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212
#43
‘산과 바다와 다른 무엇’
20대 때는 바다를 좋아했다.
답답한 일이 많아서였는지 탁 트인 바다에 가서
해가 질 때까지 멍하니 수평선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바다는 고민 많던 나를 곧잘 받아 주었다.
그런데 30대가 되고 나서는 산이 좋아졌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바람이 심하게 불든
늘 그 자리에 서 있는 산이 좋았다.
흔들리는 일이 많아서였는지 먼 산을 바라보며
마음을 터놓는 시간을 좋아했다.
20대 때는 내가 누군지를 찾아 헤맨 기억들이 많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무엇에 열정을 쏟고 싶은지 알아가는 여정이었다.
이렇게 나’라는 사람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아직 어렸기에, 서투른 실수와 그로 인한 아픔들이 많았었다.
30대 때는 나를 나답게 하는 것들에 더 집중하는 때인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가장 중요한 것들에 힘을 더 쏟으며,
다른 어떤 사람이 되려고 하기보다
진짜 나답게 사는 법.. 진짜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바다에 가면
잊었던 아픔의 추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하지 않았어야 했던 말들,
참았어야 했던 행동들이 가까이 다가왔다 또 멀어져 간다.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모래사장에 써놓은
내 이름처럼 흩어져 으스러져 간다.
그러다 산에 가는 일이 생기면,
산 중턱 안개에 숨겨져 있는
나의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호수라도 만날라 치면, 물결 하나 없는
잔잔하고 고요한 표면 위에
깨끗하게 비친 나의 얼굴이 드러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산은 말해준다.
산 바위틈에 핀 꽃은 내가 살아야 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40대가 되면 또 어떻게 될까?
40대의 바다는, 40대의 산은
지금과 또 어떻게 다른 모습으로 나를 가르쳐 줄까?
산과 바다 말고 또 다른 곳에 가는 것을 좋아하게 될까?
나는 또 무엇에 집중하고 어떤 얼굴을 하고 살아가고 있을까?
오늘의 기록을 40대 중반에 다시 보게 된다면,
그때의 나는 오늘의 나에게 말을 걸 수 있겠지.
바다처럼 산처럼, 나를 비추고 받아줄 수 있겠지.
#산 #바다 #다른무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