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교수학습센터 이용하기
지난 글에서도 이야기 했듯 대부분의 교수들은 교육에 대해 전문적으로 배울 기회가 없다. 교수직을 지원하기 위해 "박사" 학위가 필요했지만, 이건 특정 분야의 "박사"를 뜻할 뿐이었다. 박사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건 독립적인 연구자로 성장하는 것이고, 이를 위한 여러 훈련을 받았다. 다른사람을 가르치는 법은 대부분 그 안에 포함되어있지 않다. 그러다 실제 교수가 되면서 아니면 교수가 되기 위해 지원하면서, 그동안 깊이 생각 안 해본 "교육자" 역할에 대한 고민을 갑작스럽게 시작하게 된다.
그럼 "교육자"가 되려는 교수와 대학원생들은 어디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까?
내가 박사 과정과 그 이후에 대학에서 일하면서 알게 된 건, 도움받을 곳이 생각보다 매우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체계적으로 말이다. 대부분 대학에는 이름은 조금씩 다르지만 "교수학습센터(Teaching and Learning Center)"라는 부서나 기관이 있는데, 여기가 바로 교수와 대학원생을 교육자로 성장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이다.
사실 난 교수학습센터를 좀 늦게 활용했다. 박사 과정 때 다른 과 한국인 유학생 선배가 여기서 여러 강좌 듣고 멘토로 활동하면서 추천 했지만, 그때는 당장 급한 일들 - 수업이나 논문자격시험, 논문 등 - 때문에 "나중에 해야지" 하고 미뤘다. 처음 교수학습센터 간 건 졸업 앞두고 지원 서류 중 하나인 "교육 철학(Teaching Philosophy)" 써야 할 때 였다. 뭘 써야 할지 몰라 혼자 머리 싸매고 있다가, 관련 워크샵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뒤늦게나마 참석했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아, 왜 이제 왔지?" 하고. 미국에서 박사 생활하면서 제일 후회되는 일 중 하나였다. 교수직 지원할 생각이면, 일찍부터 교수학습센터와 가까이 지내는 것이 좋다.
그 후로 박사후 과정, 강의전담 교수, 지금의 조교수 과정까지, 학교 옮길 때마다 교수학습센터 문을 두드렸다. 일정 교육과정을 수료하면 수료증을 주는 과정 있으면 들어서 수료증 받기도 하고, 교수학습센터에서 운영하는 여러 서비스 이용하고, 세미나 참석하고, 더 적극적으로 멘토 역할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렇게 미국의 다섯 개 대학교의 교수학습센터 경험하다 보니, 아카데믹 커리어를 위해 교수학습센터를 어떻게 잘 활용할 수 있는지 방법이 조금 보였다.
먼저, 많은 교수학습센터에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이를 마치면 수료증(certificate)이나 마이크로 학점(micro-credit)을 준다. 이수료증은 나의 '성과'가 될 수 있다. 대학원생을 위해서는 '미래의 패컬티(Future Faculty)'란 이름으로 많은 학교에서 운영하고 있기도 하고, 신임 교수를 위한 '퍼스트 이어 패컬티(First-year faculty)' 프로그램도 있었다. 최근엔 다양성에 초점 맞춘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재학중이거나 재직중인 학교가 ACUE나 CIRTL 같은 미국 전역의 고등교육 관련 네트워크에 가입돼 있으면, 학교 경계 넘어서 더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이런 강좌들 들으면서 체계적으로 교수법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대부분 프로그램이 가르치고자 하는 교육방법을 교육에 그대로 적용해서, 학생 입장도 경험해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다 마치고 수료증 받으면 그 자체로 성과가 됐다. 이력서에 한 줄 추가할 수 있고, 교수면 전문성 개발 과정(Professional Development)으로 연례 평가나 정년 심사 자료에 포함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재정적 지원도 받을 수 있었다. 학교마다 달랐지만, 교수학습센터도 인력이 필요하고 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다 보니 일자리나 프로젝트 지원금 받을 기회가 있었다. 나도 대학원생 때 새로 온 TA(Teaching Assistant) 학생들 위한 오리엔테이션의 TA로 참여해서 작지만 소중한 재정 지원 받았고, 한 학기 내내 조교로 일하는 대학원생들도 보았다. 교수도 앞서 말한 수료증 프로그램 참여하면 장려금 명목의 수당을 받는 경우 있고, 다른 교수 멘토로 참여하면 추가 수당 받을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무엇보다 새 교수법 시도하거나 지금 수업에 적용하고 싶을 때 교수법 관련해 지원금 받을 수 있는 기회가 교수학습센터에 많다. 나도 이를 활용해서 새로운 교수법을 배우는 워크샵에 방학동안 참여하기도 하고, 교육 관련 학회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교육을 개선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있고, 이를 실현시키고 있는 자금지원이 필요하면 교수학습센터에 그 답이 있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교수법 관련 여러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많은 교수학습센터에서 '동료 평가(peer-evaulation)' 제도를 운영하는데, 교수학습센터에 요청하면 전문가나 혹은 동료 교수가 내 수업에 직접 와서 관찰하고 피드백 주었다. 처음 강의 시작했을 때, 내 강의가 괜찮은지 궁금해서 피드백 부탁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도움되었다. 같은 과 교수들한테 부탁하긴 부끄러웠는데, 오히려 전혀 나를 모르는 하지만 교육에 대한 전문가가 와서 나를 평가해주고 이 평가는 나의 평판이나 실적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더 편했다. 받아본 피드백이 체계적이어서 내 강점이랑 약점 알 수 있었고, 이때 받은 피드백은 향후에 다른 포지션을 지원하면서 교육 철학 관련 서류들을 쓸 때 많이 도움 되었다. 공식적인 건 아니었지만, 비공식 교수법 포트폴리오 만들 때도 이런 평가들 보조자료로 포함하기도 했다. 학교에 따라 다르지만 대학원생도 전체 수업 아니더라도 잡 마켓 나가기 전에 교수법 시연이나 교육 철학 관련 문서를 쓸 때 피드백 받을 수 있다. 새 수업 설계할 때 교수학습센터에 있는 전문가인 '인스트럭터 디자이너(instructor designer)'와 함께 같이 설계할 수 있었다. 즉, 개인적으로 교수법에 대해 궁금하거나 필요한 자원이 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곳이었다.
이것 말고도 좋은 점 많았다. 새 학교 가면 새로운사람들, 특히 다른 과 사람들 만나기 어려운데 교수학습센터 세미나나 프로그램 참가하면서 비슷한 교육 철학과 고민을 가진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가 등장했을 때 - 예를 들어 생성형 AI 처음 나왔을 때 - 대학에서 제일 빨리 움직인 곳도 교수학습센터였다. 세미나나 프로그램 참석하면 가끔 공짜로 점심 먹을 수 있는 것도 좋았고. 무엇보다 교수법에 관한 여러 가지 자잘한 지식을 많이 얻어, 나의 성장에도, 학생들의 배움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 브런치 글에 앞으로 쓸 이야기들도 사실 많은 부분이 교수학습센터에서 배운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