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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Jul 19. 2019

까미노 생각 없이 걷기_08

이케아(IKEA)를 위한 변명

성정이 좁아터진 탓에 난 크고 많고 화려한 걸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이케아를 처음 갔을 때도 그러하였다. 매장이 너무 커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하지만 미니멀한 디자인의 그릇과 유리잔 그리고 주방용품들이 착한 가격으로 죽 진열되어 있는 걸 보고는 처음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제와서는 다국적 기업으로 세계 곳곳에 대형 매장이 있는 이케아가 용서가 될 뿐 아니라 칭찬을 해 주고 싶은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는 자기변명에 가득 찬 왕조시대의 레토릭은 정말 쓰레기통으로 보내야 할 때이다. 나라님이란 허명도 사라진 지 오래이고 짧지만 공화의 전통을 세워나가고 있는 시기에 걸맞지도 않은 것이다. 길을 걷다 왜 이케아를 위해 글을 쓰게 된 것인지 나로서도 알 도리가 없다만 시작은 유럽이라는 곳에 살면서 넓디넓은 밀밭과 포도밭을 보고서 인지도.. 옥수수 밭이야 오하이오에 살면서 끝도 없이 보기는 했지만..


오늘 길 가다 추수가 끝난 들판에 밀짚단 성처럼 쌓여 있는 모습을 보고 뜬금없이 만석꾼 생각이 났다. 지난겨울 휴가 때 시작하여 육 개월에 걸쳐 읽은 토지에 평사리 최참판도 떠오르고.. 벼 만석을 내려면 한 마지기(200평, 660제곱미터)에 한섬씩 잡고 660,000제곱미터이니 2*3.3킬로미터 정도이다.




여기 스페인 농부가 트랙터 몰고 추수한 들판을 갈고 있는 모습을 보다 오만 갈래로 생각이 춤을 춘다. 농업생산성의 비약적인 증가는 쟁기질과 수확한 곡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하는데 가축을 이용하면서부터이다. 벼농사짓는데 소 한 마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소를 몰고 일해본 사람은 안다. 석유에너지에 기반한 거대한 트랙터와 파종기와 수확기를 갖춘 이후 농부 한 사람이 생산할 수 있는 곡식의 양은 벌판에 쌓여 있는 밀짚단을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저 이곳은 평사리 최참판이 동네 곳곳에 널려 있는 것이다. 십 킬로 때론 더 멀리 가야 하나씩 나오는 스페인 시골 동네는 밭의 단위가 미터가 아닌 킬로미터로 끊어서 봐야 할 정도이니 만석꾼이 동네마다 수두룩하다고 할 것이다.

이제 곧 들판에서 더 이상 농부를 볼 수 없는 세상이 올 것이다. 집안에 돌아다니는 로봇 청소기가 어느덧 대세이고 잔디 깎는 기계는 GPS 좌표를 입력하면 알아서 정해진 구역을 깎고 있다. 드론으로 방제를 하고 쇼핑할 때 카트를 밀고 다니는 건 옛말이 되고 알아서 따라오는 자율주행 카트가 나올 것이다. 아니 이미 나와 있다. 논밭 같이 구획이 일정한 곳에 정해진 순서대로 작업하는 농업의 자동화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럼 남은 문제는 그냥 단순하게 아주 러프하게 보면 분배의 문제인 것이다.

품위 있는 삶에서 필요한 게 무얼까.. 사랑할 수 있는 공간, 정갈한 식탁과 음식, 그리고 노래, 춤, 뜀박질 그리고 멍 때리기 같은 거 하고 사는 것이 아닐까?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해 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케아에 진열된 그 미니멀한 그래서 빌러로이 웨지우드 로열앨버트 등속에 비견하는 디자인을 구현하고 그 그릇들을 1,2불에 팔 수 있다면.. 세상에 모든 가난한 연인들의 식탁에서 파라오가 시황제가 썼던 것보다 우아한 디자인의 식기를 이케아가 판다면 어찌 그들을 위한 변명의 글을 쓰지 않을 수 있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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