다. 모세의 요청으로 이 짐을 나눠서 지기 위해 야훼께서는 칠십 명의 장로를 부르고 이들에게도 하늘의 영을 나누어 줍니다. 그들이 장막 주위에 있던 진중에 남아 있던 상관없이 당신의 영을 내려줍니다. 이를 못 마땅히 생각한 젊은 친구가 모세에게 불평을 좀 더 정확하게는 이들을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영어로는 forbid라고 표현을 했는데 forbidden fruit이라면 금단의 열매이니 꽤 어감이 강한 단어입니다. 하지만 모세는 하늘의 영이 모두에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하고 일축합니다. 하기야 하늘의 빛과 비가 악인과 선인을 구별하여 내리지 아니하니 장막 근처로 오지 않았던 장로 두 명에게 하늘의 영이 내리지 않을 이유도 없어 보입니다. 다만 모세가 말한 것처럼 당신의 영이 백성 모두에게 내려 모두 예언자가 되지 않는 이유는 좀 곰곰이 생각해볼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저는 이 본문에서 마음이 쓰이는 구절이 “이 백성을 지도해 온 장로 칠십 명과 함께”하는 구절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장로라기보다는 “지도해 온”이라 생각합니다. 지금의 언어로 바꾸어 보면 헌신해 온, 정성을 바쳐온, 몸과 마음으로 봉사해온 등으로 변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교회를 위해 교우들을 위해 그러한 정성을 다해온 사람에게는 하늘의 영이 내릴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두 번째 본문은 야고보의 편지 5장입니다.

13. 여러분 가운데 고난을 당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기도를 해야 합니다. 마음이 기쁜 사람은 찬양의 노래를 부르십시오.

14. 여러분 가운데 앓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교회의 원로들을 청하십시오. 원로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하여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15. 믿고 구하는 기도는 앓는 사람을 낫게 할 것이며 주님께서 그를 일으켜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지은 죄가 있으면 그 죄도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

16. 그러므로 여러분은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 남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모두 온전해질 것입니다. 올바른 사람의 간구는 큰 효과를 나타냅니다.

17. 엘리야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지만 비가 오지 않게 간절히 기도하자 삼 년 육 개월 동안이나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18. 그가 다시 기도하자 하늘은 비를 내렸고 땅에서는 곡식이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19. 나의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이 진리를 떠나 그릇된 길을 갈 때에 누가 그를 바른 길로 돌아서게 한다고 합시다.

20. 그러면 죄인을 그릇된 길에서 돌아서게 한 그 사람은 그 죄인의 영혼을 죽음으로부터 구원할 것이고 또 많은 죄를 용서받게 해 줄 것입니다.


아픈 사람이 있다면 교회의 원로에게 청하여 아픈 이를 위해 기도를  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권유와 명령의 중간쯤 되는 어조를 취하고 있는데 영어 성경을 찾아보니 let them pray over him 장로들로 하여금 아픈 이를 위해 기도하게 하라, he should pray over him 장로는 아픈 이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they are to pray over him 장로들은 그를 위해 기도한다 등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헬라어까지는 지식이 없어 찾지 못하였으나 뉘앙스가 조금씩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여담입니다만 아픈 사람도 him이고 장로도 he 번역했네요. 아픈 사람이 남자만 있지도 않을 터이고 나이  사람도 남자만 있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편지가 2  전에 씌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겠지요. 아픈 이를 위한 기도를  장로들에게 청하여 하라고  것일까요?  이유를 16절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올바른 사람의 간구는  효과를 나타낸다. 그러면 교회의 장로는 모두 올바른 사람들 인가 하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하게 됩니다. 살아오면서 만났던 장로님들을 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장로들을 청하여 기도를 받고 싶으신가요? 아마도 긍정과 부정이 답이 혼재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다행히 좋은 어르신 좋은 장로님 좋은 권사님들을 많이 만나 왔습니다.  경험이 보편적이나 일반적이라 여기지는 않습니다.

그럼 다른 교회나 다른 교단으로 눈을 돌리지 말고 우리를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교회는 여든이 넘은 말 그대도 연세가 많으신 할아버지 할머니 교우를 비롯해 일흔 그리고 예순이 넘는 교우분들이 여러분 계십니다. 한 분, 한 분 떠올려 보면 저절로 마음이 푸근해짐을 느끼실 줄로 믿습니다. 제가 그 이름을 불러 보겠습니다. (어르신들의 이름을 또박또박 약간이 여유를 두고 부른다) 이 분들이야 말로 늚음은 낡음이 아니라 축복임을 몸소 보여주고 계시는 분들입니다. 저는 소위 믿음이 좋다는 부류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향해서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언제라도 그리고 어디서라도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또 우리 교우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일이나 힘든 일이나 아픈 일이 있으면 그 어른들에게 기도를 청하여 받고 싶습니다. 아니 저의 믿음대로 우리가 청하지 않더라도 이미 그분들은 기도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야고보서의 마지막 두 구절은 다음에 읽을 마르코의 복음서와 연관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마지막 두 구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19.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이 진리를 떠나 그릇된 길을 갈 때에 누가 그를 바른 길로 돌아서게 한다고 합시다.

20. 그러면 죄인을 그릇된 길에서 돌아서게 한 그 사람은 그 죄인의 영혼을 죽음으로부터 구원할 것이고 또 많은 죄를 용서받게 해 줄 것입니다.     

이어 마르코의 복음서 9장을 읽겠습니다.

42."나를 믿는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사람은 그 목에 연자 맷돌을 달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43. 손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손을 찍어버려라. 두 손을 가지고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 속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불구의 몸이 되더라도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

45. 발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발을 찍어버려라.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는 절름발이가 되더라도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

47. 또 눈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눈을 빼어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애꾸눈이 되더라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

48. 지옥에서는 그들을 파먹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

49. 누구나 다 불소금에 절여질 것이다.

50.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그 소금을 짜게 하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화목하게 지내라. “     


마르코는 좀 섬뜩한 단어를 동원하여 죄지은 자의 벌과 끝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요지는 이렇습니다. 손과 발과 눈이 저지르는 죄 즉, 일상에서 우리가 범하는 죄는 결국 우리를 지옥으로 가게 할 것이니 이를 경계해야 한다라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야고보의 편지에서 진리를 떠나 그릇된 길로 갈 때에 그 죄의 길에서 돌아서게 한 사람은 지옥에서 그를 구한 것과 같은 것이니 서로의 죄를 고백하고 바른 길로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하라고 권면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교회에서 이런 권면을 부지불식간에 받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주일 예배 때마다 부르는 성찬송, 어린이 하늘뜻을 펴기 전에 부르는 서로의 마음에 그리고 지금은 아득하지만 쌀 한 톨의 무게 그리고 매번 예배 때마다 정성을 다해 선곡해서 부르는 찬송들 그리고 삶의 넓이와 깊이를 성서를 통해 해석해 내는 하늘뜻 펴기를 통해 이런 권면을 받습니다. 너무 일상적이라 이런 게 권면인가 하는 생각도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섬돌이 세워진 후 이어온 시간 동안 쌀 한 톨의 무게를 생각하며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면 서로의 마음을 귀 기울여 들어봐요라는 찬송을 부르지 않았다면 과연 지금의 내가 우리가 여기가 있을 수 있었을까요?

     

오늘의 마지막 본문은 시편 19편입니다.

7. 야훼의 법은 이지러짐이 없어 사람에게 생기를 돌려주고 야훼의 법도는 변함이 없어 어리석은 자도 깨우쳐준다.

8. 야훼의 분부는 그릇됨이 없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야훼의 계명은 맑아서 사람의 눈을 밝혀준다.

9. 야훼의 말씀은 순수하여 영원토록 흔들리지 아니하고 야훼의 법령은 참되어 옳지 않은 것이 없다.

10. 금보다, 순금덩이보다 더 좋고 꿀보다, 송이꿀보다 더욱 달다.

11. 당신 종이 그 말씀으로 깨우침 받고 그대로 살면 후한 상을 받겠거늘

12. 뉘 있어 제 허물을 다 알리이까? 모르고 짓는 죄일랑 말끔히 씻어주소서.

13. 일부러 범죄할까, 이 몸 막아주시고 그 손아귀에 잡힐까, 날 지켜주소서. 그제야 이 몸은 대역죄 씻고 온전히 깨끗하게 되리이다.

14. 내 바위, 내 구원자이신 야훼여, 내 생각과 내 말이 언제나 당신 마음에 들게 하소서.     


시편의 구절구절 말씀에 더는 덧붙일 말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오늘 본문의 마지막 구절을 한번 더 반복해서 읽겠습니다. “내 생각과 말이 언제나 당신 마음에 들게 하소서”

오늘 하늘 뜻 펴기의 마지막은 해루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마칠까 합니다. 지난 창조절 주간에 선곡해서 불렀던 옥상달빛의 빨주노초파남보입니다. 해루가 저의 하늘뜻 펴기에 자기가 불렀던 노래를 사용해도 좋다고 허락을 해 주어서 여러분과 함께 듣고자 합니다.

해루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우리 교회 교우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해루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있으면 어떠한 권면보다 어떤 간절한 기도 못지않은 평화와 미소와 영감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해루가 부르는 빨주노초파남보를 듣고 모두 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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