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10일
⊙ 5월 10일 동선
알트슈타트 → 벡 베르크 → 체칠리엔호프 궁전 → 마이어라이 융페른 호수 → 하이더 카페
→ 포츠담 네덜란드 거리 → 상수시 궁전 → 포츠담 와인 축제 → 혜진이네 집 → 숙소 복귀
까만 밤 아니고 푸른 밤
와인 축제의 여운을 싣고~
혜진이와 지용이 부부의 집으로 향했다.
벌써 1년이 다 되어가는 기억이라 그런가...
작년 5월의 유럽 여행이 조금씩 희미해져 가고 있는데
이날 밤, 혜진에 집으로 가는 길은 딱 한 컷으로 정리된다.
#. 나란히 걷던 나와 혜진이, 그리고 그 앞으로 도마를 어깨에 걸쳐 들고 가던 지용이
이때 축제 현장에서 집까지는 어떻게 갔더라?
뭔가 타고 넘어가긴 했는데, 트램에 타고 있던 우리가
이날 저녁 탔던 트램인지 다른 날 탔던 트램인지 그게 헷갈린다.
와인 축제가 끝나갈 무렵부터 떠올려보면…
주변의 분위기는 조명이 하나둘 꺼졌고, 점점 까맣게 어두워졌었는데 그 순간!
"2차는 저희 집으로 가시죠" 하는 한 마디에
캄캄했던 주변이 조금씩 밝아지는 듯했다.
그날을 일찍 끝내기 싫은 아쉬움이 달래져서일까?
더 놀고 싶은 반가움이 컸던 걸까?
하늘에 별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조차도 가물가물하지만, 내 마음이 반짝반짝 빛난 건 틀림없다.
포츠담의 푸른 밤, 대로변을 걷던 우리 셋! 그게 5월 10일 우리의 한 컷이다.
혜진이네 첫 방문
혜진이네 집은 포츠담의 한 빌라(?)라고 해야 하나?
오렌지빛 조명이 빛나고 있는 건물이었다.
대로변에서 건물 안으로 바로 이어지지 않고,
필로티 구조처럼 벽으로 이루어진 건물의 터널 같은(?) 통로를 지나 건물 입구로 들어가는 게 신기했다.
나라마다 '집'의 구조가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에
실제 가정집을 본다는 게 흥미롭고 좋았다.
혜진이네 집은 ㄷ자 구조라고 해야 하나?
현관을 열면 주방과 욕실이 있고, 기다란 거실을 거쳐, 방으로 이어지는 구조였다.
혜진이가 독일에 이민가게 될 때, 아무것도 없던 이 집의 사진을 봤던 기억이 났다.
우리나라는 주방 싱크대나 가전을 놓는 곳, 전기 배선 등이 기본 옵션으로 되어 있지만
독일은 이사 오는 사람이 모든 걸 다 해야 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공간 자체만 빌려주는 거지, 안에 있는 모든 건 하나 하나 세입자가 창조해야 하는 것이다.
텅 비었던 집에 가구며 살림살이가 채워진 모습을 보니까~
뭐라고 해야 할까? 혜진이가 얼마나 고생했을지, 물건 하나하나 고르느라 얼마나 고민을 했을지~
눈앞에 그려져서 기특하기도 하고, 타지에서 고생했을 거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찡하기도 했다.
집 공사하랴, 서류 정리하랴 꽤 긴 시간을 고생했던 걸 익히 들어서 알았기에
그저 이 집이 지금처럼 꾸며질 수 있었다는 게 대단했다.
집을 소개해주면서 혜진이 책상 위치는 왜 여기 있게 됐는지, 이 가구는 어떻게 사게 됐는지,
남편이 게임을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는 컴퓨터 앞까지
소소한 일상의 얘기가 더해진 부부의 공간은 따뜻한 온기가 가득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야
"생일에 이렇게 다양한 케이크~ 처음이에요!
누가 다섯 가지 케이크나 한 번에 먹겠어요~ ”
혜진이가 한 말이다.
어쩜 이렇게 말도 예쁘게 하는지~
이런 시선으로 볼 수 있다는 건 생각지도 못 했다.
어떻게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지?
나는 케이크가 망가져서 속상하기만 했는데,
혜진이의 말을 들으니까 마음이 스르르 누그러졌다.
2025년 5월 10일 오후 11시 08분
혜진이의 생일이 끝나기 전에, 우리는 케이크와 함께 파티를 즐길 수 있었다.
생일상 안주는 지용이가 구운 소고기와 소시지였는데
이 소시지도 종류별로 다 다른 거라고 한다.
"이건 오스트리아 비엔나 소시지고, 이건 복부어스트예요"
지용이가 소시지를 자르면서 해준 말인데
얼핏 보기엔 다 비슷한 소시지고 두께만 좀 다른 거 같은데
어떻게 보자마자 다른 소시지라는 걸 알 수 있지?
삼겹살과 소고기를 구분하는 것처럼 쉬운 걸까?
소시지를 많이 먹다보면, 나도 나중에 보기만 해도 그 차이를 확 알려나?^^
앞쪽에 통통한 두 개는 '복부어스트 (Bockwurst)'
껍질이 팽팽하고 육중해서
한 입 베어물었을 때, 육즙이 가득 차 있는 스타일이다.
전통적으로는 주로 송아지로 만드는데
요즘은 돼지고기로도 많이 만들고
'복비어(Bockbier)' 즉, 진한 맥주와 함께 먹기 위해 만들어진 소시지란다.
두께가 통통해서 하나만 먹어도 배부를 거 같은 크기다.
가운데 얇은 소시지는 '비엔나 소시지 (Wiener Würstchen)‘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비엔나 소시지의 조상격이란다.
나는 동글동글 생겨서 줄줄이 엮여있는 소시지는 그냥 전부 다 비엔나인 줄 알았다.
마트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소시지 말이다.
비엔나 소시지에 이런 포인트가 있을 줄은 몰랐다.
비엔나 소시지 맛의 핵심은
돼지고기와 소고기의 비율이 정말 중요하다는데
유럽은 소시지도 장인이 만든다고 하니
이 비엔나 소시지도 집집마다 비결이 다르려나?
비엔나 소시지의 맛은 껍질을 씹었을 때 '톡'하고 터지는 경쾌한 식감이 좋았다.
실제 유럽의 비엔나 소시지는 줄줄이 엮인 상태가 아니라 생소했고, 요렇게 얇은 게 특징이라고 한다.
소시지가 종류도 많지만,
포인트도 정말 많아서 각각 다르다는 게 신기하다.
가장 안쪽에 있는 길고 진한 갈색의 소시지는 '드라이 소시지 (Dry Sausage)'
육포처럼 쫄깃하고 단단한 식감이고 훈연 향이 느껴지는 소시지다.
요런 소시지를 보면 기름 두른 팬에 노릇노릇 구워먹는 게 제일 먼저 생각나는데
소시지마다 맛있게 먹는 조리법이 달랐다.
물에 담갔다가 빼서 살짝 데워먹기도 하고
끓는 물에 데쳐서 먹기도 하고
기름에 튀겨먹기도 하고
오븐에 구워먹기도 하는 등 정말 다양했다.
특이한 조리법이 있는 건 아니지만
소시지 했을 때 대중적이라고 느꼈던
프라이팬에 기름 둘러 구워먹기가 기본이 아니라서
좀 더 생소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특히, 복부어스트나 비엔나 소시지는 물에 살짝 데쳐서 먹어야 맛있단다.
실제로 물에 데친 소시지는 짠 맛도 덜하고
육즙도 더 풍부해서 술안주로도 딱이었다.
여기에 혜진이가 직접 담가서 만든 김치를 같이 먹었는데~ 와우! 금상첨화!
지용이가 혜진이가 직접 만든 김치라며 맛있다고 하자
혜진이가 처음 만들어본 거라 살짝 부끄러워했는데~ 맛이 자랑할 정도로 정말 훌륭했다.
양념도 맛있었고, 먹기 좋은 크기였고, 소시지와도 잘 어울렸으며
타지에서 김치를 담가서 만든 혜진이가 대단했다.^^
우리의 이야기는 몇 번이나 주제가 바뀌며 새벽까지 이어졌고,
혜진이와 내가 같이 일할 때 겪었던 이야기도 지용이한테 들려줬다.
혜진이는 지용이를 이해시키기 위해 종이에 필기까지 해가며 열변을 펼쳤고
지용이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한 표정이지만 대답은 웃으며 '알았어~'라고 반응했는데
그 모습에 약이 오른(?)이 맞나? 빡이 친?
어쨌든 약이 오른 것과 화가 나기 전의 중간 단계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부부의 그 모습이 어찌나 웃기던지~
'둘은 천생연분이 맞다!'
말할 때 보면 창과 방패 같은데 적당히 찔려주고, 적당히 막아내는 사이다.
벽에 대화를 하는 것처럼 팽팽했던 둘의 대화가
어떤 때 보면 스무스하게 얽혀 있다. 스펀지 창과 방패였나보다~^^
뛰어야 산다
우리의 대화는 그렇게 해뜰 무렵까지 이어졌고,
시계를 본 혜진이가
"지금 가야 해!"
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정신없이 일어났다.
집 문을 잠가야 해서 키를 찾았다가 키를 못 찾고 뛰었나? 그냥 갔던 거 같기도 하다.
혜진이네 집에서 호텔이 있는 곳까지는 걸어서 약 40분?
트램이나 기차를 타면 15~20분 거리였나?
하지만, 새벽에 나 혼자 타지에서 걸어가기에 무리였고
혜진이 혼자 데려다주기도 무리였고
가려면 혜진이랑 지용이, 내가 전부 움직이는 건데
편도는 40분이지만 왕복은 1시간이 넘는 거리다.
그래서 우리는 뛰어야만 했다.
와~ 간만에 숨 헐떡이며 뛰었던 거 같다.
혜진이는 단거리 선수처럼 질주해서 달려갔고, 기차역의 계단도 단숨에 뛰어올랐다.
나도 혜진이의 뒤를 열심히 따라갔고,
지용이는 급하게 슬리퍼 끌고 뛰었던 거 같다.
어떤 길을 어떻게 뛰어갔는지 모르겠다.
그저 머리를 질끈 묶은 혜진이의 동그란 뒤통수와 등판을 따라 뛰어서 그 모습만 생각난다.
죽어라 뛴 덕분에 세 명 다 무사히 기차에 탈 수 있었고,
숨을 고르는 사이 포츠담 중앙역에 도착했다.
새벽 5시, 조금 있으면 해가 뜰 시간...
우리는 다음 날 아니고 몇 시간 후 해장을 기약하며
길었던 2025년의 5월 10일을 마무리했다.
지금도 이날을 생각하면 그저 웃음이 새어나온다.
심장 뛰게 즐거웠던 순간들이...
모든 게 다 처음이었던 포츠담에서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