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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일 Jan 10. 2023

나의 영상 해방일지

갇힌 나를 해방시키기

2023 0109


#9



“모든 기록은 연결되어 ‘생각의 고리’가 됩니다. 5년 전 기록이 오늘의 기록과 결합해 새로운 의미를 낳고, 저의 기록이 누군가의 기록과 이어져 더 나은 생각이 되기도 합니다. 결국 기록은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이자 우리를 성장시키는 자산이 된다고 믿습니다.”


-이승희, <기록의 쓸모>


“나는 내가 왜 이것을 기억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하여, 집요하게 모든 기억들을 채집하고, 기록했다. 휴대폰 노트와 녹음기에, 일기장에, 메모장에, 적을 수 있는 모든 곳에. 영화 <벌새>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언제나 소설 쓰기가 깊은 애도의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처리하지 않았던 슬픔을 다시 한번 깊이 느끼며 소화하는 일이라고. 그리고 그 마음이 글을 읽는 사람의 마음속 기억을 끌어내 어떤 애도를 가능하게 하게 할지도 모르리라 희망했다. 


벌새를 만드는 과정은 집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 비로소 집을 찾게 되는 과정이었다. 나는 모든 것이 치유되었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내가 이 과정 속에서 인간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촬영이 끝나고 며칠 후, 나는 다시 중학교 시절의 꿈을 꿨다. 아이들이 나를 모두 환영해 줬고, 나는 집에 온 것처럼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 신비하고 상서로운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가 떨어져 나갔다. 아, 이제 정말 끝났구나, 하고 느꼈다.


-김보라, 영화 <벌새> 감독





저는 사실… 시 쓰는 걸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시인이셨거든요. 

덕분에 ‘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짧은 시간이 푹 빠져들게 되었어요. 시라는 장르에 말이에요.

용돈 모아서 다른 거 안 사고 시집을 사서 읽었어요. 

백권 이상 샀었던 걸로 기억해요.


추상적이고 모호한 단어들..

그런 단어들이 연결돼서

무언가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

짧은 시간 안에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그 속으로 깊이 빠져들게 하는 것..


한 편의 시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 참 매력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11학년 그러니까 고등학교 2학년 때, 

영상에 눈을 뜨게 되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저는, 영상으로 시를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제가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나

경험하지 못한 생각을 


영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저에게 정말 어려운 일이었죠.


제 생각이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과 의견을

영상으로 풀어서 상대방을 설득시킨다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었고요.


다시 말해, 제가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영상으로 말한다는 것은 제게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지극히 내성적인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많은 것을 경험하길 원했어요. 


다양한 사람도 만나보고 

여행을 통해 새로운 장소에 가 보는 것을 좋아했죠.


영상에 관해

최근에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어요.


저는 영상으로 해방을 꿈꾸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제 자신을 돌아보면 

저는 제가 힘든 일이 있거나, 

어떤 고민으로 생각과 걱정이 많아지면,

혹은 성장과정에서의 상처 때문에 아파하는 때가 오면,


시를 썼던 것처럼 영상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감정과 상황에 갇혀 있는 저를 스스로 해방시키려고 했어요.


저는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들과

새로운 경험들과


여러 관계들과 

풀리지 않은 생각들, 감정들을 


영상이라는 도구를 통해

해석하고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그래서 막혀있는 담을 헐고

웅크려 있는 나에게 손을 뻗으려고 했던 것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끊임없이 시를 쓰고, 영상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요. 


영상으로 나를 해방시키고.

내 영상을 보는 또 다른 누군가의 해방을 도와주는 거죠.


지금, 제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이

어떤 이유로든 

무언가에 갇혀 있다면, 


제 짧은 글이 당신에게 

하나의 작은 위로가 되었길 바라요.




“깊숙이 “내 이야기”인 것은 결국 다른 이의 이야기가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가장 구체적일수록, 그것은 가장 보편적일 수 있다는 것을.”


-김보라, 영화 <벌새> 감독




#영상이야기 #기록하는이유 #나의영상해방일지 #벌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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