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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Jul 10. 2019

5유로짜리 샴페인

Pros and Cons of Being a Parisien_02

빠리에 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큰 아이(14살)와 둘째 아이(11살)의 프랑스 공립중학교 입학(전학이 적절한 표현일지도..)을 위해 폴 발레리 리세(Lycée: 고등학교)에 불어와 수학 능력 시험을 치르기 위해 왔다. 프랑스는 5,4,3 학제를 지니고 있어 우리나라 초등학교 6학년이 여기서는 중학교 1학년이다. 막내는 집 근처에 적응반이 있는 공립 Ecole(초등학교)에 배정받았다. 왜 국제학교가 아니고 공립학교로 보내느냐고? 다른 이유는 없다. 빠리에서 영어로 수업을 하는 국제학교 학비를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불어는 청맹과니에 다름없는 부모를 대신하여 공립학교 전학을 위한 시험을 예약해 주고, 일하는 시간까지 미뤄가며 도와주는 마음씨 착한 조력자가 없었다면 이 또한 너무나 멀고 험한 과정이었으리라.. 이 글을 빌려 다시 한번 빠리의 은인을 소개하여준 나의 친구 NRM(곱고 독특한 한글 이름을 가져 실명을 밝히면 누군지 금방 알게 되어 이니셜만 쓴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시험은 프랑스어 발음 알파벳 간단한 대화, 영어로 자기소개 작문, 그리고 한국어로 된 수학 문제 풀기로 모두 3시간 정도 예상한다. 수학은 실력을 보기 위한 것이라 모국어로 된 시험이며 20문제가 출제되고 시험을 보는 동안 함께 온 부모와 보호자는 전학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고 이후 학교에 다니는 절차에 대해 상담하는 시간을 가진다. 


예상보다 일찍 1시간 반 만에 아이들이 나오고 잠시 기다려 시험성적을 가지고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프랑스어는 잘하지는 못하지만 영어를 할 수 있으니 수업을 따라가는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는 하지만 그다지 위안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수학 성적이 너무 좋다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짓 발짓 섞어가며 칭찬한다. 형편없는 불어 실력에도 불구하고 수학 점수 덕분에 한국서 중2, 초5를 다녔던 아이들이 중학교 4학년과 1학년(초 5이나 여기는 새 학년이 9월에 시작하기에 우리의 초5 2 학기면 여기는 중1 첫 번째 학기가 된다.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에 배정을 받았다. 


덕분에 큰 아이는 1년 뒤에 고등학교를 가야 하는 어려운 처지다른 말로 표현하면 내년에 고등학교 진학할 수 있을지를 몇 개월 배운 불어 실력으로 입증해야 할 난감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고, 둘째 아이는 초등학교 졸업도 하지 못한 채 중학생이 되는 어이없는 상황이 되었다.  


기실 우리 아이들은 한국에서 평균을 약간 상회하는 정도의 수학 실력을 지녔다. 큰 아이는 중 1 겨울방학 때 수학 공부를 자청하여 한 달 학원을 다닌 적이 있으니 이때의 강화 학습이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번도 학원 수강 경험이 없으며 방과 후는 오로지 재미로 탐닉하는 둘째 아이의 성적을 보면 학원 수강만이 수학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리라는 섣부른 일반화는 경계할 수밖에 없으리라. (이 정보를 밝힌 것을 알게 되면 책 잡힐 것이 뻔하지만 궁금해하는 분들을 위해 수학시험에서 큰 아이는 열아홉, 둘째는 열여덟 개의 정답을 적었다고 한다. 둘 다 공히 하는 이야기가 쉬운 문제였다 한다.) 


아직 살 집도 구하지 못해 메뚜기 마냥 이민가방을 끌고 에어비앤비 숙소를 전전하는 신세이지만 이런 날 축하주 한잔 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오후에 사무실로 늦은 출근을 하여 또 다른 메뚜기 신세(요즘 리노베이션 공사 중이라 임시로 쓰는 지하 사무실은 First Come, First Serve 원칙에 따라 노트북을 들고 빈자리를 옮겨 다니며 일하는 처지다)를 거쳐 숙소로 오는 길에 프랑스의 상(franprix)이라 이름 붙인 상점에 들러 와인 코너서 두리번거리다 샴페인 진열장에서 잠시 생각에 잠긴다. 눈길이 허리 아래 3유로짜리로 갔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눈높이에 전시되어 있는 알퐁스 도데가 꿈꾸었던 별이 빛나던 알자스 지방의 5유로 브럿(Brut 스파클링 와인, 샴페인 지방에서 나는 스파클링 와인에만 샴페인이라는 고유명사를 붙인다고 들었다.)이 있어 집어 들었다.

Cheers with 5 Euro Brut


오늘의 사족 1. 이렇게 또 하루가 저문다. 이쯤에서 생각이 멈추었으면 좋으련만 폴 발레리 어록이 어른거린다.  “If you don't live the way you think, you'll think the way you live.” – Paul Valéry 

나는 생각한 데로 사는가 아니면, 조건에 따라 살 수밖에 없는 삶을 사는가?  

하지만 어떠하리 알자스의 브럿이 이 글을 쓰게 하였으니 그 지방의 별과 해 그리고 바람이 전해 주는 힘이 포도에 담겨 여기 빠리의 이방인의 마음까지 전해졌구나 하며 위안한다.  

2. 글은 파견 나온 해 2017년 9월에 써두었다. 

3. 만으로 2년이 흐르고 아이들은 유창하게 불어를 한다. 나는 여전히 불어 청맹과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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