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우리 가족을 색, 모양, 사물, 동물에 빗대어 생각해 보곤 한다. 나에게 가족이란 어떤 느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자유롭게 한 번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익숙한 존재에게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기쁨이 있다.
우리 가족을 닮은 사물은 무엇일까?
남편은 초록색으로 짙게 물든 여름 숲속 커다란 나무다. 그 나무 아래 서면 더운 열기가 식고, 어느새 나의 마음에 평화가 깃든다. 마치 새가 나무 위에 둥지를 짓고 비로소 안심하듯, 나는 남편의 나무에서 시끄러운 내 마음을 고요히 잠재우며 쉰다.
큰딸은 봄에 피는 벚꽃이다. 벚꽃은 연분홍색 조명을 켠 듯 세상을 환하게 밝힌다. 어느 봄날 갑자기 벚꽃이 활짝 피어날 때면 모두 “와!”하고 탄성을 내지른다. 벚꽃은 한 가지에 여러 송이의 꽃들이 피어난다. 멀리서 보면 꽃 모양이 흐릿하고 색만 도드라지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작은 꽃잎 하나하나 선명하고 완전한 생명체다. 인생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큰딸의 계절은 세상 환한 ‘봄, 봄, 봄’이다.
둘째 딸은 빨간 ‘체리’다. 어릴 때부터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실행하는 데 망설임이 없다. 새로운 경험에 마음이 활짝 열려 있어서, 자신이 계획하고 시도한 것에 후회가 없다. 자기 세계를 독립적으로 구축해 나가는 분명한 모습은 체리의 강렬한 빨강을 닮았다. 웬만해선 둘째 딸의 생각을 꺾기가 어렵다. 집요하고 끈기 있게 자기 생각을 나에게 설득해오면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하고 도저히 굴복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주황색 ‘오렌지’다. 생각해 보면 나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호기심’이다. 어릴 때부터 궁금한 것이 많고, 책 읽기를 좋아하던 나는 이런저런 배움으로 심심할 새가 없다. 알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부자이기도 한 나는 아마 앞으로도 평생 학습자의 길을 걸어가게 될 것 같다. 과즙 톡톡 터지는 오렌지처럼 나의 내면에서 솟구치는 배움을 향한 열정과 에너지는 낯선 도전을 이어가게 하는 소중한 힘이다.
우리 가족을 닮은 동물은 무엇일까?
남편은 가족에게 헌신적이고,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내는 ‘낙타’다. 맑은 눈, 길쭉한 목, 온순한 성품, 산을 좋아하는 ‘꽃사슴’이다. 운동을 좋아하고 즐거움을 추구하는 모습은 [곰돌이 푸]의 천방지축 ‘티거’와 비슷하다.
큰딸은 스킨십을 좋아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냉큼 안겨 붙는 ‘아기 타조’다. 아기 때는 ‘어부바’하며 달려와 등에 착 달라붙고, 커서도 여전히 ‘안아 줘’하며 ‘와락’ 내 품에 안긴다. 귀엽고, 생각이 많고, 정리 정돈을 잘하는 [곰돌이 푸]의 ‘피그렛’이기도 하다.
둘째 딸은 얼굴이 하얗고, 키가 크고, 검정 옷을 즐겨 입는 ‘판다’다. 대체로 순하고 화를 잘 내지 않으며 움직이는 것을 과히 좋아하지 않는다. 포근한 성격에 작은 행복 찾기의 귀재, [곰돌이 푸]의 주인공 ‘푸’다.
나는 눈이 크고 자칭 아는 것이 많은 척척박사 ‘부엉이’다. 한때 어린이 TV 프로그램에서 아이들의 궁금증을 해결해주던 부엉이 박사, 부리부리 박사다. 딸들을 훈육할 때의 단호한 모습은 사자, 민첩함은 토끼를 닮았다. 읽고 쓰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곰돌이 푸]의 ‘올빼미’이기도 하다.
관점을 달리해서 남편이 아내를, 딸이 부모를, 딸들끼리 서로에 대한 느낌과 특징을 찾아보는 활동을 공유하면 어떨까? 우리의 삶이 지속되는 한 가족의 모습은 변하고, 가족 내의 역동도 당연히 달라진다. 세월 따라 조금씩 변모하고 성장하는 서로의 삶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클 것 같다.
가족을 떠올릴 때 연상되는 이미지를 찾는 작업은 함께 했던 삶의 시간이 저축되어 있을 때만 가능하다. 서로 긴밀하게 마음을 접촉하고 부대끼면서 공동의 추억을 쌓아갈 때 비로소 서로에 대해 할 말이 생긴다.
아마도 [가족 사전]을 만드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행복 조각을 줍게 되지 않을까?
각자의 고유한 특징을 포착하는 기쁨
서로의 유사점을 토대로 친해지는 즐거움
부수적으로 소환되는 추억에 잠겨보는 낭만
서로에게 느꼈던 서운함과 상처를 털어내는 치유
이소라의 [바람이 부네요]는 BGM으로 깔아 두자.
“…마음을 열어요. 그리고 마주 봐요.
처음 태어난 이 별에서 사는 우리.
손잡아요.”
가족은 참 신비한 공동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