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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나 Jul 15. 2024

당신이 행복하면,나도 행복합니다  

- 소유와 집착을 넘어서 동반자적 사랑으로 -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2001년 개봉된 영화,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 중 아직도 회자되는 주인공 상우의 명대사다.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랑이 변한다. 영화에서는 겨울에 시작된 사랑이 봄을 지나 여름으로 가는 길목에서 끝이 난다. 태어나서 처음 여자를 사랑해 본 스물여섯 청년, 주인공 상우는 사랑이 변한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에게 찾아온 첫사랑은 도저히 넘길 수 없는 책장의 한 페이지다. 사랑이 지나갔어도 아픈 제자리걸음을 하던 상우의 아련한 눈빛이 인상 깊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2000년대에 TV에 방영된 통신사의 파격적인 광고 카피다. 한 남자가 자기 아닌 다른 남자와 데이트하고 있는 여자 친구를 우연히 보게 된다. 질투심 가득한 얼굴로 따져 묻는 남자에게 여자는 귀찮다는 듯 상관 말라고 쏘아붙인다. “상관 말라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항의하는 남자에게 여자는 말한다. “내가 니꺼야? 난 누구한테도 갈 수 있어!” 상처받은 남자 뒤로  문장 하나가 보인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사랑은 자발성을 전제로 할 때 아름다운 구속이다. 아무 사이도 아니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일도 사랑하는 둘 사이에서는 작은 일도 그냥 넘어가지지 않는다.


“나를 꽃처럼 불러주던 그대 입술에 핀 내 이름, 이제 수많은 이름들 그중에 하나 되고”
- 그중에 그대를 만나 -

두 사람이 사랑할 때, 서로를 향한 사랑의 크기가 똑같지 않다. 그래서인지 연인이나 부부 사이엔 사소한 오해가 더 자주 발생하고,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커진다.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은 더 많이 상처받기 마련이다.지나가는 사랑을 한사코 붙잡는 마음이 집착이다. 사랑하는 대상을 내 것, 내 소유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내 곁에서 떠나는 게 용납되지 않는다. 내 곁에서 행복할 수 없다면 누구와도 행복해서는 안 된다는 엉터리 이기적인 뒤틀린 논리에서부터 데이트 폭력이 발생한다. 소유와 집착이라는 병적 사랑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은 더 이상 개인적인 사건으로 쉬쉬 되어서는 안 된다. 공적으로 접근하여 엄중하게 근절해야 할 사회 문제다.


사랑에 빠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래오래 그 사랑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심리학자들은 입을 모아 동반자적 사랑을 강조한다. 동반자적 사랑은 우정에 뿌리를 둔다. 열정적인 사랑이 지나가는 자리엔 안정적인 애정과, 상호 이해와 헌신에 기반을 둔 돌봄이 필요하다. 이성적 끌림만으로 시작된 사랑은 변화에 취약하다. 사랑에 위기가 찾아올 때 성숙한 사랑의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쉽게 대상을 바꾸기 때문이다.

동반자적 사랑은 익숙함 속에서도 상대가 갖는 특별한 가치를 찾는 지속적 의지와 노력이 포함된다. 동반자적 사랑은 여러 차례 사랑의 위기 가운데서도 살아남아 오랜 시간 지속될 뿐 아니라 서로를 성장시킨다. 신뢰와 의리에 기초한 사랑 때문에 어려움이 찾아와도 고통과 슬픔을 견딜 수 있는 힘을 낼 수 있으며, 자기를 불쌍히 여기며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인다.



25년 동안 전문직에 종사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의 아이콘으로 살아온 여인이 있다. 그는 자신의 암 투병 중에도 일을 중단한 적이 없었는데,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남편을 돕기 위해 조기 은퇴를 한다. 남편은 점점 기억을 잃어갔고, 급기야 아내를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그즈음 남편은 요양원에서 만난 할머니와 사랑에 빠진다. 남편이 새로운 여인과의 사랑으로 소년처럼 설레어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본 아내는 오히려 기뻐한다. 기억을 완전히 잃기 전까지 죽기만을 소원하며 생을 비관하던 남편이 새로운 사랑으로 활기를 되찾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스럽고 행복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최초 여성 대법관으로 지금은 고인이 된 산드라 데이 오코너(Sandra Day O'Connor, 1930~2023) 판사의 실화다.  남편의 행복과 복지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고 기뻐하는 황혼의 사랑법이 인생의 모든 시기에도 유효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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