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nther를 추모하며
인왕산 자락 옥인동에 근무하던 시절이니 99년쯤이었나 보다. 노벨문학상 시즌이 되면 늘 언론에 오르내리는 마음이 늙어버린 작자와 요즘 한참 맞짱 뜨고 있는 시인이 잔치가 끝났다고 읊조린 것도 그즈음이었다. 그때 서른을 넘긴 나는 마지막 남은 술방울을 마시며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늦가을, 겨울맞이 바람이 세차게 불던 밤이었다. 광화문 앞 인도와 차도의 경계에 도열한 은행나무가 여름 한철 있는 힘을 다해 지면 아래에서 수직으로 밀어 올린 생명의 물과 한껏 펼친 가지에서 수직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아 빚어낸 그 노랑노랑 물든 자신의 분신을 순식간에 떨쳐내던 그 순간을, 그 찰나를 나는 잊지 못한다.
야크라는 이름의 거대한 초식동물이 있다. 오래된 미래 라다크 어느 산자락 어슬렁 거리다 그와 맞닥 뜨리는 순간 경외감이 들었다. 이유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 순간 자태와 움직임에 매혹되었다.
크다고 다 매혹되는 것은 아니다. 로빈이라 불리는 유럽 개똥지빠귀 한 마리와 친해지려 올여름 수작을 부리던 몇 주간 나는 산책을 나갈 때마다 쿠키를 챙겼다. 아직 날지 못하고 몸 색깔도 검은색으로 변하기 전 이 조그만 녀석은 산책로 주변을 종종거리며 다녔다. 과자 부스러기를 늘 같은 곳에 뿌려주고 몇 시간 뒤에 나가보면 으레 깨끗이 먹어 치우곤 하였다. 그러나 이런 수작으로 친하게 되리라는 꿈은 애당초 번지수를 잘못짚은 것이다. 길들여지는 건 그가 아니라 내가 아닐까?
어제오늘 한반도의 명운이 달린 회담이 열리고 있으니 동물원 우리를 나온 팬서쯤은 뉴스거리가 안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자꾸 신경이 쓰이고 눈길이 간다. 그녀에게 주어진 짧은 자유의 대가는 사살이었다.
그대, 요단강 건너 타나토노트가 되어 이 색계를 떠나더라도 절대로 절대로 그대를 가두고 숨을 거두어간 자들을 용서하지 마시라… 무심했던 나를 포함해서..
길들여지지 않는, 아니 길들일 수 없는 정신과 육체를 현실과 제도와 관습의 틀에 가두고 자유의 숨통을 조이며 살아가고 있는 모든 생명체에게 연대와 연민을 보내며…
2018. 9. 19.
사족: 내가 속한 커뮤니티 어느 곳에서도 이 죽음을 애도하는 자가 없었다. 오직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만 한평생 철창 안에서 살다 가버린 그녀를 기억하니 그 공간에 모인 이들과 함께 애도하기 위해 글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