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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Jul 29. 2019

까미노 생각 없이 걷기_18

글을 쓸까 말까 고민하다.

사람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어제 묵었던 알베르게에는 한국인들이 여럿 있었다. 삼십 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한 무리들이 식사를 준비해 먹고 있길래 인사를 건넸는데 돌아오는 반응이 시원하지 않다. 한 동안 같이 다니면서 서로 간 유대감이 높아졌나 보다 하고 그 이후론 파티가 이어지는 동안에 말 걸지 않았다.
길지 않았던 파티가 끝나가고 나는 은발의 은퇴 봉사자와 대화도 끊어지고 맥주 한 캔을 들고 나와 동네 어귀를 하릴없이 배회하였다.



어제 올린 글에는 맥주가 남을 것 같다고 했다. 파티 중간에 글을 써서 올릴 때만 해도 그랬었다. 동네를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 오니 남아돌 것 같던 맥주가 어디론지 다 사라지고 없다. 다행이다.
오늘 새벽에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세차게 내렸다. 네시에 잠깐 깼을 때 길 떠날 준비하던 사람들은 캄캄한 길 위에서 이 비를 만났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그친다는 일기예보를 믿고 6시 반을 좀 넘어 출발했다. 잠시지만 모자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낯설지 않다. 두 시간쯤 걸었을 때 어제 그 일행들을 쉼터에서 조우하였다. 나는 새벽에 비 맞지 않았느냐 인사만 건네고 그냥 계속 걸었다. 세 시간 가까이 걸어서 겨우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는 마을에 다다랐다.



그 이후로 걷는 동안 의욕상실 증세가 스멀스멀 기어올라온다. 나는 누구이며 왜 이 길을 걷고 있나라는 쓰잘데기 없는 질문이 계속 맴돌았다. 급기야 오후에는 졸리기 시작했다. 25킬로밖에 안 걸었는데, 비가 내려 시원한데, 내일도 비 예보가 있고 땀도 많이 흘리지 않았는데, 아무리 이런 조건이어도 도저히 더 갈 수 없어서 동네가 그리 성에 차지 않았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하기로 하다.



알베르게 들어오니 내가 첫 번째 순례자이다. 빨래해서 널고 동네로 나오니 빵과 디저트를 파는 가게에도 맥주가 있다. 큰 잔으로 한잔 마시고 들어가 정신줄 놓고 두 시간을 잤다. 상쾌함이 돌아오지 않는다. 길 나서고 처음 그만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오후 여섯 시가 넘었는데 신발장에 트레킹화는 달랑 두 켤레..
다시 동네로 나와 바를 몇 곳 기웃거리다 타파스를 여럿 준비해서 맥주랑 같이 파는 곳을 발견했다.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다. 홍합과 청 올리브 재운 것을 시켜 먹는데 짭조름하니 좋다. 친구들과 소통하는 SNS에 올린 사진과 글 아래에 달린 댓글이 눈에 확 들어온다. 염분을 보충하라고!



그럼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두 번째 잔은 흑 올리브와 양파절임 타파스다. 올리브는 나의 동반자임에 분명하다.
오늘의 사족 1. 짭짤한 올리브 덕에 다시 글 쓸 기운을 찾다. 두 잔으로 끝낼 수가 없어 하몽얹은 바게트와 칩으로 세 잔째..



2. 어제 열 시에 잠들어 중간에 깨지 않고 네시까지 잤는데 다름 아니라 서늘한 저녁 바람을 맞으며 맥주 마시며 태양에 달궈진 몸을 충분히 식혀서 그렇지 않나 생각한다. 오늘도 저녁 바람에 심신을 가라 앉히고 있다.
3. 바보야 문제는 소금이야. 감정도 느낌도 물리적 조건 위에 존재하는 거지.. 너무 당연한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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