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윤기 Dec 24. 2021

종이 한 장의 차이

종강을 했다 (1) - 히브리어를 통해 다시 확인한 나의 동기

히브리어가 드디어 종강을 했다.

히브리어가 싫어서 ‘드디어’라는 말을 쓴 건 아니다. 

중간고사 이후였나, 그즈음부터 따라가기가 너무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히브리어가 다른 과목들보다 열흘 늦게 끝난 건,

고통이면서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다른 과목들과 같이 시험을 준비했으면

내가 어느 정도의 완성도로 시험을 쳤을지도 모르겠을뿐더러

공부의 양이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험 성적에 대한 관심은 솔직히 그리 크지 않았다.

공부를 반복해도, 간신히 이해가 되거나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냥 계속했다. 그리고 몇 번을 반복해도 딱히 진전이 없어서

그냥 시험 때까지 계속하는 걸로 전략을 짰다.


이렇게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주어진 시간에 최대한 많이 공부하는 것,

두 번째 관심사는 반복 끝에 유레카! 하면서 이해가 되는 것,

그리고 세 번째 관심사는 시험이 빨리 끝나는 것이었다.


이미 히브리어 시험 전에 기말고사의 피로가 쌓여 있었는지

하루하루 급속도로 피폐해져 가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왜 이러고 있는 거지?’

공부하기 싫은 생떼의 마음은 아니었다.

진짜로 나의 동기가 궁금했다.


학교에 입학 면접을 볼 때, 면접관님이 학교에 입학하면 무얼 하고 싶냐는 질문에

나는 ‘언어’를 배우고 싶다고 말했었다. 히브리어를 말이다.

그만큼 나는 언어 공부에 정말 관심이 많았다.

언어를 통해 얻게 되는 은혜가 정말 생생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즉, 나는 그 깊고 오묘한 은혜를 더욱 누리고 싶어서 언어를 공부하고 싶었다.


그런데, 공부에 미치다 보니, 정작 본질은 사라지고 책만 붙들고 있더라.

은혜를 더 누리고 싶어서 공부를 하는 건데

은혜를 주시는 이를 점점 잊어가고 있더라.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성실과 과욕의 사이

열정과 탈선의 사이

사랑과 집착의 사이는

종이 한 장 차이인 것 같다.


한 학기 동안 히브리어를 공부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했다.

여러 차례의 순간에 고통받기는 했지만,

이렇게 나를 돌아보는 성찰과 회개의 계기가 되어주기도 했고

아바 아버지의 의미를 알며, 아바라 부름이 얼마나 기쁨 인지도 알게 됐는데

그 정도 고통에 무슨 불만이 있으랴.


다시 돌아가도 난 히브리어를 설렘 가득히 수강할 거다.

종강! 히브리어! 정말 찐하게 누렸다. 정들었다. 안녕.

작가의 이전글 기도의 응답이 없어도 감사할 수 있는 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