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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나 Sep 13. 2022

이야기하는 인간

모든 삶에는 각자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다.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이야기를 통해 타인을 이해한다. 어떤 사람이 내향적이기 때문에 좋거나, 외향적이기 때문에 나쁘다 할 수 없듯이, 우리의 이야기에는 ‘좋고’, ‘나쁜’ 것이 없다. 살아온 이야기를 삶의 연속선상에서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의미를 부여할 때 과거의 실수와 후회, 상처로 얼룩진 경험조차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삶의 조각이었음을 알게 된다. 뼈아픈 깨달음을 통한 성장은 상실과 아픔의 눈물을 흘린 후에 재조명된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성숙한 자아의 발견이다.     

 

‘이야기(narrative)’는 인간의 삶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관심에서 비롯된 포스트모던 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이야기란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과 경험만의 구성체가 아니다. 이야기는 씨실과 날실을 교차하여 직물이 짜듯, 경험과 의미를 결합하여 만드는 창조물이다. 만약 개인의 경험에 의미가 부여되지 못했을 때는 어떠한 일이 일어날까? 거대한 사회적 담론이라는 지배적 이야기에 개인의 작은 이야기가 잠식당한다. 사회의 지배적 이야기는 다양성을 허락하지 않으므로, 개인의 독특한 이야기가 하나의 틀에 갇혀 비교되거나 폄하되기에 십상이다. 나는 더 이상 내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라 누군가가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를 부러워하는 자리에 내동댕이쳐진다.      


나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가 왜 중요한가? 나만의 독특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함이다. 자기 삶의 유능한 스토리텔러(storyteller)가 되기 위해서는, 같은 사회 집단에서도 남과 다른 독특한 자아정체성을 찾아 길을 나서야 한다. 남과 같이 되려는 노력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이룰 수 없는 꿈과 같다. 가장 자기다울 수 있도록 힘쓰는 것이야말로 희망적이다. 자기만의 독특한 이야기를 만드는 일의 첫걸음은 유행처럼 번지는 사회적 통념에 동의하지 않고, 저항하는 태도에서부터 시작된다. 예컨대 키가 크고, 마르고, 눈이 커야만 아름답다는 기준은 어디서부터 생겨났는가. 기원을 알 수 없고 자신이 동의한 적 없는 아름다움의 프레임에 자신의 조건을 비추어 기죽거나 괴로워한다면, 개인의 이야기는 왜곡되고 빈약해지며 가치를 잃는다.      


팝아트로 유명한 앤디 워홀의 눈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코카콜라 병의 곡선과 인스턴트 통조림 수프인 '캠벨 수프'로고 등이 모두 아름답게 보였다. 그의 작품은 남들과 다르게 일상의 버려진 물건에서 아름다움의 요인을 발견하여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현대사회에 큰 울림을 준다. 이것은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가치 있고 아름다울 수 있으며, 우리의 인생도 어떠한 관점에서 보는가에 따라 아름답게 재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즉 우리가 겪어왔던 경험에서 사실(facts)은 바꿀 수 없지만, 의미(meaning)는 얼마든지 다르게 부여함으로써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불행한 일은 그냥 일어났을 뿐이고, 만약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와 비슷한 일을 막을 수 없는 것이라면, 더 이상 자책이나 후회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아픔을 통해 더욱 성장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었다고 해석할 때, 비로소 안도하며 편안하게 그 일을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나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수없이 만들어가는 이야기 조각은 마치 퍼즐 조각처럼 전체 삶에 맞춰지기를 원한다. 나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그가 나의 이야기를 안전하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이야기 조각은 나의 삶 어느 곳에 연결된다. 나의 이야기를 기억해주는 누군가의 사랑으로 상처 입은 자아는 건강하게 회복될 기회를 얻는다. 이때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명심해야 할 것은 섣부른 해석이나 문제 해결을 위한 제안을 하지 않는 것이다. 온전한 경청은 깜깜한 마음에 숨겨져 있던 이야기를 비춰주는 등불이다. 단지 등에 불을 켜기만 하면 된다. 마음에 빛이 밝혀지면 나의 이야기는 스스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찾게 되고, 목소리로 표현된다.      


인간은 지금보다 더 나은 자기 모습을 꿈꾸며 끊임없이 잠재력을 실현하고자 하는 경향성이 있다. 이야기하는 인간으로서 ‘나’는 이야기함으로써 ‘나’를 새롭게 발견하고, 나의 지난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더욱 강하고 건강한 ‘나’로 거듭날 수 있다.           




건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일수록
자기 경험을 끊임없이 재해석하여
이야기를 구성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 Alfred Adl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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