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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마음껏 놀아도 돼

by 쿠나

어린 아이는 언제 행복감을 느낄까? 행복은 크고 작은 즐거운 경험이 쌓이고 쌓여 밀려드는 거대한 감정일 지도 모른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에게 언제 행복한 지를 물어보면 대부분의 아이가 “재미있게 놀 때요.”라고 대답을 한다. 외향적 기질의 아이는 친구들과 바깥 놀이터에서 마구 뛰어다니며 놀거나, 자신이 어떻게 놀이하고 있는지를 누군가가 봐 주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내향적 기질의 아이는 조용히 혼자 블록을 쌓거나,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이야기를 상상해내는 동안 행복을 느낄지도 모른다. 모든 아이들에게 공통적 행복의 원천은 ‘놀이’다.


좋은 부모란 어린 아이가 삶에서 행복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놀이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허용할 뿐 아니라, 아이의 놀이를 존중하는 사람이다. 행복할 권리를 지켜주는 사람만큼 좋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 아이의 입장에서 부모는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본다.


자신의 존재를 언제나 환영해주고 바라봐 주는 사람

자신의 마음을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반응하는 사람

수많은 실수를 통해 배울 수 있다고 믿는 사람

다양한 경험을 해 볼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사람

따뜻한 온정과 단호한 제한을 모두 해 주는 사람

언제든 필요한 만큼 안아주고 따뜻한 사랑을 주는 사람

잘 노는 게 남는 거라고 아이의 ‘놀이’를 지켜주는 사람


발달심리학적으로 볼 때 ‘애착’(attachment)과 ‘자아존중감’(self-esteem)’은 유아기를 포함한 전생애에 걸쳐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예측하는 중요한 변인이다. 아기는 어리둥절한 상태로 세상에 태어나서 기쁘게 자신을 돌봐 주고 놀아주는 한 사람 때문에 사랑을 배우고 자기와 타인, 세상에 대한 신뢰감을 갖는다. 이 믿음 때문에 잠시 집을 떠나 낯선 환경에 들어갈 때마다 쉽게 친구를 사귀고 안전하게 적응한다.


인생이라는 게 마냥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속상한 일, 억울한 일, 슬픈 일을 당할 때 그 마음을 공감하고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을 때 마음은 위로를 받고 다시 성장한다. 좋은 부모를 통해 아이는 자신의 가치와 능력, 소중함을 느끼고 자기 삶을 사랑하게 된다. 긍정적 자아존중감을 갖는 아이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며, 실패할 때까지는 성공을 예측하므로 어려운 일이 와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할 수 있다.


어린 아이뿐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도 내가 중요한 누군가와 항상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때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갖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 편이 되어 나를 지지해줄 사람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어린 시절 놀이를 통해 만들었던 행복한 순간의 기억은 고스란히 무의식에 깔려 언제든 불행이 느껴질 때 치유할 수 있는 ‘약’으로 꺼내 쓸 수가 있다.


쉬고 싶죠? 시끄럽죠? 다 성가시죠?

집에 가고 싶죠? 집에 가고 싶을 거야.

그럴 땐 이 노래를 초콜릿처럼 꺼내 먹어요.

- 자이언티 ‘꺼내먹어요’ 중에서 -


힘들고 지칠 때 꺼내 먹을 수 있는 ‘놀이’가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놀이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의 감각을 다 깨워 활발하게 움직이며 몰입하는 활동이다. 놀이에는 정해진 종착역이 없다. 놀이하는 과정에서 때론 빨리 때론 느긋하게 자기 맘대로 속도를 조절하며 느끼고 경험하고 감탄한다. 놀이하는 순간순간 맞이하는 뜻밖의 즐거움에 마음이 활짝 열린다.


놀이하는 인간은 자유의지를 발동하여 즐거움을 선택하기 때문에 삶이 능동적이다. 순전히 자기가 하고 싶은 놀이를 할 때의 몰입과 기쁨은 삶의 주인이 자신인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놀이에 몰입하는 데는 일할 때 필수적인 끈기도 필요해서 놀이와 일이 완전히 분리되는 성격의 활동이 아니다. 놀이와 일의 주체가 자신이 될 때 기쁨도 힘듦도 스스로 조율 가능하다.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Daniel Pink)는 미래사회 인재의 조건 중 하나로 ‘놀이’를 꼽는다. 놀 줄 아는 사람은 밝은 기운과 에너지로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협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이타적이다. 필요한 경우 유머를 발휘하여 조직의 분위기를 살리기도 한다. 그동안 놀이로 저축해 놓은 긍정 감정을 언제든 꺼내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위기와 좌절을 딛고 일상을 이어가는 내공이 남다르다.


바쁜 직장 생활 가운데 가끔씩 떠나는 해외 패키지 여행이 좋았던 유일한 이유는 짧은 시간에 최대한 빨리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가성비 때문이었다. 잘 짜인 여행 일정을 따라 생각할 겨를 없이 몸을 움직여야 하는 데서 오는 피로감이 컸지만, 그보다 훨씬 타이트한 일상의 의무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패키지 여행의 짧은 자유시간 동안 사 먹었던 길거리 음식, 커피, 시장 구경, 현지 상인들과의 짧은 대화, 공원에서의 산책이 유독 좋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수동적 하루의 틈새에서 건진 생경한 추억의 부스러기가 진짜 나의 선택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태어나서 살아 숨쉬는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낸 나의 삶을 돌아본다. 긴 시간 학교에서 배웠고, 오랜 날 동안 학교에서 가르쳤다. 원하는 공부를 원 없이 할 수 있어 기뻤고, 배워서 남을 줄 수 있는 기회가 감사했다. 학교는 나의 직장이자 놀이터였고, 나의 삶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이었고, 안전지대였다.


익숙한 학교 공간을 자발적 선택으로 떠나게 되는 미래의 어느 날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참 오래 잘 버텨왔어. 고생했다.”

“이제부터는 그냥 마음껏 놀아봐.”

“너만의 시간을 자유롭게, 낭만적으로……”

“그래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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