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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일 Feb 05. 2023

할머니 시인

2023 0203


#34


‘할머니 시인’



평생 교육의 기회를 가지지 못한 전남 완도군 섬마을 황화자 할머니 (83세)는

70이 넘는 나이에 처음으로 한글을 배우기 시작하셨다.


남편 할아버지의 적극지원으로 일기도 써보고 숙제도 해 보며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기쁨을 맛보던 할머니는

갑작스러운 할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한 후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황 할머니와 같은 한글학교 출신 30여 명의 작품을 묶어

올해 시화집 <할 말은 태산 같으나>가 출판되었다.


아래는 황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쓴 시, ‘오직 한 사람’이다.


유방암 진단받은 나한테

남편이 울면서 하는 말,

“5년만 더 살아.”


그러던 남편이

먼저 하늘나라로 갔다


손주 결혼식에서 울었다.

아들이 동태찜 사도 눈물이 났다.

며느리가 메이커 잠바를 사 줄 때도

울었다.

오직 한 사람 남편이 없어서.


-


황화자 할머니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강원 삼척의 임선녀 할머니 이야기도 있다.

<한창나이 선녀님>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임 할머니의 사연이 소개되었는데,


18세에 시집가서 평생 소 키우고 자식 키우다가 암으로 남편과 사별한 할머니는

글을 모르니 각종 고지서가 날아와도 처리를 못해 일상에 큰 불편을 겪던 차에 글을 배우시게 되었다.


할머니는 이렇게 고백하셨다.


‘나는 소처럼 일만 하며 농사를 배웠습니다.

(남편이) 죽어도 눈물 한 방울 못 흘려봤소.

내가 아주 이를 악물고 참고

또 되새기며 참고 그렇게 살아왔어요.’


-


황화자 할머니도, 임선녀 할머니도, 그 외 수많은 글을 모르는 할머니들도,

한글교육을 통해 글을 쓰고 발표하며, 그동안 억압되었던 감정들이 풀려나는 ‘해방’을 경험하였다.


아, 글이라는 것이, 기록하는 것이,

그리고 그것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우리를 자유케 하고 살아갈 힘을 주는가?


매일 ‘일기’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지 34일째,

조금씩 생각이 깊어지고 넓어지는 것을 느낀다.

정리되지 않았던 과거의 기억들이 글을 통해 제자리를 찾고 있음을 경험한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

최고의 가치를 두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반성하고 회개하며 용납하고 용서하는 힘을 얻게 된다.


황 할머니, 임 할머니와 같은 이야기들을

영상으로 풀어내고 나누는 일들.

이 일을 나는 하고 싶다.


내가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모든 이들의 아름다운 해방을 위하여.


#한글 #해방 #글쓰기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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