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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성장하는 기쁨

by 쿠나


올해도 어김없이 ‘스승의 날’에 학생들로부터 정성껏 꾹꾹 눌러쓴 손 편지를 선물로 받았다.


“아직 부족한 것이 많고, 마냥 애 같은 저에게 무럭무럭 자라라고 영양분을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고, 성장할 수 있었어요.”

“선생님께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기분이 좋아요.”

“수업을 통해 저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되고,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해 나간다는 확신이 들어요.”

“수업을 듣고 난 후면 마음과 감성이 풍부해져서 지식을 배우는 것 이상의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처음 대학 강단에 섰을 때 나는 어떤 교사였는지 회상해 본다. 그때의 나는 ‘잘 가르치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강의계획서를 꼼꼼하고 성실하게 작성하여 학생들과 공유한다. 학생들이 꼭 알아야 할 교과 내용, 읽어야 할 관련 책과 토의주제, 과제 계획 등을 제공한다. 좋은 교사란 학생들을 학문의 동반자로 삼고 함께 연구하고 자극하고 발전해야 한다. 이러한 교육 신념으로 수업 과정에서 ‘진지함’은 충분했으나 ‘소통’과 ‘즐거움’이 조금 부족했다.


27년 차 교사로서 나는 어떠한 모습으로 학생들 앞에 서 있나? 지금의 나는 ‘학생들과 함께 성장하는 교사’가 되고 싶다. 수업이란 교사, 학생, 교육내용과 방법의 삼박자가 잘 맞아떨어지도록 함께 만드는 종합예술이다. 교사와 학생은 지식의 강에 배를 띄워 함께 노를 젓고, 주변 구경을 하며, 물고기도 잡아 올리고, 햇살 받으며 웃고 떠들고, 한바탕 뱃놀이를 즐긴다. 교사는 수업내용을 미리 계획하지만, 학생들과 수업을 만드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새로운 경험을 한다. 함께 수업을 재구성하면서 교사와 학생 모두 매우 즐겁다.


수업의 한 장면으로 들어가 보자.


“…나는 마음껏 기대하고 슬퍼할 거예요.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표현한다고 수군거리겠지만

나는 삶이 주는 기쁨과 슬픔, 그 모든 것을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해도 마음껏 느끼고 표현하고 싶어요.”

-빨강머리앤 중에서-


‘감정’의 중요성과 ‘감정 코칭’에 대한 수업을 하기 전 학생들과 ‘한 단어 찾기’로 몸풀기 작업을 한다. [빨강머리앤]의 문장을 읽고 가장 마음에 와닿는 단어 하나를 찾아서 이유를 발표한다.


A는 ‘기대’라는 단어를 선택한다. 부모의 기대가 감옥처럼 갑갑하게 느껴진다. 늘 부모의 기대를 온전히 충족시킬 수 없어서 미안하고 부담스럽다. ‘기대’라는 단어가 자신에게는 ‘상처’가 된다는 것을 표현함으로써 마음 한편이 시원하다고 말한다.


B는 ‘마음껏’이라는 단어를 선택한다. 감정을 마음껏 표현해보지 못해 화가 나도 참고, 행복할 때도 얼마나 행복한지를 충분히 느끼지 못하고 휙 지나친다. 만약 그래도 된다면 앞으로는 마음 놓고 화내고, 마음껏 행복한 기분을 느끼고 싶다고 말한다.


내가 선택한 단어는 ‘작은’이다. 나를 위한 작은 일의 실천이 떠오른다. 물 많이 마시기, 하루에 오천 보 이상 걷기, 나를 응원하는 말 한마디 해주기, 행복한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기 등 별것 아닌 듯 보여도 해보면 좋은 ‘셀프 가드닝’에 관심이 간다. 그만큼 내 삶이 지쳐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신기하게도 그의 마음이 보인다. 자신에게 실망하는 부모를 보며 얼마나 미안하고 죄책감에 시달렸을까? 감정을 눌러 놓느라 얼마나 답답했을까? 몸이 힘들면 마음은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수업 대화를 통해 어떤 내용을 먼저 다루어야 하는지 수업계획과 방향을 재조정한다.


좋고 나쁜 감정은 없고,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정은 자연스러우며 항상 옳다는 것, 감정의 주인은 바로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서부터 수업을 시작해 보자.


심리학자 Carl Rogers는 말한다.


“완전히 기능하는 사람은 자신의 느낌과 반응에 따라 충실하게 살아간다. 완전히 기능하는 사람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독창적인 창작물을 만들어 내고, 창조적 삶을 통해 욕구를 만족시킴으로써 삶의 희열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교육적 만남을 통해 나는 나답게, 너는 너답게 각자의 잠재력을 실현하며 독특한 모습으로 성장하는 기쁨은 매우 크다. 우리는 서로 비교할 필요가 없고, 경쟁하는 데 에너지를 소비하기보다는 서로를 통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 수업 장면에서 서로의 마음이 열려 있고, 자신에 대해 솔직히 표현할 수 있을 때 교사와 학생은 함께 성장한다.


수업에 참여하는 우리는 지적 활동을 하면서도 놀이를 한다. 모두 자유의지를 발동하여 진지하게 사고하고, 웃고, 협력하면서 즐겁다. 놀이할 때의 몰입과 기쁨, 끝까지 해내는 끈기를 수업에서 고스란히 경험한다.


깨알 같이 많은 수업을 통해 나와 함께 성장해 온 학생들이 있다. 돌아보니 참 기쁘고 행복한 나의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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