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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림책 친구를 소개합니다.

by 쿠나

봄학기가 되면 신입생이 들어오고, 나는 학생들에게 그림책 [꼬마 비버와 메아리](에이미 맥도날드 글, 사라 폭스 데이비스 그림)를 소개한다.


꼬마 비버는 호숫가 한 귀퉁이에서 부모도 친구도 없이 혼자서 살아간다. 외로움에 지쳐 엉엉 울고 있던 어느 날, 호수 반대편에서 누군가가 자기처럼 엉엉 울고 있는 소리가 들린다.


‘누가 나처럼 슬피 울고 있을까?’


꼬마 비버는 울고 있는 친구를 찾아 나서기로 마음먹는다. 단단히 묶어 두었던 배를 풀어 올라타고 호수 반대편으로 나아간다. 그의 공간은 좁은 뭍에서 넓은 호수로 이동한다. 외로움으로 얼어붙어 있던 그의 삶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꼬마 비버는 배를 타고 가면서 자기처럼 외로워하는 오리, 수달, 거북이와 만나 친구가 된다. 지혜 많은 할머니 비버를 통해 호수 반대편에서 울고 있던 친구는 ‘메아리’라는 것도 알게 된다. 할머니 비버는 말한다.


“네가 행복하면 메아리도 행복할 거야. 너에게 친구가 많이 생기면 메아리도 친구가 많이 생기는 거란다.”


나도 가끔 울고 있는 내 마음을 달래주는 나의 목소리를 듣곤 한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내가 네 마음을 알아줄게.”


학생들에게 묻는다.


“내가 슬플 때 함께 슬퍼해 주고, 내가 기쁠 때 함께 기뻐해 주는 메아리 같은 사람은 누구일까?”


학생들은 엄마, 친구, 선생님 등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음 짓는다. 학기 초 낯선 환경에서 내가 먼저 나의 다정한 친구가 되어 줄 것을 양손 새끼손가락 걸고 다짐한다.


누군가에게 듣고 싶었던 격려의 말을 나에게 해 주기

힘든 일이 생기면 내가 먼저 나를 안아 주기

혼자 있을 때도 나를 웃게 하기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비밀을 내게 꼭 들려주기

실수할 땐 다음번에 잘하면 된다고 나를 토닥이기

어떤 순간에도 나의 소중함을 잊지 말기


주디스 커의 유쾌하고도 사랑스러운 그림책 [간식을 먹으러 온 호랑이]에는 한가하게 차를 마시고 있던 소피네 집에 ‘딩동’ 초인종이 울리며 불쑥 호랑이가 찾아온다.


결코 초대한 적 없는 무서운 호랑이의 방문에 대처하는 모녀의 방법이 예사롭지 않다. 그들은 호랑이를 보고 깜짝 놀라 호들갑을 떨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숨거나, 도망치거나, 쫓아내려 하지 않는다. 뜻밖의 상황이 혼란스럽긴 하지만 침착하고 무심하게 손님을 식탁에 앉히고는 간식을 권한다. 호랑이는 엄청난 식욕으로 소피의 집에 있는 음식이 될 만한 모든 것을 거덜 내고 나서야, 태연하고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며 ‘안녕’하고 사라진다.


소피 가족의 문제는 난데없는 호랑이의 등장으로 인해 무너진 일상이 아니라, 호랑이를 접대하느라 바닥난 음식이었기 때문에, 저녁 외식을 하고 다시 장을 보는 것으로 평온하게 하루를 완성한다.


긍정심리학에서 말하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란 갑작스러운 불운이나 재난으로 주저앉지 않고,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기를 애쓰는 모종의 태도이다. 역경과 어려움을 끝내 이겨내고 성장하는 힘이기도 하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은 어떤 불행 속에서도 자기만의 희망을 직조하는 창조적 능력이 있다.


만약 소피와 엄마가 너무 놀라서 호랑이에게 불친절한 방식으로 응대했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졌을까? 그래서 배고픈 호랑이가 모녀의 푸대접에 벌컥 화를 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대학 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학생들은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친구를 찾아 헤매고, 한 번도 해 보지 않던 활동을 경험하면서 들키고 싶지 않은 서투름과 실수를 타인에게 공개해야 한다. 자신이 잘 할 수 있을지 의심되는 팀 프로젝트에 협력해야 하고, 그 안에서 피할 수 없는 동료와의 갈등과 오해도 풀어나가야 한다. 일련의 과정에서 학생들이 경험하는 수치심, 당황스러움, 좌절, 답답함, 회피하고 싶은 마음은 호랑이까지는 아니겠지만 삶을 성가시게 만드는 스트레스다. 스트레스는 긴장을 유발하고, 일상을 갉아먹는다.


나는 학생들과 그림책 [간식을 먹으러 온 호랑이]를 함께 읽으면서, 어떠한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자신만의 소중한 일상을 담담히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넌지시 알려준다. 혹 좌절과 방황과 우울과 외로움의 순간이 와도, 마음만 먹으면 반드시 이겨내고 성장할 수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의 마지막 수업 시간이 온다면 학생들에게 수잔 발리의 [오소리의 이별 선물]을 읽어주려고 한다. 오소리는 숲의 친구들이 믿고 의지하는 멘토 같은 존재다. 어느 날 밤 자기 죽음을 예감한 오소리는 친구들에게 편지를 한 장 남기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난다. 동그마니 남겨진 친구들은 오소리와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해 겨우내 슬퍼한다.


봄이 찾아올 때쯤 그들은 한자리에 모여 오소리와의 특별한 추억을 이야기한다. 오소리와 함께했던 시간, 오소리가 그들 각자에게 가르쳐주었던 소중한 경험을 나누면서 깊은 슬픔이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오소리가 그들에게 남기고 간 따뜻한 삶의 흔적과 추억이 큰 선물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고마워요”


숲속 친구들은 감사의 말을 바람에 전한다.


내가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이별 선물은 무엇일까? 내가 떠나도 그들에게 남길 수 있는 기억은 어떤 것일까?

나는 마음속으로 미리 학생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고해 본다.


“고마워. 너희와 함께했던 모든 날, 모든 순간이 참 좋았어. 안녕, 너희를 잊지 못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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