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의 사전적 정의는 흐트러지거나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는 것을 한데 모으거나 치워서 질서 있는 상태가 되게 하는 것이다. 정리는 쓰임에 따라 분류하여 합치고,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 것들을 말끔하게 치우거나 버려서, 꼭 필요한 것을 재배치하여 활용도를 높이는 작업이다.
정리가 되어 있는 공간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내 공간이 어수선하게 어질러져 있는 것을 볼 때 마음도 혼란스러워진다. 눈에 보이는 공간의 모습이 마음의 모습과 연동된다. 바쁘거나 귀찮다는 이유로 공간을 정리하지 않을 수도 있고, 복잡하고 어수선한 마음 상태가 공간에 반영되기도 한다.
정리의 달인들이 이구동성 말하는 정리의 법칙은 불필요한 물건을 버리고, 필요한 것만 남기는 일이다. 우선 잘 버려서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새로운 물건을 구매할 때도 먼저 기존에 사용하던 물건을 버릴 것을 권한다.
계절이 바뀌어 대청소를 하거나, 집을 이사할 때 마음먹고 정리를 할라 치면 쓰지 않고 방치되었던 물건들이 어느 구석에 선가 나온다. 쓰레기가 차곡차곡 얌전하게 쟁여져 탑처럼 쌓여 있는 것도 발견한다.
“왜 이런 걸 아직도 가지고 있었지?”
쓰레기의 양에 놀라고,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언제 한번은 사용할 지도 모른다는 기약 없는 바람으로 버리지 못한 물건을 애처롭게 바라본다. 지금은 바쁘니까 시간적 여유가 나면 한꺼번에 정리하자고 현실과 타협한다. 차마 버리지 못하고 먼지만 털어낸 공간은 여전히 복잡하다.
우리의 마음에도 정리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지식은 쌓아 두기만 해서는 안 되고, 삶에서 활용해야 한다.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잊고, 꼭 기억해야 할 것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인생의 희로애락은 언제든 왔다가 가는 손님이기에 붙잡으려 하기보다는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마음의 빗장을 열어 두는 편이 낫다.
마음을 정리하는 좋은 방법은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집착이란 어떤 것에 마음이 붙잡혀 있는 상태다. 그 대상에 늘 마음이 쏠려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마음이다. 새로운 것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는 욕심 스러운 녀석이다. 웬만해선 마음에 들러붙어 기생하는 집착을 떨쳐 내기가 쉽지 않다.
혼자 힘으로 정리되지 않는 집착의 최고봉은 ‘트라우마’다. 신경정신의학에서 트라우마는 엄청난 정서적 스트레스와 심리적 충격을 경험한 후 이와 비슷한 상황이 되었을 때 반응하는 ‘정신적 외상’, ‘영구적인 정신 장애를 남기는 충격’을 말한다.
이를 테면 바다에 빠졌다가 가까스로 구조된 사람은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계속 바다에서 죽음과 사투를 벌이던 그 순간의 공포와 두려움을 계속 느끼며 괴로워한다. 사고 전의 삶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가 없다.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전문적 상담과 치료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에서 도움이 되는 최소한의 마음정리법은 자신이 겪은 죽을 것처럼 힘들었던 일을 누군가에게 반복적으로 말함으로써 비워내는 것이다.
시간은 약이라는 말이 있듯 꼬이고 불편한 마음을 정리하는 데는 일정 시간이 소요된다. 단박에 마음을 치유할 수는 없다. 만약 믿을 만한 누군가에게 고통스러운 마음을 털어놓을 수만 있다면, 운 좋게도 그 사람이 동정하거나 충고하지 않고 공감하며 잘 들어준다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누군가의 공감적 경청으로 마음이 환해지면서 불편한 감정이 누그러지고 환기가 된다.
부모나 친구, 배우자 또는 자녀의 갑작스러운 사고나 죽음, 삶을 한 순간에 무기력하게 만드는 질병, 자연재해 등 도처에 한 번쯤 경험했거나 앞으로 경험하게 될 위기목록이 널려 있다. 상실과 위기를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타인의 불행을 외면하지 않는 사회적 관심의 발동과 연대의식을 갖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연민하며 그저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것보다 귀한 사랑은 없다. 내 마음을 짓누르는 슬픔을 누군가에게 말해 보는 용기도 필요하다.
버리고 비워내는 일이 중함은 그래야만 찾아오는 변화가 기대되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