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를 읽으며 많은 생각이 든다.
느헤미야는 자기의 구체적 소명을 성전 재건으로 여기고 그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 인물이다.
나의 사명은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은 무엇이 있을까.
최근에 한 친구가 내게 비전을 물었다.
30살의 나이에 학교에 온 게, 특별한 동기가 있어 보였나 보다.
짧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한 가지만 꼽아보라면, 오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다.
여전히 나는 나의 비전에 대해 고민 중이다.
그렇기 때문에 짧게 말하기가 더더욱 어렵다.
비전에 대한 고민이 많은 시대인 것 같다.
이 고민은 2000년 전, 3000년 전에도 존재했을 거라 생각한다.
즉, 모든 인류는 모든 역사 속에서 늘 비전(혹은 꿈, 아니면 장래 계획?)을 고민하며 살았을 거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성전 재건을 자기의 비전으로 삼고 실천하며,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아야 하오. 우리의 이방인 원수들이 우리를 비웃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소?” <느 5:9> [쉬운 성경]
나르라는 벽돌은 안 나르고, 갑자기 웬 뻘소린가.
그렇다, 그에게는 그저 성벽을 재건하는 게 끝이 아니라, 성벽을 재건하면서 가난한 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불의에 저항하며 결국,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사는 게 더 핵심 관심사, 즉 비전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는 것보다, ‘어떻게’ 일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
'어떤 일'을 하느냐 보다, '어디에' 초점을 두느냐.
내가 글을 쓰던, 노래를 하던, 공부를 하던 등 무슨 일을 하던, 그 보다 중요한 일은 ‘내가 예수님과 함께 살고 있는지’, ‘그의 뜻에 내가 순종하며 살고 있는지’가 아닐까.
계획에 없던 하루하루,
그저 예수님이 좋아하실 인생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