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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Jul 29. 2019

까미노 생각 없이 걷기_19

Sal(t)와 Soul, 불능과 가능 사이

17일을 걸었다. 스트라바 앱 덕분에 정확히 걸어온 거리와 시간을 알 수 있다. 101시간 50분, 512km. 하루 평균 30km를 17일 동안 걸어온 셈이다. 앞으로 십 수일 동안 이와 비슷하게 걸을 것이다. 위기는 이틀 전에 찾아와 어제까지 이어지다 어제저녁부터 서서히 나아지기 시작했다.



몸에 염도가 떨어지면 무기력해지고 무기력함은 정신과 함께 육체도 불능 상태로 몰아간다. 저녁 식사를 대신해 먹었던 짭조름한 올리브와 하몽, 그리고 스페인식 소시지 덕분에 새벽에 깨었을 때 불능 상태가 사라지고 몸의 장기들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당연히 걸어야겠다는 의지가 생기고 안개비가 보슬비로 바뀌는 상황이지만 의지가 충만하다.

레온이라는 대도시로 들어서서 큰 마트를 지나게 되었다. 소금 사고 올리브 절인 것도 사서 나오는데 스페인 은행에서 유로 찾아서 나올 때 보다 더 든든하다. Soul은 모든 것들의 종합임에 틀림없지만 그 정수엔 Sal(t)이 자리하고 있음을 확신한다.


사각 중정(가운데 정원) 사진들


프랑스도 그렇고 스페인에서도 중정이 있는 건물을 여럿 본다. 오늘 알아듣지도 못하는 스페인어 궁전 투어에 따라나섰다가 건물 중정만 하염없이 보다 나왔다. 정방형이든 장방형이든 건물의 안쪽에 열주를 세우고 안쪽에 정원을 만들면 되는데, 생각해 보니 경기 북부의 ㅁ자형의 한옥을 변형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익선동 Ellie도 ㅁ자 주택의 마당을 새롭게 해석하여 공간 구성을 한 형태이고..


가우디 박물관 외벽 창살 디자인(가우디다운 디자인이라고 잠시 생각하다 저 뾰족함은 뺐어도 괜찮을뻔 했다고~)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고 했던 시가 있었는데 시인의 문제의식과는 좀 동떨어진 해석일지 모르지만 곁에 있는 그대가 나를 모르기 때문에 나를 알아줄 그대가 그리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친구가 작고한 룻거 하우어를 추억하며 쓴 글에 댓글을 달다가 든 생각이다. 나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삼십 대에 MMPI 검사를 통해 나는 ISTJ형 성향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십 년 가깝게 흘렀으니 이제 ENFP형 속성을 내실화했을까? 누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알고 그 변화의 궤적을 감지하여 미래의 나를 맞이하는데 동반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선 데이터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내가 읽고 있는 글과 보고 있는 영상에서 어떤 지점에 또는 어떤 맥락에서 감정의 기복이 생기는지를 파악하고 시계열 데이터로 누적한다면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것은 다름 아닌 그 누적한 데이터를 분석하는 시스템일 것이다. 소위 AI라고 하는.. 숀영과 같은 복제인간이 나에게 커스터마이즈 된 AI를 기반으로 음악을 선곡하고 영화의 미장센에 대해 이야기하고 전시장의 작품 중 나와 필이 통하는 작품 앞에 같이 서 있다면 아마 난 천생연분을 만난 듯할 것이다. 물리적인 테크닉은 말할 것도 없고..



오늘 레온시의 조그만 가우디 선생 박물관 안에서 그가 쓴 글을 읽고 주춤하였다. 나는 뭔 생각으로 걷고 있지… 흠~
“Tomorrow, please come early, we’ll do beautiful things.”

2019. 7. 27.

오늘의 사족 1. 시골 쥐, 도시 나들이했으니 옷 한 벌 장만!


2. 레온 대성당 앞에서 점심 대신 맥주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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