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애도의 시간이 끝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이하며

by 무위

애도하라.

오늘 하늘 뜻 펴기의 주제를 “아직 애도의 시간이 끝나지 않았다”로 정하였습니다. 애도라는 단어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고 안타까워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2014년 12월 28일 마리아의 슬픔 어머니의 슬픔이라는 제목으로 하늘 뜻 펴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하늘 뜻 펴기에서 한겨레신문에 연재되었던 세월호 참사로 인한 단원고 학생들 중 몇 명의 사연을 소개하였습니다. 우리 교회 누리집에 “기억의 저편에 가 닿을 때까지라는 부제”를 달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되었던 아이들 사연을 갈무리해 놓은 한겨레신문의 pdf 파일이 있습니다. 이번 하늘 뜻을 준비하면서 다시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많은 것은 조회수가 천칠팔백 회에서 적은 것은 팔구백 회의 조회가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 출석인원과 지방 해외에 계신 교우님들을 고려하더라고 엄청 높은 숫자임에는 분명합니다.

다른 슬픔과 달리 가까운 가족과 친지 그리고 친구를 떠나보낸 후 우리는 애도의 시간을 가집니다. 이때 애도는 떠나간 사람을 기억하며 그와 나 사이에 허락되었던 삶의 모든 순간들을 생각하며 인생의 주는 희로애락을 그리고 삶의 유한함과 인간의 불완전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삶을 채워주었던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합니다. 아마도 어머니의 눈길에서는 내 삶과 동일시되던 아이의 영원한 부재는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자식을 잃은 어미와 아비를 두고 그간 우리 사회와 정치권 일각에서 보여준 행태에 대해서 지난 2년 동안 너무나 똑똑히 보아왔기에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그간 나왔던 입에 담을 수 없는 악다구니와 모든 것을 돈과 이익의 관점에서 보는 그래서 왜 살아가는지에 대한 회의가 들게 하는 사태들을 지켜보며 우리 사회 전체가 미쳐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은 분들도 많으리라 짐작됩니다.


믿음의 붕괴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는 다시 한번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것들에 대해 질문 아니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즉 국가와 정부는 어떠해야 하는가? 위험과 재난에 대한 국가의 대처는 어떠해야 하는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일상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행위를 어디까지 허용하고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는 어떤 조정의 장치와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인가? 위험의 상황이 재난이 발생했을 당시에는 어떤 기관을 통해 구조활동을 벌이고 사태를 수습해 나갈 것인가? 사고 후에는 희생자들과 유족들을 보살피고 어떤 보완장치를 마련하여 이런 사태가 재발되지 않게 할 것인가? 이런 상식적인 질문에 대해 고개가 끄덕여지는 답과 행위와 제도와 수행기관을 만들어서 운영하는 것이 국가와 정부의 기본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2년 동안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국가에 대한 믿음이 철저히 부정당하는 상황을 직면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런 상황이 계속 벌어지리라는 암담함이 우리 가슴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더욱 괴로운 것은 왜 이런 평범한 인식에 대해 현재의 권력기관은 너무나 동떨어진 대응을 하는 것인가에 대해 질문하게 되다는 것입니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재난이 발생하고 온 사회가 아픔과 슬픔에 가득 차 있고, 수습을 위한 백방의 노력이 있고 그 과정에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대립과 갈등이 발생하고, 그리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각계각층에서의 대안 제시가 이루어지고.. 생각이 이쯤에 다다르면 소름이 끼칩니다. 이게 소위 재난 통치 즉 재난의 상황을 권력 유지의 방편으로 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게 만듭니다.


기억하라

저는 며칠 전 가까운 동료였으며 젊은 연구자였던 친구의 조문을 다녀왔습니다. 영정 속 밝게 웃는 그의 모습을 보며 그와 함께 했던 유쾌하고 예리한 토론과 삶과 사람에 대한 그의 태도를 떠올리며 애도하였습니다. 상가에서 눈물을 흘리며 조문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시청 앞 광장에 분향소가 세워졌을 때 그 앞을 지나다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조문을 마치고 나오는데 입구에 대기하던 기자가 인터뷰를 하자고 잡더군요. 몇 마디 나누지 못하고 둘이 같이 울었습니다. 손끝에 가시가 하나 박히기만 해도 온 신경이 그곳을 향합니다. 우리는 지금 오장육부가 통째로 들려 나가는 상황임에도 입에 달달한 이윤을 찾아 영혼 없이 떠도는 자본주의 좀비 같이 되어가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인디고라는 색을 아시는지요? 흔히 인디고 블루라고 붙여 사용하며 짙은 푸른색을 뜻합니다. 우리 교회 청소년/소녀부의 명칭을 '인디고'로 하였다는 소식을 주보를 통해 보아 모두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인디고들은 자신들을 지칭한 단어에 의미를 더 부여했는데요 독립을 뜻하는 independent에서 인디를 따오고 여기에 go를 덧 붙여 “독립적이고 자립적인 삶을 향해 가자!”는 의미의 인디고로 정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이 자랑할 만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3년간 우리는 그들이 자라온 것을 보아 오는 행운을 누렸으며 아마도 앞으로 우리가 그들에게 주는 것보다 더 큰 감동과 감사를 그들로부터 받을 것입니다.


오늘 제가 선택한 성서 본문 시편 127편 3절에서 5절까지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자식은 주님께서 주신 선물이요, 안에 들어 있는 열매는, 주님이 주신 상급이다. 젊어서 낳은 자식은 용사의 손에 쥐어 있는 화살과도 같으니, 그런 화살이 화살통에 가득한 용사에게는 복이 있다. 그들은 성문에서 원수들과 담판할 때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할 것이다. (시편 127 3-5)


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오늘의 사족: 세월호 5주기를 앞두고 꽃잎은 흩날리는데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여 예전 2주기 당시 2016년 4월 10일에 하늘 뜻 펴기 했을 때 썼던 글을 오늘 다시 찾아 읽고 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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