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207
#38
바람이 오는 것은 신비하다.
오늘 아침이 그러했다.
어젯밤까지도 속상하고 답답한 마음에
무기력하게 한마디 기도 겨우 내던지고 잠에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오늘 그분의 편지를 읽으니
분명 창문은 닫혀 있는데,
바람이 불었다.
이 바람은 안에서 부는 바람이다.
그래서 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불어올지 알 수 없다.
어느 순간 훅 하고 불어와
내 마음을 적신다.
무거운 바람,
그러니까 촉촉한 습기를 가득 머금고 있는,
아침 안개의 그것과도 비슷하고,
깊은 산속 폭포에서 불어오는
시원하고 진득한 그런 바람과도 비슷하다.
이 바람이 불면,
내 입술은 움직인다.
내 안 깊은 바다
빛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갇혀 있던
한 마디, 두 마디 말들이
서로 깨우며 피어오르고
피할 수 없는 그 손에 잡히어
생명력 있게 물 위로 튀어 오른다.
나는 그 말을 내뱉는다.
생명이 탄생한다.
그 말은 곧 바람에 실려
하늘로 올라간다.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뜨거운 언어의 비가 내린다.
그 비는 내가 펼쳐놓은 편지 위에 떨어진다.
새로운 문장을 완성시킨다.
그 편지는 이제 나의 편지가 된다.
그러면 곧 바람은 사라진다.
오늘 아침이 그러했다.
바람이 오고 가는 것은 참 신비하다.
#바람 #편지 #언어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