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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나 Aug 02. 2023

아버지, 나의 아버지!

부모와 자녀 : 서로 응답하는 존재

세상에 태어난 아기는 하고 싶은 모든 말을 ‘울음’으로 표현한다. 아기가 울 때 곧바로 달려와 그의 필요를 채워주는 부모의 보살핌은 당연한 게 아니라 특별하고 큰 사랑이다. 아기는 자기가 울 때 불편하지 않도록 기저귀를 갈아주고, 배고프지 않도록 먹여주고, 심심하지 않도록 놀아주고, 불안하지 않도록 꼭 안아주는 부모 덕분에 사람에 대한 신뢰와 세상에 대한 기대가 커진다.     


아기는 ‘어마마마’하다가 ‘엄마’를, ‘아바바바’하다가 ‘아빠’ 하면서 말하기 시작한다. 아기는 한 단어로 다양한 자기표현을 한다. 즉 ‘엄마’라는 말에는  아기가 표현하는 소리의 고저나 장단, 상황적 뉘앙스에 따라 다양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아기는 자기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 의미를 부모가 민감하고 정확하게 해독하여 응답해 줄 때 만족한다. 부모와의 긍정적 상호작용은 아기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 아기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누적된 긍정경험과 감정으로 인해 “나는 참 사랑받는 존재구나!”, "나는 뭐든 할 수 있는 존재야!"라고 느끼며 긍정적 자아상을 형성해 간다.       


아기의 부름에 잘 응답하는 부모가 누리는 복은 무엇인가? 아기도 똑같이 부모에게 긍정적으로 응답한다는 데 있다. 아기는 자랄수록 자기가 받은 사랑 그대로 부모에게 응답한다.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 부모에게 고마운 마음이 커지는 것이다. 사랑받고 사랑할 줄 아는 존재가 될수록 부모라는 안전기지를 떠나 안심하고 독립적인 자기 세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된다. 특히 부모가 자녀의 부족한 욕구를 채워주기도 하지만, 자녀의 넘치는 욕구를 제한하거나 조절시켜 줄 때 가정이나 사회에서 규칙을 준수하는 민주적인 구성원으로 기능한다. 서로 응답해야 할 때를 놓치지 않는 부모-자녀 상호작용이야말로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소중한 경험이다.


콩스탕스 베르루카 [아빠! 아빠! 아빠!]. 여유당


우리 모두에게는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아빠’가 있다. 나를 존재하게 한 생물학적 아빠의 개념을 확장한다면 더 많은 아빠가 존재할 테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아빠는 한 명이다. 프랑스 작가 콩스탕스 베르루카의 그림책 [아빠! 아빠! 아빠!]에는 온종일 아빠를 부르는 아들과, 어김없이 아들의 부름에 즉각 응답하는 아빠가 등장한다. 아들은 ‘아빠! 아빠! 아빠! 하며 아빠의 도움을 청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아빠랑 놀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 같다. 이런 아들의 마음을 아는지 아빠는 아들이 부를 때마다 인상 한 번 찡그리지 않고 얼른 달려가서 온몸으로 아들과 놀아준다. 아빠는 아들의 책상이 되고, 공이 되고, 강아지로 변신하기도 한다. 아들은 아빠에게 ‘고마워요. 아빠!’라고 말한다. 아빠의 대답은 언제나 같다. ‘고맙긴’. 마지막 장면에서 지친 아빠가 소파에 누워 잠시 쉬고 있을 때 아들은 아빠를 위해 기꺼이 베개가 되어준다. ‘고맙다. 아들!’, ‘고맙긴요’.




나는 아빠!라는 단어가 눈에 띌 때마다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금세 눈물이 뚝! 하고 떨어진다. 아버지가 즐겨 읽던 성경책을 읽을 때,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찬송가를 부르거나 들을 때, 아버지가 사랑했던 공간과 자리를 마주할 때면 아직도 실감 나지 않는 아버지의 부재에 목이 메고 눈물이 자동으로 솟구친다. 깊은 우물을 길어 올릴 때 마중물을 붓듯,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메타포는 어김없이 나의 눈물을 밖으로 불러낸다. 그 눈물은 질퍽하고 뜨겁다기보다 맑고 시원하다. 이별의 슬픔보다는 아버지가 보고 싶고 그리워서 흘리는 눈물이다. 한바탕 눈물을 쏟고 나면 나의 마음은 정화되어 다시 고요한 평정심을 되찾는다.


앉은뱅이 서예 책상


언젠가 내 공간에 두고 싶은 벼루와 먹, 붓과 종이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앉은뱅이 서예 책상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아버지를 떠올려본다. 10여 년 전 직장에서 잠시 책임 있는 보직을 면해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서예 사랑에 푹 빠져 살았던 적이 있다. 당시 연구실 책상 옆에 있던 커다란 작업 테이블에 항상 서예 도구를 펼쳐놓고 틈만 나면 붓을 들어 획을 그어보곤 했다. 아버지는 서예 하는 딸을 위해 '꽃뫼'라는 아호를 지어주셨다. '꽃이 피어 있는 아름다운 산'이라는 뜻이다. 딸이 산처럼 높고 단단하고 포용력 있기를, 그 안에 가득히 피어 있는 꽃처럼 아름답게 살아가기를 바라셨을까? "아버지, 산처럼 듬직하고 너그러우면서도 꽃처럼 아기자기하고 예쁜 마음 잃지 않는 아버지 딸로 살아갈게요." 오늘도 난 딸을 향한 아버지의 기도와 바람에 기쁜 마음으로 응답한다.




“아빠! 아빠! 아빠!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고마워요. 아빠!
“고맙긴”
“고맙다. 아들!”
“고맙긴요.”   

-콩스탕스 베르루카 [아빠! 아빠! 아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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