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10일
⊙ 5월 10일 동선
알트슈타트 → 벡 베르크 → 체칠리엔호프 궁전 → 마이어라이 융페른 호수 → 하이더 카페
→ 포츠담 네덜란드 거리 → 상수시 궁전 → 포츠담 와인 축제 → 혜진이네 집 → 숙소 복귀
케이크 박스를 사느라 포츠담 시내를 여기저기 둘러보던 우리는
5시 30분이 되어서야 상수시 궁전으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포츠담 브란덴부르크 토어 근처에서 605번 버스를 타고 가는 길...
"언니, 저기가 저희 집이에요!" 했을 때 스치듯 지나가는 혜진이네 집도 보고,
창밖으로 펼쳐지는 포츠담 시내의 여유로운 풍경도 만끽하다 보니 어느 새 상수시 공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약 15~20분 정도 되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거리였는데,
버스를 한 번 놓치면 배차 간격이 길어서 주의해야 한다.
프리드리히 2세의 여름 궁전
Sommerresidenz von Friedrich II.
상수시 궁전과 공원 전체는 199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는데
그 가치만큼이나 규모도 어마어마하다.
공원의 규모만 해도 290헥타르! 87만 평에 달하는데,
직접 걸어서 돌아본 결과,
왕이 매일 여기를 '걸어서' 둘러봤다면 살 찔 틈이 없었을 것 같다.
하지만, 왕이니까 뭔가 타고 산책을 즐겼겠지?
이곳은 단순한 왕궁을 넘어 프로이센의 군주, 프리드리히 2세의 철학과 취향이 집약된 공간이다.
특히, 프리드리히 2세는
변방의 약소국이었던 프로이센을 강대국 반열에 올려놓았고
당대 강대국들을 상대로 7년 전쟁에서 불리한 조건을 딛고 승리하며 영토를 크게 확장했다.
뿐만 아니라, 백성을 위한 통치와 계몽주의, 법치주의 실현한 왕이다.
전쟁에서는 천재전략가이자 영토를 넓힌 정보자였고. 국가의 기틀을 완전히 바꾼 ‘근대 독일의 아버지’ 같은 존재로 독일 역사상 유일하게 ‘대왕’의 칭호를 받은 인물이다.
이런 프리드리히 대왕의 여름 궁전으로 만든 곳이 바로
상수시 (Sanssouci),
프랑스어로 Sans(없다) + Souci(근심/걱정) = 근심이 없는 곳이라는 의미로 이름도 그가 직접 지었다고 한다.
왜, 독일의 왕이 프랑스어로 자신의 여름 궁전 이름을 지었을까?
당시 유럽 왕실의 공용어는 '프랑스어'였다고 한다.
특히, 프리드리히 대왕은 독일어보다 프랑스어를 사랑했고, 계몽주의 철학자들과 교류하면서 프랑스 문화를 동경했기 때문에 궁전 이름도 프랑스 이름으로 지었다는 사실!
전쟁과 정무에 지친 왕이 이곳에서만큼은 모든 고민을 내려놓고 예술, 음악, 철학에 몰두하기 위해 만든 '아지트'였고 그가 좋아하는 플루트 연주와 철학적 대화에 몰두하고 싶다는 의지를 담은 이름이다.
과연, 어떤 아지트를 만들었을지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둘러보고자 한다.
상수시 공원
Sanssouci Park
보통은 상수시 궁전과 가까운 입구부터 시작해서 궁전과 주변을 둘러보지만,
우리는 상수시 궁전과 가까운 곳이 아닌
공원의 서쪽 문부터 들어가 궁전을 뒤로 이어지는 길을 통해 둘러보기로 했다.
‘상수시’라고 하니까 이 자체의 단어가 아니라
뭔가 우리나라의 서울시, 수원시처럼 행정구역 단위를 일컫는 것 같다.
‘상수’란 곳이 지역처럼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코뮤나스 열주문
Colonnade of the Communs
상수시 공원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한 건 거대한 규모의 건축물이었다.
대체 이게 뭔데, 압도적인 규모와 웅장함을 자랑하는 걸까? 싶었는데...
코뮤나스 열주문 (Colonnade of the Communs)이라고 한다.
굉장히 화려해서 왕과 관련이 있는 건가 싶었는데
궁전의 주방, 가사 관리실, 하인들의 숙소로 이용하던 곳이라고 한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궁전에서 발생하는 요리 연기나 소음이 본인에게 들리지 않기를 원했기 때문에
주방 건물을 따로 떨어트려서 지었고, 건물을 가리기 위해서 이렇게 웅장하고 아름다운 열주문을 세웠단다.
숙소 조차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보이기 만든 거라나?
공원 안으로 들어가서 본 열주문의 모습은 역광이라서 그런지 한층 더 위엄있어 보였고
앞쪽으로는 신궁전과 마주하고 있어서 두 건축물 사이의 광장 전체가 거대한 야외 무대 같은 느낌도 주었다.
문 중앙을 기준으로 똑같은 모양과 길이도 인상적이었는데... 프리드리히 대왕이 '대칭'을 정말 좋아했구나~ 싶었다.
중앙의 아치형 문 위에 트로피와 조각상은
프로이센의 강력한 힘을 상징하기 위해 장식한 건데
역광으로 검게 그을려 보이니까 살벌한 문지기(?) 같은 느낌도 들었다.
포츠담 대학교 (Universität Potsdam)
암 뉴엔 팔레(Am Neuen Palais) 캠퍼스
열주문 옆의 이 건물이 신하들의 숙소로 활용했던 공용공간 '코뮤나스(Communs)'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신궁전에서 내다봤을 때,
실용적인 건물 조차 예술적이어야 한다는 원칙으로 신하들의 숙소도 화려한 외관을 갖추게 했다.
당시, 프로이센은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우리 집 하인들은 이런 성에서 지낸다'는 걸 보여주려는 의도도 섞였다고 한다.
건물 위에 우뚝 솟은 검은 기둥! '오벨리스크'는 당시 유럽 왕실에서 유행하던 고대 이집트의 양식을 가져온
건축 양식이라는데~
유행을 따라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신기한 건! 현재 이곳은 '포츠담 대학교(Universität Potsdam)'의 캠퍼스 일부로 사용되고 있다.
흔히, 이런 과거 건물은 박물관이나 유적으로 관리된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대학생들이 수업을 받는 곳으로 활용되고 있다니 생각지도 못했다.
우리가 경복궁이나 덕수궁의 어느 한 공간을 대학교로 쓴다는 게 상상이나 되나?
어디 훼손될까봐 무서워서 올라가기도 무서울 것 같은데...
대학교로 활용을 한다니, 보존력에 감탄하고! 대단하고 대담한 실행력에 박수를 보낸다.
포츠담 대학교는 골름 (Golm), 바벨스베르크 (Griebnitzsee), 암 뉴엔 팔레 (Am Neuen Palais)
이렇게 3개의 캠퍼스로 나뉘어서 운영하고 있는데
그 중 이곳은 '신 궁전의 옆에'란 뜻을 갖고 있는 '암 뉴엔 팔레' 캠퍼스다.
현재,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캠퍼스 중 하나로 꼽히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궁전 부속 건물에서 학생들이 직접 수업을 듣는 특별한 장소가 되었다.
직접 들어가보기는 왠지 민망해서 창문으로 들여다봤는데,
건물 안도 뭔가 고풍스러운 게 아름다웠다!
대학교가 이렇게 예쁘다니~ 너무 예쁜 학교에 다니는 거 아닌가?
신궁전을 등지고 열주문을 봤을 때,
오른쪽으로는 역사학과, 철학과, 종교학과 등 인문학 계열의 학과 강의실과 교수실이 있고
왼쪽으로는 대학 본부와 행정 부처, 일부 강의실이 있다고 한다.
열주문 뒤쪽으로는 도서관과 학생 식당, 대형 강의실이 연결되어 있다는데
우리가 간 시간에는 이미 수업이 다 끝나서 학생들이 없는 거 같았다.
프리드리히 대왕이 예술을 사랑해서 여기 캠퍼스에 인문학 계열이 들어왔나?
왠지, 그럴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 중에서 우리가 올라간 곳은 오른쪽!
인문학 계열의 강의실과 교수실이 있는 건물이다.
여기 테라스까지는 학생들뿐 아니라,
일부 관광객들도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명소라고 하는데
왠지 서 있는 것만으로도 두뇌 회전이 빠르게 되는 기분이었다.
이런 곳에서 공부하는 건 어떤 기분일까?
매일 학교에 올 때마다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분일까?
조선 왕들의 여름 궁전으로 생각해보면... 경회루나 창덕궁 후원 정도이려나?
만약 내가 다니는 학교가 궁 안에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우리나라에서 궁 나들이를 갔을 때 힐링이 되고 좋긴 했는데
그 안에서 공부를 한다는 건, 또 다른 느낌일 것 같기도 하다.
신궁전
Neues Palais
열주문을 마주하고 있는 곳이 바로 신궁전(Neues Palais)이다.
프리드리히 대왕이 ‘7년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며
프로이센의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해 지은 궁전으로,
돔 꼭대기에도 조각상으로 프로이센의 권력을 표현했다.
조각상을 자세히 보면, 세 명의 여인이 왕관을 받치고 있는데~
흥미롭게도 이 안에는 도발적인 메시지가 담겨있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강력했던 세 나라의 여왕을 풍자했다는 설이 유력한데,
- 러시아의 엘리자베타 여제
-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
- 프랑스의 퐁파두르 부인 (루이 15세의 정부이자 실권자)
이 세 사람과 싸워서 이긴 걸 상징하며, 7년 동안 싸워 이긴 승리자의 권력을 과시한 것이다.
'유럽의 여제들이 내 왕관 아래 있다'의 의미라고 하나?
하지만, 겉으로는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신화적 존재!
매력, 아름다움, 창조력을 의미하는 '세 명의 은혜의 여신'이 왕관을 받치고 있다는 의미로
프리드리히 대왕의 통치가 신의 축복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아쉽게도 현재는 대규모 보존 공사가 진행 중이라서 신궁전의 제대로 된 완성체(?)라고 해야 하나?
깔끔한 외관을 보지 못 한 게 아쉬웠다.
신궁전은 내부 관람도 가능한데, 우리는 시간이 늦어서 들어가보진 못했다.
유럽의 모든 관람은 아침 일찍 움직여야 가능하니 말이다.
공사를 진행하더라도 내부 관람을 할 수 있다고 하니, 기회가 된다면 신궁전도 둘러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신궁전은 왕이 실제 거주하기 위한 용도 보다는 귀빈 접대나 연회를 위한 '과시용' 궁전이었다.
정작 프리드리히 대왕은 이곳을 '허영의 집'이라고 부르며 상수시 궁전을 더 아끼고 애용했다고 하는데~
과시는 하고 싶으나, 정작 본인은 실용적인 걸 선호했나보다.
신궁전은 방이 무려 200개가 넘을 정도로 상수시 공원에서 가장 큰 궁전이다.
대표적인 방은 조개껍데기와 원석으로 꾸며진 그로토 홀(Grotto Hall)과 대리석 홀!
특히, 그르토 홀은 마치 바닷속 궁전에 들어온 기분이 든다고 한다.
또한, 대리석 홀은 우리가 영화에서 보던 무도회가 열리던 공간인데 규모가 엄청나다니 궁금하다.
넷플릭스 영화 <브리저튼>의 무도회 같은 느낌이려나?
실제로 상수시 공원에는 <브리저튼>에서 본 것 같은 커다란 나무들이 많이 보여서
유럽 중세 시대를 다룬 영화 속 무도회 장면과 풍경들이 많이 떠올랐다.
벌써 시즌4가 나왔던데, 시즌1을 끝으로 아직 못 보고 있다.ㅠ_ㅠ
나는 상수시 공원에서 이 나무를 볼 때마다
"어? 브리저튼 나무"하면서 반가워했고,
혜진이한테도 "저게 브리저튼 나무랑 비슷해~"하면서 계속 알려주었다.
신궁전을 지나, 마주한 상수시 공원의 길은 동네 주민들이 운동을 즐기기 좋은 환경이었다.
'근심 없는'이라는 의미의 '상수시'의 의미 때문일까?
쭉 뻗은 길을 걷다 보면 '내 걱정이 뭐였더라?' 싶었고,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복잡하게 엉켜있던 고민과 해묵은 감정들을 잠시 잊는 기분이었다.
우리가 이 길을 지나면서, 무슨 얘기를 했더라?
딱히 거창한 주제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발걸음 속도에 맞춰 흘러나오는 소소한 일상들이었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대화들이었다.
생각해보면 상수시 궁전까지 닿는 길이 꽤나 멀고 길었는데,
그 시간이 단 한 번도 지루한 적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혜진이의 웃는 표정, 허물없이 웃던 나, 이날의 분위기와 공기가 더 기억에 남고
그저 못다했던 수다를 마음껏 나눈 그 순간순간 자체가 즐거웠다.
중국식 찻집
Chinesisches Haus
얼핏 봐도 중국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곳은 중국식 찻집(Chinesisches Haus)이다.
이 또한 당시 유럽에서 유행했던 스타일인데,
'귀족'들 사이에서 열풍이었던 '시누아즈리(Chinoiserie, 중국풍)' 양식이라고 한다.
18세기 유럽에서는 동양 문화와 예술에 대한 환상이 컸는데
프리드리히 대왕 역시 그 유행에 맞춰서 정원을 장식할 중국풍의 화려한 찻집을 짓게 한 것이다.
건물 외벽을 둘러싸고 있는 중국풍의 황금 조각상은
차를 마시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동양인을 표현한 건데
자세히 보면, 서양인의 눈으로 본 동양의 모습이 흥미롭게 묘사되어 있다.
옷은 동양적인 느낌이지만, 얼굴 생김새는 서양의 독일 사람들과 흡사하다는 사실!
그 이유가, 동양인을 직접 보고 만든 게 아니라 상상 속의 인물을 묘사했기 때문이란다.
또한, 의상도 자세히 살펴보면 어딘가 유럽의 귀족이 입을 법한 느낌이다.
건물 지붕 위에는 양산을 쓰고 있는 황금 조각상이 하나 더 있는데,
이 역시 유럽인이 상상한 동양의 현자 혹은 부유한 귀인의 모습이라고 한다.
만약, 이때의 유럽 사람들이 중국 문화를 제대로 알았다면
민트색 건물이 아니라 붉은 건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우리나라의 기와나 한옥이었다면 더 반갑지 않았을까?
이 당시의 부국이 중국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건가 싶기도 하다.
상수시 공원은 가는 곳마다 높은 벽과 나무를 잘 정돈한 듯한 담장이 이어졌는데
이게 '프랑스식 정원'의 특징이라고 한다.
자연을 인간의 의지대로 정교하게 다듬어 만든 '초록색 건축물'의 느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무 담장으로 이루어진 길을 걷다 보면, 옆의 길과 시선이 차단되거나
우리만의 대화를 하기에 아늑한 길처럼 느껴졌는데~
이 담장들도 왕이 공원을 산책하면서 아지트 느낌을 내기 위한 의도가 담긴 걸까?
또한, 상수시 공원은 가는 곳마다 분수나 수로가 자주 보였는데
이 수로들은 분수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서 설계된 운하 시스템의 일부라고 한다.
당시에는 물을 높은 곳까지 끌어올리는 게 굉장히 힘든 기술이었는데,
왕이 곳곳에 수로를 내고 물을 다스리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힘이 자연의 법칙마저 통제하고 있음을 과시한 방법이란다.
오랑제리 궁전
Orangerie-Schloss
&
시칠리아 정원
Sizilianischer Garten
나무 담장으로 이어진 길 끝에 다다르니 작은 정원과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오렌지(Orange) 나무를 겨울철 추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든 식물원 겸 온실,
오랑제리 궁전 (Orangerie-Schloss)이다.
겨울에는 수백그루의 귀한 오렌지 나무와 이국적인 식물들을 보관하는 온실로 쓰였고,
중앙 부분은 귀빈을 위한 객실과 홀로 사용된 공간이라고 한다.
궁전 앞의 둥근 곳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형식으로 조성한 '시칠리아 정원 (Sizilianischer Garten)'
18세기에 상수시 궁전이 생긴지 100년 후!
19세기, 이곳에 머물던 빌헬름 4세가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따뜻하고 이국적인 풍경을 동경해서 만든 정원이다.
여름에는 추위에 약한 이국적인 식물들을 정원에 내놓았다가,
겨울이 되면 오랑제리(온실) 궁전으로 옮겨 보호하기 위해 두 공간을 세트로 조성한 건데
특이하게도 상수시 전체는 프리드리히 대왕이 좋아한 '프랑스의 로코코 양식'으로 유명하지만
이 공간은 '이탈리아를 동경하며 만든 르네상스풍의 정원'이다.
여기는 실제로 과일을 키우는 곳인 거 같은데...
과거에도 여기서 왕을 위한 과일들을 키웠던 걸까?
그림 갤러리
Bildergalerie
이곳은 프리드리히 대왕이
자신의 예술 수집품을 전시하기 위해 특별히 지은 '그림 갤러리(Bildergalerie)'다.
독일에서 오직 그림 전시만을 목적으로 지은 박물관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곳이라는데,
궁전 본관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어서 왕이 산책하다가 자주 들렀다고 한다.
역사적 풍차
Historische Mühle
화려한 궁전들 사이로 시커먼 풍차가 시선을 끌었다.
생각해보니까 진짜 풍차를 본 건 이날이 처음인 것 같다.
그동안 내가 봤던 풍차들은 튤립 축제나 순천만 네덜란드 정원에서 본 모형 건축물이 전부였으니까~
실제로 본 풍차는 빌딩 한 채처럼 거대했고, 생각보다 규모가 커서 놀랐다.
이 풍차에는 이야기가 하나 얽혀 있다는데,
프리드리히 대왕이 상수시 궁전을 지을 때
풍차의 소음이 너무 시끄럽고 궁전의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철거 명령을 내렸었다.
하지만, 풍차 주인은 아무리 왕의 말이 법이라 할지라도 재산권을 마음대로 침해할 수 없다는 의미로
"베를린에 판사가 있다"고 외쳤고 실제로 법원은 풍차 주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 후, 프리드리히 대왕은 사법 시스템의 공정함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패배를 인정했고,
이 사건 이후 '법 앞에 모든 이는 평등하다'는 법치주의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과거의 풍차는 안타깝게도 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되었으나
1993년 지금의 풍차로 다시 복원 후, 실제 밀을 빻는 풍차로 운영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내부를 박물관으로 개조해서
풍차의 작동 원리와 당시 사건에 대한 기록을 전시해두었다고 하니 둘러봐도 좋을 듯 하다.
풍차는 상수시 공원의 북쪽 문(?)이라고 해야 하나?
바로 앞쪽에 위치해 있는데, 그 문 앞에는 5시 전에 오면
특별한(?) 버스킹 연주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중세 시대를 떠올리는 하얀색 롤처럼 된 '페리위그' 가발에 의상을 입고 연주를 하는 분이 온다고 한다.
약 5년이 넘도록 비슷한 플레이리스트로 연주한다고 하는데
그 중 우리나라의 '아리랑'도 있다고 한다.^^
반원형 열주문
Semi-circular Colonnade
풍차를 마주한 공원의 문을 들어오면 만나는 곳이 바로 이 반원형 열주문!
두 줄의 코린트식 기둥이 반원형으로 궁전 북쪽을 웅장하게 감싸는 구조인데
과거, 왕을 알현하러 오는 신하들이 마차를 타고 도착해 내리는 공식적인 입구였다고 한다.
궁전의 가장 첫인상이 되는 입구에서 풍차가 돌아갔던 셈이니
프리드리히 대왕이 풍차를 왜 그렇게 신경을 썼는지 조금은 이해가 갈 것 같다.
기념품 샵도 있어서 상수시 궁전과 관련된 특별한 게 있을까 싶은데, 여기도 일찍 닫았다.
혜진이 말로는 최근 주인이 바뀌면서 분위기가 좀 바뀌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예쁜 게 좀 있었는데 지금은 별로 없다고~
루이넨베르크
Ruinenberg
반원형 열주 테라스 중앙 부분에서 멀~~~리 보면 보이는 건물이 하나 있는데,
1748년, 프리드리히 대왕이 그리스 로마 신전을 일부러 무너진 것처럼 지은 인공 유적이다.
당시 유럽 귀족들 사이에는 정원에 고대 유적을 배치해서
과거의 영광을 추억하는 감성적인 풍경을 만드는 게 유행이었다고 한다.
쓰면서 느끼는 거지만, 유럽에는 유행이 상당히 많았던 것 같다.
심지어, 작은 게 아니라 건축물이 유행이었고 국가적으로 트렌드를 따라했다니 놀라울 뿐이다.
게다가, 저~~~ 멀리에 있는 유적의 언덕! '루이넨베르크(Ruinenberg)'를 보면서
"내 정원이 저기 먼 산까지 이어지는구나"라는 만족과 동시에
건축물을 일직선으로 놓아 정원의 풍경을 더 깊고 웅장하게 보이려고 하는
치밀하게 계산과 배치한 결과라고 하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하지만, 루이넨베르크를 지은 건! 단순히, 과시욕뿐만이 아니었다.
이 유적 뒤에는 거대한 '물탱크'가 숨어 있었다는 사실!
언덕 높은 곳에 물을 모아두었다가,
낙차를 이용해서 궁전 앞 대분수의 물줄기를 쏘아 올리려던 공학적 시설인데
투박한 물탱크가 궁전에서 보이면 안 보이니까 그 앞을 그리스 신전으로 가려버린 거다.
안타깝게도 프리드리히 대왕 시절에는 기술 부족으로 저수지에서 분수까지 물을 보내는 걸 실패했고,
약 100년 뒤, 증기기관 기술이 발달한 후에야 우리가 아는 분수쇼가 가능해졌단다.
철제 정자
Treillage Pavilion
궁전 광장으로 들어서면, 철제 정자(Treillage Pavilion)가 하나 나오는데
컬러와 장식만으로도 매우 화려한 느낌이었다.
격자무늬 철제 구조물 위에 황금색 태양 조형물과 장식으로 꾸며놓은 게
정자 자체로 하나의 장식품 같았다.
정자 중앙에는 동상이 하나 있는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태양과 예술, 이성의 신! '아폴론'이라는 얘기가 있다.
상수시 궁전
Schloss Sanssouci
드디어 상수시 공원의 백미, 상수시 궁전(Schloss Sanssouci)이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원래 이곳에 궁전을 지으려던 게 아니었다고 한다.
그저 포도와 무화과를 키우기 위한 계단식 정원으로 만들었는데
이 언덕의 풍경에 반해 포도밭 정상에 아담한 궁전을 짓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정원이 먼저 조성된 후에, 궁전을 나중에 지은 독특한 사례였고
덕분에 자연과 잘 어우러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도 된 게 아닐까 싶다.
와... 계단이 진짜 많다. 상수시 궁전부터 왔다면 나는 저 계단을 하나 하나 다 올라갔어야 할 텐데...
계단 오르기가 아니라 내려가는 거라서 더 수월했던 것 같다.
편한 루틴을 짜준 혜진아~ 정말 고맙다!
우리나라에는 드라마 <눈물의 여왕> 김지원이 서 있었던 독일의 계단이 바로 여기다!
그때 김지원이 어찌나 예쁘고, 저녁 노을과 어우러진 그 풍경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대체 저기가 어디야? 싶었는데 그 계단에 내가 와 있었따!
상수시 궁전은 실제로 보는 게 더 예뻤는데,
사진에 그 모습이 다 안 담기는 게 아쉽다.
드라마 촬영감독님이 정말 예쁘게 잘 찍어준 거였다.
상수시 궁전의 가장 상징적인 풍경은 궁정 건물 전체보다는
건물을 향해 뻗어있는 6단의 계단식 포도밭이다.
계단 아래에서 보는 계단식 포도밭과 덩굴들이
층층이 쌓인 구조가 더 입체적으로 느껴져서 인상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포도밭과 궁전이 어울릴 거라고 감히 누가 생각할 수 있었을까?
심지어, 이곳은 원래 거친 덤불이 우거진 모래 언덕이었다고 한다.
이곳을 계단식 포도밭으로 개간하고 화려한 정원을 만든 것 자체가
프리드리히 대왕의 집념으로 이루어진 결과 아닐까?
이곳은 왕이 직접 스케치에 참여하고 설계, 세부 장식까지 지시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왕궁의 엄격함 보다는 개인적인 아지트 같은 친밀함이 느껴지는 공간이라서
'프리드리히 로코코'로 불리기도 한다.
상수시 궁전은 화려한 로코코 양식으로 지었지만,
프리드리히 대왕의 개인적인 우아함과 지적인 휴식을 강조한 '로코코' 양식의 정수가 더 맞는 표현 같다.
궁전이라고 하면 디즈니의 성이나 프라하의 성처럼 높고 거대한 규모가 생각나기 마련인데
프리드리히 대왕이 정원을 가깝게 느끼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번거로움 없이 자연으로 바로 나가고 싶어서
궁전임에도 불구하고! 실용적인 면을 강조해 단층으로 지었기 때문이다.
궁전 안에는 로마의 판테온을 본떠 만든 타원형 대리석 홀(Marble Hall)과
화려한 노란색 벽면과 꽃, 새 조각으로 꾸민 볼테르의 방이 유명하다.
볼테르의 방은 왕과 교류했던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가 실제로 머물렀다고 한다.
궁전 정면 외벽에 'SANS SOUCI'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재미있게도 SANS . SOUCI . 처럼 중간에 점(마침표)이 찍혀 있다.
이걸 보고 학자들은 "근심은 여기서 끝"이라는 마침표로 해석하기도 한단다.
상수시 궁전을 둘러보면서 흥미로웠던 사실은
이곳 '상수시'가 프리드리히 대왕과 그의 남자 지인들을 위한 공간이었다는 거다.
다시 말해 여기는 '금녀의 구역'이었다는 말씀!
왕비인 엘리자베스 크리스티네와는 사실상 별거 상태였고,
왕비는 베를린 북쪽의 '쇤하우젠 궁전'에 머물며 '상수시 궁전'에는 단 한 번도 초대받지 못 했다.
이 넓은 곳을 채운 건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 뿐이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는 이곳에 3년이나 머물며 왕과 밤마다 토론을 했고,
왕은 저녁마다 음악회를 열어 플루트를 직접 연주했다.
상수시 궁전 앞은 포토존으로도 유명해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프리드리히 대왕이 국민의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사랑 받는 관광지로 사람들이 찾는 곳이지만
가족과의 사이는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프리드리히 대왕은 결혼 생활 40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한 지붕 아래서 왕비와 밤을 보낸 적이 없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왕이 전쟁에서 돌아와 수년 만에 여왕을 만났을 때 건넨 첫마디가
"부인, 그동안 더 늙으셨구려(Madame, vous avez vieilli)"였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을 정도다.
겨울철 베를린에 와서도 왕은 '베를린 왕궁'에 머물렀고, 여왕은 별도의 궁전인 '쇤하우젠 궁전'에 머물렀다.
두 사람은 공식적인 행사가 있을 때만 얼굴을 비추는 철저한 쇼윈도 부부였던 셈이다.
대체 왜 그랬던 걸까? 알아보니~ 이 결혼은 프리드리히 대왕이 원해서 한 결혼이 아니라
엄격했던 아버지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가 강제로 시킨 정략 결혼이었다.
물론, 그 시절에 결혼은 정략 결혼이 많고! 심지어 왕족인데 정치적으로 결혼할 수도 있지 않나 싶지만
프리드리히 2세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증오했고, 때문에 아내한테도 정을 붙이지 못했다.
당시, 프로이센은 '인간보다 군인이 더 많은 나라'라고 불릴 만큼 딱딱하고 엄격한 군국주의 국가였고
프리드리히 대왕의 아버지는 예술을 쓰레기 취급하며 아들이 플루트를 불면 매질을 할 정도였다.
그런 삭막한 나라에서 아들인 프리드리히 대왕이 왕위에 오르자마자 만든 게
바로 이 섬세하고 화려한 로코코 양식의 '상수시 궁전'이다.
상수시 궁전은 프리드리히 대왕의 단순한 건축 취향이 아니라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언이었던 셈이다.
안타깝게도 왕비는 평생 왕을 짝사랑하며 기다렸다고...
그녀는 왕이 쓴 책들을 프랑스어로 번역하기도 하고, 왕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했지만
끝내 상수시 궁전의 문턱은 넘지 못했다고 한다.
심지어 사후에도 이어지지 못했는데...
보통 왕과 왕비는 성당 지하 모역에 나란히 안치되는 게 관례지만,
왕은 개들 곁, 상수시 테라스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겼기 때문이다.
결국, 왕비는 베를린 대성당 지하에 왕은 포츠담의 상수시 궁전 언덕 위에 따로 잠들게 되었다.
프리드리히 대왕의 무덤
Grave of Frederick the Great
몰랐다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던 이곳은
궁전 본관 테라스에 위치한 프리드리히 대왕의 무덤이다.
보통 왕의 무덤이라고 하면 웅장한 규모를 생각하기 마련인데, 굉장히 소박해서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곳이 독일인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 중에 하나다.
무덤 위에 감자가 놓여있는데, 이는 프리드리히 대왕에게 감사함을 전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란다.
가족에게는 차가웠지만, 국민들에게는 따뜻했던 프리드리히 대왕의 별명은 일명 '감자왕'
당시, 유럽에서 감자는 땅속에서 자라는 흉측한 작물이라는 편견이 강했다.
하지만 잦은 전쟁과 기근으로 굶주리는 백성들을 본 프리드리히 대왕은
감자가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하고 보급에 앞장 선 것!
하지만 백성들이 감자를 먹게 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는 백성들에게 감자를 심으라고 명령했지만,
백성들은 '개도 안 먹는다'며 거부했고,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도 기피했다.
그러자, 프리드리히 대왕은 기발한 심리 작전을 펼치는데
상수시 궁전 근처에 감자밭을 만들고, '이것은 귀한 작물이니 왕실 가족만 먹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백성들은 '왕이 저렇게 아끼는 걸 보니 엄청난 보물인가 보다' 생각했고,
호기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왕은 낮에는 감자밭을 무장한 군인들로 삼엄하게 감시하게 했지만,
밤에는 일부러 경비를 느슨하게 해서 백성들이 서리해갈 수 있게 했다.
그렇게 감자는 독일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덕분에 독일은 대기근을 극복할 수 있었다.
독일에 감자 요리가 유명해진 건, 이때부터 아니었을까?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은 그 고마움을 담아 꽃 대신 감자를 묘비에 바치고 있는데
이 풍경은 그가 얼마나 백성들의 삶을 살피고 돌봤던 '계몽군주'였는지 보여주는 것 같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무덤 옆으로는 11개의 무덤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데
바로 그가 사랑했던 11마리의 이름이 새겨진 무덤이다.
그는 생전 "나는 이 궁전 테라스 위, 나의 개들 곁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길 정도로
개들을 아끼고 사랑했는데 그게 어느 정도였냐면~
프리드리히 대왕은 왕비의 출입은 철저히 제한했지만
그의 반려견(이탈리안 그레이하운드) 11마리는
궁전 침실까지 자유롭게 드나들 정도로 좋아했고, 반려견을 애지중지했다.
그게 뭐 대수냐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당시 유럽에서 동물은 대표적인 사치품, 즉! 자신을 돋보이기 위한 물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프리드리히 왕은 단순히 동물이 아니라
자신의 반려견을 "나의 친구들(mes bons amis)"이라고 부를 정도로 좋아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왕은 개들이 침대에서 함께 자는 것을 허락했고,
개들이 시트를 더럽히거나 찢어도 "내 친구들이 한 일인데 뭐 어때"하며 웃어 넘겼다고 한다.
또한 왕이 식사를 할 땐, 반려견들이 식탁 옆에 앉아 왕이 주는 고기 조각을 먹었고
손님들과 얘기하다가도 개들에게 말을 걸며 예뻐하느라 대화가 끊기기 일쑤였다고 한다.
왕은 전쟁을 할 때도 반려견들을 데려갔었는데,
그가 가장 아꼈던 '비이케'가 전쟁 중 적군에게 붙잡힌 거다.
우여곡절 끝에 '비이케'는 왕의 곁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냉혈한으로 유명했던 프리드리히 대왕이 아이처럼 펑펑 울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당시 그가 남긴 편지들을 보면,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을 개들을 통해 치유했다는 고백이 많다.
"인간은 나를 배신하고 속이지만, 내 개들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준다"
이런 생각 때문에 그는 궁전 안에서 사람들과 부딪히기 보다는
개들과 조용히 산책하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프리드리히 대왕의 유언이 바로 이루어진 건 아니었다.
그의 유해는 전쟁과 분단 등 역사적 풍파로 여러 번 옮겨지다가
200년이 지난 1991년에서야 비로소 이곳에 안치될 수 있었다.
늦게라도 그가 바라던대로 이루어졌으니 편안하게 잠들지 않았을까?
매일 그의 아지트였던 상수시 궁전 곁에서 말이다.
대분수
Great Fountain
언덕 정상에 위치한 상수시 궁전에서는 정원 전체가 내려다보여 탁 트인 시야를 자랑한다.
정중앙에 위치한 커다란 원형 분수는 상수시 정원의 대칭미를 완성하는 핵심이 아닐까 싶다.
무게 있게 중앙을 딱 자리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날만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상수시 공원의 모든 분수가 물이 풍부하지 않았지만
여기, 중앙의 대분수는 물이 꽉 차 있어서 생동감이 느껴졌다.
상수시 궁전 정상에서 분수 쪽을 바라보면
분수 너머로 길게 뻗은 산책로와 숲, 포츠담의 현대적인 건물까지 한눈에 들어오는데
과거의 궁전과 현대의 도시가 공존하는 매력이 묘하게 다가왔다.
아까 그 인공 유적으로 만든 그리스 신전이 이곳의 분수쇼를 위해 지은 거라니...
여기서 뿜어나올 물줄기를 생각하니,
생전에 이루지 못했던 왕의 숙원이 뒤늦게라도 이루어져 다행이다 싶었다.
우리는 포츠담 대학교 쪽에서 상수시 궁전까지 약 2km에 해당하는 곳을 둘러봤을 뿐인다.
이것만 보는데도 2~3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는데, 이 공원을 다 둘러보려면 얼마나 걸릴까?
상수시 공원을 다~ 보려면 하루를 잡고 와도 모자라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또 가봐야지~^^
분수대부터 출구까지는 곧게 뻗은 가로수 길이 이어졌는데
독일에서는 곧게 뻗은 가로수길을 하우프트알레(Hauptallee)라고 부른단다.
길 양쪽으로 높이 솟은 나무들이 시원하게 뚫려서
걷는 동안 숲속을 걷는 느낌도 나고, 힐링도 됐다.
우리가 공원의 마지막인 상수시 궁전을 보고 내려오는 동안,
반가운 손님이 이 길로 걸어왔는데~ 바로 혜진이 남편, 지용이다.
혜진이의 생일이기도 했던 이 날,
지용이는 한 손에 케이크를 들고 마중 나왔는데
우리는 지용이가 반가우면서도 지용이가 사온 케이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왜냐? '상자'에 포장이 되어 있었거든~
우리가 종일 쌩쇼를 하며 가방이 물들고, 박스를 사고, 에코백을 새로 사고 했던 그 케이크 포장!
지용이는 대수롭지 않게 "상자에 해주던데?" 했다.
왜 케이크가 녹고, 새고, 가방이 물들고, 상자를 사는 수고를 했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ㅋㅋㅋ 평온한 표정!
혜진아, 우리는 왜 그렇게 쌩쇼를 했던 걸까?ㅋㅋㅋ
여기는 '근심 없는' '상수시 궁전'
이날 있었던 근심은 훌훌 다 털어버리고
우리의 다음 목적지 '와인 축제'로 가자~~~~
어차피 케이크 소동은 다 해결된 후이기도 했으니까^^
※ 상수시 공원 (Sanssouci Park) ※
주소
☞ Zur Historischen Mühle 1, 14469 Potsdam,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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