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427
#118
‘기억이 추억이 되는 순간’
눈을 감아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가령 다섯 살 때 해수욕장에서 맛본 후라이드 치킨의 맛이라던지,
열두 살 때 처음 타 본 비행기의 냄새라던지 하는 것들 말이다.
이것들은 장기 기억저장소에 보관되어 있는
몇 번이고 원할 때마다 꺼내서 추억할 수 있는 기억들이다.
물론 기억하기 싫은 악몽 같은 일들도 장기 기억저장소에 보관되어 있다.
이 기억들은 보통 찾기 힘든 곳에 꼭꼭 숨겨져 있는데
주인이 찾으러 오는 경우는 흔치 않고, 외부의 다른 요인들에 의해 꺼내져서 재생되곤 한다.
주인은 기억의 소유자이긴 하지만, 기억의 지배자이진 않다.
주인이 기억에 지배당하고 있다면, 그 기억은 주인을 아프게 할 것이다.
우리는 흔히 그런 기억을 ‘트라우마’라고 부른다.
그렇담 주인이 기억의 지배권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주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다름 아닌 ‘기록’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 기억에 대한 기록의 나눔’이다.
이를 통해 주인은 그 기억으로부터의 모종의 ‘해방’을 경험할 수 있다.
기억은 기록할 때 지배되고
나눠질 때 해방된다.
장기 기억저장소 창고 깊숙한 곳에 숨겨놓은 아픈 기억의 조각들은
그러므로 기록되어야 하고 나눔을 통해 표현되어야 한다.
그때 기억은 비로소 추억이 된다.
기억이 추억이 되는 순간,
그 눈부시게 아름다운 순간을 위해 우리는 기록을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