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lomiti트레킹_Day+6

백 년이 지나고 남은 것 (2018. 8. 17.)

by 무위

흔하다곤 할 수 없지만 전쟁의 흔적은 넓디넓은 돌로미테 어디에서건 쉽게 눈에 띈다.
1차 대전 당시 상대 진영을 향해 날아다녔던 포탄은 여기 산장 계단의 장식으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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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트레킹 코스는 지도에서도 찾기 어려운 전쟁 당시 군인들이 파 놓은 터널 속을 기어 올라가는 것부터다. 지난밤 산장에 머무른 사람들 숫자며 아침에 Drei Zinnen 산장으로 줄지어 올라오는 트레커들에 비하면 이 코스로 오르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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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램프가 있어야 한다. 족히 삼사 백 미터나 되는 급경사 터널을 만든 군인들은 후대에 자기들이 파놓은 이 터널이 어떤 용도로 사용될지 상상이나 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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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이 끝나고 이어지는 코스는 트리치메를 등반하는 롹클라이밍과 트레킹으로 나뉘어 진다. 터널에서 만난 커플은 터널 끝에서 하네스를 하고 등반 준비를 한다. 우리 팀은 다시 급경사 내리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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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밭 내리막길에서 일차 대전 당시 누군가를 겨누었던 총탄의 남겨진 녹슨 탄피가 눈에 띈다. 경계를 둘러싼 분쟁이 어디 국경뿐이겠는가? 살다 보면 매일 만나는 일이 경계와 영역을 가름하는 일이 아닌가 한다. 전쟁은 끝났고 우리는 백 년 전 군인들이 개척한 길을 다시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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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만 오천보 연속 사흘 걷고 오늘 이만보로 마무리하려니 아쉽다. 일행들은 돌로미테의 마지막 밤을 보낼 산장으로 내려가고 나는 삼봉 가운데 가장 낮은 치메 피콜로 앞까지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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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숙소는 레퓨지 라바헤도 (2344)이다. 일정이 짧은 경우 여기를 경유하여 돌로미테를 둘러보는 코스가 가장 보편적이다. 레퓨지는 트리치메 남동사면을 바라보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어제 머문 Drei Zinnen Hutt에서 가까운 트레일을 따라가면 두 시간 채 안 걸리는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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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로 할만한 주제가 여럿 있는데 오늘은 객쩍은 소릴 그만해야겠다.
어제 건너뛴 샤워 마치고 나오니 노란색 레스큐 헬기가 와있다. 사고가 있었다 한다. 룸 메이트 시몬이 이탈리아어를 좀 해서 산장지기와 구조대 사이의 대화를 넘겨 들었는데 혼자 등반하다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헬기가 접근하기 마땅치 않아 수습하기 힘들다고 한다. 두어 번 떴다 내렸다를 반복하더니 임무를 마쳤는지 멀리 사라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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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 전에 오른 봉우리 Cime Fiscoline (2600)은 이번 트레킹에서 가장 높다. 봉우리에 세워진 십자가를 꽉 잡지 않을 수 없다. 십자가 뒤로 말 그대로 천 길 낭떠러지다. 오금이 저린다는 표현이 딱 맞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멀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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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옆에 누군가 써 붙였다. “Don’t forget, we are all barefeet in our socks.”
의식화와 사회화 과정을 통해 형성된 페르소나를 한 겹 벗겨낸 진짜 나는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잠시 하였다.

오늘의 사족 1. 백 년 전 탄피가 산양귀비꽃 옆에 얌전히 서 있을 리는 만무하다. 연출이다.
2.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다시 생각한다. 나는 피안의 경계에 다다르기 전에 무얼 해야 하나?
3. 으뜸이고 버금이고 다 부질없는 짓이다. 한다와 안 한다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4. 짧게 다녀와야 하는 일정이라면 여기 라바헤도 산장을 예약하고 둘러봐도 좋겠다. 이번 트레킹의 대략 코스는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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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goo.gl/maps/nj3MREpaQ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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