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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Jul 29. 2019

까미노 생각 없이 걷기_17

축제는 언제 찾아오는가?

이틀 전에 42+6을 걷고 난 이후 48시간이 지나도록 상태가 쉬이 좋아지지 않는다. 왼쪽 발뒤꿈치 통증이 새끼발가락으로 옮겨가더니 발등도 아프다. 다만 걸을 때는 느끼지 못하고 양말을 벗을 때와 씻을 때만 느끼니 그나마 다행이다. 괜찮다고 생각했던 오른쪽 발에도 오늘부터 신호가 온다. 요 며칠 왼쪽에 가해질 힘이 오른쪽 발로 갔으니 그럴 만도 하다.



숙소를 구하지 못해 고생한 경험이 있어 어제는 일찌감치 예약을 하고 걸었다. 덕분에 4인용 방에서 혼자 자는 호사를 어제도.. 그제는 자발적으로 다른 순례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일부러 독방을 얻었지만 침대가 네 개여서 여간 아까운 것이 아니었다. 오늘은 10유로 내고 베드 하나를 빌렸을 뿐인데 혼자 방을 쓰게 되니 이런 횡재가. 상황은 어제나 그제나 같은데 느끼는 감정이 이리도 다를 줄이야!
오늘 도착 예정인 마을의 알베르게는 특이하게도 자원봉사와 기부로 운영하는 공립이 평점이 좋고 나머지는 다 평가가 별로다. 공립은 퍼스트 컴 퍼스트 서브를 원칙으로 하기에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베드를 차지한다.

오늘 유난히 길가다 동물들을 여럿 만난다.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데 순례길에 동행한 멍멍이가 주위를 맴돈다. 덩치는 큰데 순한 녀석이다. 옆에 앉아서 하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아 결국 마지막 바게트를 주었다. 낼름 받아 와그작와그작 먹는다.


오후에는 양 떼를 만났다. 부지불식간이라 자리를 피할 틈도 없이 양 떼 사이에 갇히게 되었다. 선두에 있던 놈들은 피해 가더니 떼거리의 중반을 넘어가니   너는 왜 우리 길가는데 걸리적거리게 여기 서있니라는 느낌이 들도록 밀치고 간다. 하여간에 쪽수가 중요한 건 맞다.
모든 목적지 도착 이 킬로 전이 가장 힘들다. 오늘도 그렇다. 다행히 내일 비 예보가 있어 그런지 저 멀리 구름과 그리고 함께 온 바람이 도와주어서 오늘 오후는 그리 태양빛에 달달 볶이는 느낌이 덜하다. 그렇게 도착한 알베르게에는 은퇴한 은발에 신사 두 명이 순례객을 환대하고 있다. 다행히 베드는 남아 있다. 특별히 사도 야곱의 날이라 저녁에 파티가 있단다. 갈리시아 지방에는 오늘 성 야고보의 날이 휴일이라고 한다.



샹그리아가 양동이 사이즈로 준비가 되고 검은 올리브와 당근으로 펭귄 모양 안주를 준비하고 앞집 레스토랑에서 이 지역 전통 케이크를 구워 왔다. 공짜 축제에 참여하는 것이 멋쩍어 얼른 나가서 동네 가게 냉장고에 있는 시원한 맥주를 몽땅 공수해 왔다. 그렇게 예기치 않던 축제가 열렸다.

2017.7.25.

오늘의 사족 1. 그렇게 흥겹거나 그러지는 않다. 다들 15일 이상 걸어온 사람들이고 내일도 길을 떠나야 한다. 샹그리아와 맥주가 많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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