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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나 Jun 14. 2024

움직임, 인간의 품격을 높이는 힘

     

웬만한 거리를 걸어 다니기로 한 이후 자동차를 운전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하루 평균 걸음 수가 5,000보를 넘었다는 운동 기록을 확인할 때마다 흐뭇한 마음으로 내 마음에 말해 준다. "참 잘했어요!"   

 

어느 날 걷기에는 조금 먼 곳에 볼 일이 생겨 자동차 시동을 걸었더니 아무 반응이 없었다. 무슨 일이지? 차 운행 안 한 지가 고작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배터리가 방전될 수 있나 의아해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동차 긴급출동 서비스를 불러 보았다. 이유는 배터리 방전이었다.  서비스 기사님의 도움을 받아 금방 차 시동을 거는 데 성공했다. 


자동차 방전은 직장인이면 흔히 겪는 번아웃(Burnout) 증세와 비슷한 것 같다. 번아웃은 정신적 에너지의 고갈, 탈진, 극심한 피로감과 무기력 증세를 동반한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손가락 까딱할 힘을 내기도 어렵지만, 다음 날 습관적으로 출근하고 일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탈 없이 직장 생활하는 듯 보여도, 내적으로는 이미 아무것도 감응할 수 없는 움직임이 멈춘 상태다. 살아 있으나 생동감과 변화를 느낄 수 없고, 모르는 사이 커져버린 블랙홀과도 같은 시커먼 마음의 상처는 외부 자극을 무력화시킨다. 번아웃이 무서운 이유는 참고 버티다가 뒤늦게 자기 상태를 알아차리기 때문에 단시간에 회복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신체와 정신의 움직임이 모두 필요하다.      


어떻게 나이 들 것인가를 조언하는 책들에서는 이구동성으로 꾸준한 운동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실제로 중년 이후에 갖는 소망 중 하나는 젊은 시절 당연히 수행하던 소박한 일을 나이 들어서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죽을 때까지 두 다리로 걷기, 운전하기, 요리하기, 새로운 것을 배우기, 온전한 정신으로 살기, 내 집에서 살다가 죽기 등이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드러눕지 않는 이상, 날마다 우리 몸은 움직임을 통해 강해지면서도 유연해진다. 신비롭게도 몸은 편안함보다 불편함에 더욱 긍정적으로 반응한다. 움직이지 않고 편안히 앉거나 누워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몸의 기능은 둔해지고 조금씩 쇠퇴한다. 나이 들수록 몸을 움직이지 않아서 생기는 건강 문제를 방치하면 궁극적으로 직립 보행이 어려울 수 있다.       


몸을 움직이는 것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운동을 많이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이와 신체 상태에 적합한 양의 운동을 하는 것이다. 노년에는 매일 내 몸을 조금씩 귀찮게 하면 좋다. 몸은 움직이라고 있는 거라 생각하면서 슬슬 동네 한 바퀴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 세상에 태어나 돌 지난 아기가 기를 쓰고 자기 힘으로 걸어보려 하는 모습은 얼마나 대견한가! 누군가 떠먹여 주지 않아도 스스로 밥숟가락 들고 먹는 모습은 얼마나 주도적인가! 걸음마를 뗄 때, 혼자서 밥을 먹을 때, 기저귀를 떼고 대소변을 가릴 때, 자기 생각을 언어로 표현할 때, 혼자 학교를 갔다 올 때 등 독립적으로 행동한 수많은 때들이 모여  아기는 성장하고 인간다운 인간이 되어간다.     

       

몸을 움직이지 않고서도 모든 것이 누군가의 노동력으로 공급되는 편안한 삶으로는 인간의 품격을 유지할 수 없다. 인간다움은 누군가에게 대접받기보다는 누군가를 대접하며, 누군가에게 의존하기보다는 자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을 때 돋보인다. 90을 바라보는 엄마가 새벽부터 일어나 동이 터 올 때 새소리를 들으며 아침 이슬 촉촉한 자연을 느끼면서 마당을 도는 모습은 경이롭다. 가급적 타자의 도움을 최소로 하고 홀로 하루 루틴을 소화하면서 영어 성경을 암송하고, 필사하고, 요가하고, 서예를 하는 엄마의 얼굴에는 여전히 설렘과 즐거움이 있다. 


뇌과학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저술된 [브레인 룰스]라는 책에서 인류학자 리처드 랭험(Richard Wrangham)은 고시대에 남자가 하루에 움직였던 거리는 남자가 무려 10-20㎞, 여자들은 그 절반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하루 동안 걷는 양으로 친다면 옛날에 비해 턱없이 짧은 거리지만, 중요한 건 오늘도 걷는다는 사실이다. 


인생의 후반이 지리멸렬하지 않기 위하여, 75세 이후에도 몸과 마음을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한 비법은 간단하다. 움직여야 한다. 몸과 정신을 나이에 고정시키지 않아야 한다. 사소하고 일상적인 일을 계속 중단 없이 해야 한다. 나의 몸을 움직이면 자동적으로 나의 격이 높아진다. 내 몸을 움직이는 것이 복이라는 것을 기억하기 위하여 매일 아침을 두 발로 맞이한다면 나이 드는 것이 그렇게 공포스럽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서 활약한 내가 청소기를 돌리고, 냉장고와 헛간에 뭐가 있는지를 기억해야 하는가,라고 말하는 그때가 노망의 시초라고 본다.” - 소노 아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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