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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일 Jan 22. 2023

일, 주일.

2023 0121


#21


4년 전쯤, 주일 예배 때 찬양인도를 하기 위해 스테이지에 올라갔을 때의 일이다.

환영인사를 하고 있는데 새가족이신지 처음 뵙는 중년 여성분이 중간쯤 홀로 앉아 계셨다.


그런데 그분께서 아직 첫 찬양도 시작되기 전인데,

갑자기 눈물을 쏟으시면서 울기 시작하셨다.


무슨 사연이 있으실까 하고 그분을 쳐다보다가 눈을 마주쳤는데,

그분의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한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찬양하는 내내 그분은 우셨다.

그저 울면서 기도만 하셨다.


너무나도 강렬한 슬픔이었기에

찬양이 끝나고도, 예배하는 내내,

그 이후 그 주간 내내

나는 그분의 눈물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밤

길을 걷다가 또 갑자기 그분의 눈물이 생각나서

깊은 슬픔에 잠겨있던 단어들을 건져 올리기 시작했다

그 말들이 흩어지기 전에

나는 얼른 가방에 있던 수첩과 펜을 꺼내

걸으면서 글을 적어 나갔다.


아래는 그때 적은 시이다.


-


주일,


고요히 어둠이 깔린 예배당엔

일주일 동안 묵혀둔 삶의 소리가 가득하다.


바람 잘 날 없는 우리네 인생이건만,

어디 가서 아프다 하지 못하고 이곳에 왔다.


차마 오지 못한 발걸음들은

그분의 침묵의 무게를 살아내는 중이겠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상심하다가도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전심으로 소리를 모은다.


모든 것이 다 이해되면 좋으련만,

모든 삶이 다 행복하면 참 좋으련만,


그분은 그런 우리를 보시고

그저 꼭 안아 주신다.


내일은 보이지 않아도

오늘, 그분의 모습은 희미하게 보인다.


아바, 아버지

아바, 아버지.


이 한마디 외침으로

엇놓인 나무 둘, 그 다리를 건넌다.


사랑한다 내 아들아,

사랑한다 내 딸아.


이 한마디 울림에

오늘도 풍랑 속 우리의 배는 안전하다.


마음속 조그만 불빛,

조그라든 발등을 비춰오면,


그렇게 또 걷기 시작한다.

그렇게 또 새롭게 시작된다.


일,

주일.


-


그 주일 이후로 그분은 다시 볼 수 없었다.

그렇지만, 분명 매 주일 예배에는

그분처럼 일주일 내내

한마디 기도도 못할 만큼의 고통 가운데 아파하다가

겨우 힘을 내어 교회에 오신 분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 예배가 충만한 위로의 예배가 되길..

또다시 일주일을 버틸 힘을 주는 회복의 예배가 되길..


#예배 #주일 #슬픔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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