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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일 Jan 18. 2023

심부름하러 왔습니다.

2023 0117


#17


지난해 11월, 미국 보스턴에 “ReNew”라는 청년집회에 참석했었다. 


그런데 첫째 날 저녁 설교를 맡으셨던 강사님께서 코비드에 걸리시는 바람에 

집회 일정이 바뀌어 둘째 날 저녁 (그러니까 마지막 밤 저녁), 현장 설교 대신 녹화영상으로 설교를 듣게 되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진행팀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과연 영상설교에 우리가 잘 집중할 수 있을까, 현장설교만큼 임팩트가 있을까,

코비드에 걸리셨는데 편찮으신 몸으로 메시지를 잘 전해주실 수 있을까 하고 내심 걱정이 되었다.


찬양이 끝나고 커다란 스크린에 설교자의 얼굴이 나왔다.


설교자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은혜,’ ‘십자가’ 등 우리들에게 익숙한 찬양곡들을 작사하신 조은아 교수님이었다.

(어제 조준모 교수님 관련 글을 적으며 알게 된 사실인데 조은아 교수님과 조준모 교수님은 친남매이다. 이걸 이제 알았다니..)


그런데 모든 사람들의 염려를 깨고 조은아 교수님은 너무나도 건강하고 침착한 모습으로,

또렷하고 다정다감한 말투와 제스처로, 지금까지도 나의 기억에 남는 정말 은혜로운 설교를 전해 주셨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며, 우리의 생각과 걱정을 뛰어넘어 일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이었다.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우리는 심부름을 하러 이 세상에 왔습니다.”라는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러시아에서 선교사역을 하고 계실 때, 

교수님은 아들에게 생에 처음으로 심부름을 시키셨다고 한다.


계란과 감자, 그리고 우유를 사 오라고 시키시고 떨리는 마음으로

아파트 베란다에서 아들을 쳐다보는데,

아들이 열심히 뛰어가다가 한 번 멈칫하더니, 

뒤돌아 서서 다시 집을 향해 뛰어오다가 

또 멈춰 서서 뭔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다시 방향을 바꾸어 슈퍼로 향해 길을 가더란다. 


그러니까 아들은, 길을 가다가 엄마가 무엇을 사 오라고 했는지 깜빡 잊어버린 것이다.

다시 집에 돌아가 엄마에게 물어보려고 길을 되돌아오고 있었는데

번뜩 기억이 나서 다시 원래 가던 길로 되돌아간 것이다.


조은아 교수님은 우리 크리스천의 이 땅에서의 삶이 마치 어린아이의 심부름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하나님이 부탁하신 일을 잘하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특별히 두 가지를 잘해야 하는데,

우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잘 기억하고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깜빡하고 시키신 일을 잊어버릴 때가 오겠지만,

얼른 기억해 내고 앞에 주어진 길 걸어가면 된다.


심부름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따뜻하게 반겨주시는 그분이 있고,

우리를 영원히 채워줄 맛있는 요리가 있다.


아아, 이 예화를 들었을 때, 

내 마음에 얼마나 큰 감동이 몰려오던지…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었던지…


맞다. 나는 심부름을 하러 이 세상에서 살고 있다.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그런데 또 나의 것이 맞기도 하다.


심부름을 하는 어린아이처럼

심부름시키시는 아빠의 말을 귀담아 잘 듣고,

길 가면서 내가 무엇을 향해 가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까먹지 않게 늘 기억하고,

맡겨진 그 일 충실히 잘하고,

다시 아빠 품으로 돌아가면 된다.

그럼 된다. 


계란과 감자와 우유.

그래, 나는 지금 심부름을 하고 있다.


#심부름 #조은아교수 #보스턴 #Re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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