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129
#29
‘왜 내 뺨이 아팠을까?’
영화 위플래쉬 (Whiplash)를 보았다.
위대한 재즈 드러머가 되기 위해 독한 선생님 밑에서
채찍 (whiplash)을 맞아가며 훈련하는 학생 앤드류의 이야기이다.
제자들을 인격체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독설과 폭력으로 언제든지 대체할 수 있는 소모품으로 대하는 플레쳐 지휘자 / 음악 선생님.
아니, 이런 비인간적인 사람에게 ‘님’이라는 존칭을 과연 붙이는 게 과연 맞는 일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제자들에게 칭찬 한 번 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심한 욕을 하며 의자를 집어던지고, 뺨을 때리는가 하면,
새벽 2시까지 피가 터지도록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의 음악을
해낼 때까지 몰아넣고 압박을 주는 광기로 가득한 선생.
플레쳐 선생은, 그렇게 해야만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이전에는 없었던 위대한 예술가가 탄생할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감독의 인터뷰를 찾아보니, 자신도 음악으로 유명한 고등학교의
재즈밴드 드러머 출신으로, 자신의 경험을 녹여 만든 영화라고 한다.
그는 ‘예술’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예술은 가볍고 즐거워야 한다"와 "예술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중
어떤 길을 갈지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 결론을 못 내렸다.”
정말 예술의 높은 경지에 오르려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고민을 할까?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보니,
예술의 최고 경지에 있는 사람들, 특히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피 터지는’ 연습과 경쟁을 하며 최고 수준의 예술을 대중에게 보여주지만,
정작 본인은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면서 또 알게 된 사실은,
유난히 한국에서 이 영화가 ‘해피엔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숨은 재능을 끌어올리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혹독한 훈련은 필요하다.’
‘이 영화는 나를 돌아보게 하고 채찍질해 주는 동기부여 영화였다.’ 등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다고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앤드류가 기어코 플레쳐 선생의 마음에 흡족한 연주를 해 보인다.
그런데 카메라는 백스테이지에 있던 아빠의 표정을 자세히 보여준다.
플레쳐 선생의 모습을 닮아가는 아들,
자신을 파괴시키는 예술’의 길을 가는 아들을 보는 아빠의 표정은
걱정과 공포가 담긴 표정이었다.
‘아 이제 내 아들이 아니구나’ 하는 듯한 표정..
아빠를 백스테이지에 남겨두고 영화는 계속됐지만,
나에게 있어 영화는 아빠의 그 얼굴에서 끝이 났어야만 했다.
그래야 영화 내내 사라지지 않았던 불편하고 불쾌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사라질 것만 같았다.
나는 앤드류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앤드류의 음악으로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그러나 많은 사람의 행복이 앤드류의 ‘자기 파괴적 불행’으로 가능한 일이라면,
나는 앤드류가 그 길을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성공’이라는 큰 영광만 보고,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가치를 재능과 성공이라는 틀 안에 가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더 이상 스스로 증명해 보이려고 애쓰며
스스로를 고통에 몰아넣고 파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앤드류에게 정말 필요했던 것은,
플레처 선생에게도 동일하게 필요했던 그것이 아니었을까?
‘변함없는 조건 없는 무한한 사랑.’
앤드류가 플레쳐 선생에게 뺨을 맞을 때,
나는 마치 내가 뺨을 맞은 것처럼 아팠다.
숨이 막히고 괴로웠다.
나는 왜 그랬을까?
나는 왜 앤드류가 되어야만 했을까?
왜 그의 아픔이 나의 아픔으로 느껴졌을까?
나를 대신해 뺨을 맞아주고,
채찍을 맞아주신
그분의 사랑이
나의 마음을 움직인 게 아니었을까?
오늘도 삶의 무게에, 성공의 압박에 짓눌려,
자기 자신을 돌보고 사랑할 여유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그분의 공감의 위로와 참 사랑이 있기를 소망한다.
#위플래쉬 #사랑 #예술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