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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Jul 25. 2019

까미노 생각 없이 걷기_16

평범한 일상의 중요함

어제 많이 걷기도 해서 오늘은 25킬로미터로 비교적 짧게 마치기로 작정하다.  느지막이 일어나 짐을 챙기고 어제저녁 캔맥주를 사서 마셨던 동네 광장으로 아침 먹으러 나갔다. 순례자 몇몇이 커피에 빵조각을 먹고 있다. 갈아주는 오렌지주스가 없다길래 커피와 함께 스페인식 오믈렛 또르띠야와 바게트 그리고 한 사발이나 되는 참치 샐러드를 시켜 모두 먹었다. 이 정도는 먹어줘야 아침이지!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후기를 전 구간에 대해 다 읽은 것은 제주 올레를 만든 서명숙 이사장(전 시사저널 편집장, 시사저널의 적통은 지금 시사인이 잇고 있다. 그녀는 까미노를 다녀오고 저널리스트를 작파하고 올레 창시자가 되었다.)이 오마이뉴스에 2009년 연재한 것이 전부이다. 그때부터 나는 이 길을 언젠가 걷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번에 실행에 옮겼다. 십 년 세월이 흘렀으니 당연히 세부 구간이 대한 평가가 기억에 남아 있을 리 만무하고 그렇다고 내가 내일을 준비한다고 구간을 탐색하고 다른 이의 평가를 읽고 준비 할리도 없다.



다른 구간과 마찬가지로 오늘 코스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그냥 나섰다. 다만 늘 하던 것처럼 아침을 잘 챙겨 먹고 동네 슈퍼가 보이길래 아이스티 한 캔을 사고 좋아하는 납작 복숭아 네 개를 사서 챙겨 넣었을 뿐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마을을 빠져나가는데 이제까지 본 것 중 가장 광활한 해바라기 밭을 만난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후로 오전 일정은 전혀 가볍지가 않다. 18킬로미터를 걷는 동안 마을도 없고 그러니 물을 보충할 급수대도 카페도 상점도 없는 허허벌판을 무작정 마냥 걸어야만 했다. 준비가 없었으면
어떡할 뻔했을까 아찔하다.



어제 42킬로를 걷고 잠잘 곳을 구하지 못해 다음 마을로 걸어간 6킬로의 고난보다 더한 고통이 왔다. 약간 그 구토 증세 비슷한 느낌도 왔다. 마의 구간이 끝나가고 마을 입구에 짚단으로 나름 작품 흉내를 낸 양들을 보고 기분 좋게 순례자 카페에 들어섰는데..



장사는 입지가 아무리 중요하다지만 음료수 한 병에 빵 한 조각을 다른 데보다 두배를 받는다. 이런 십장생 같으니..
여기도 사람 사는 동네다.
2019. 7. 24.

오늘의 사족 1. 오늘 머무르는 알베르게는 저녁 순례자 메뉴에 와인이 한잔이 아니라 작은 병으로 한 병을 준다. 덕분에 글을 쓰는 내내 헤롱거린다.


2. 와인잔, 포크와 나이프가 이케아 제품이다. 순례자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우아한 식사를 할 권리가 있다.
3. 앞 테이블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가족 순례자 들이다. 그들은 알코올을 취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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