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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나 May 24. 2024

스승과 제자 사이

-삶의 가르치고, 삶을 공유하는 관계-

영화 <친절한 금자씨>(2005)의 명대사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이 생각난다. 이때 ‘너’란 어떤 존재인가? 좋은 말로 위선을 포장한 타자다. “왜 ‘너’도 잘 못하는 걸 ‘나’ 에게 하라 하지?”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은 교사가 학생들을 지도할 때 섣불리 충고해서는 안 된다는 일침이기도 하다. 학생은 교사의  ‘말’에 금방 반응하지 않는다. 교사의 말과 행동이 일치되는지를 수시로 점검한다.  교사가 얼마나 수업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평가할 뿐 아니라, 그가 학생들을 정말 사랑하고 있는 사람인지 기가 막히게 잘 알아차린다. 교사의 정제된 앞모습보다는 일대일의 만남에서 알게 된 옆모습, 뒷모습에 감응한다. 마찬가지로 자녀는 부모가 정신 차리고 진지하게 하는 옳은 말을 잔소리로 여기지만, 이것만큼은 배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은 부모의 말과 행동을 무의식 결에 닮아간다. 교사나 부모는 말이 아닌 삶으로 가르치는 사람이다.


"너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의 꽃이야." -어린 왕자 중에서-


누군가의 앎이란 머리로 이해하고, 가슴으로 느끼고, 행동으로 표현될 때만 타자에게 설득력이 있다. 5월 [스승의 날] 즈음이면 오랜 세월 동안 한결같은 사랑을 표현해 주는 제자들이 있다. 대부분은 25~27년 전 제자들이고 최근에 만난 제자들도 몇 있는데, 20대에서 50대에 이르기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그들이 20대 대학생 때 만난 나는 어떤 선생이었을까? 그때의 나는 가르침의 열정은 뜨거웠으나 배우는 학생의 입장을 다 알아차리지 못했다. 지금보다 풍부하지 못한 경험으로 인해 모든 학생을 다 진심으로 이해하거나 마음으로 품기 어려웠다. 공부하고 가르치고 집의 자녀까지 돌봐야 하는 빠듯하고 여유가 없던 때의 나는 수업 시간 외에는 항상 동동거리며 뛰어다니는 세상 바쁜 선생으로 비치지 않았을까?


나의 제자들은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때도 나를 좋아해 주었고, 지금도 나에게 큰 사랑을 준다. 언제나 내 편이 되어 나의 행복을 빌어준다. 이처럼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있을까! 참 분에 넘치는 행복이다. 마치 그들과는 가족 같기도 하고 친구 같기도 하다. 우리의 마음은 보이지 않는 두터운 신뢰와 애정의 끈이 항상 연결되어 있어 언제든 서로의 희로애락을 공유한다.      

"제 인생의 갈림길과 결정하는 부분에서 항상 교수님이 계셨어요. 누구보다 저와 함께 고민해 주시고, 진심을 다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교수님을 통해 알게 되는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느껴요. 제가 가는 길에 큰 버팀목이 되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교수님께서는 늘 제 마음속에 멋진 멘토세요.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는 것 같아요."   
"신발을 사면서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났어요. 걸으시는 걸음마다 건강과 축복을 청하며 행복하시길 기도드렸습니다. 삶의 소중함과 행복하라 하심을, 선생님 통해서 은총 주심을 느낍니다. 늘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사랑해요. 나의 선생님."     

"함께 했던 그날들이 생각나는 요즘이에요. 그냥 제가 잘할 수 있었던 그날…. 항상 지지해 주시고 믿어주셨던 그때가 그립습니다. 분명 부족한 것도 많이 보였을 텐데 기다려주셨던 날들. 그래서 그곳에서 많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항상 곁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에게도 잊지 못할 선생님이 한 분 있다. 통제와 억압, 경쟁과 비교가 난무하는 고등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해 심하게 방황했던 내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셨던 선생님. 아무리 거친 말로 현실의 부조리를 읊조려도 비난 없이 다 들어주시고 그 마음 안다는 듯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셨던 선생님. 언젠가 움츠렸던 날개를 펴고 비상할 거라며 응원해 주셨던 선생님. 긍정적인 미래를 꿈꾸도록 나의 못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셨던 선생님. 울분을 참지 못하는 미성숙한 나를 그냥 믿고 지지해 주셨던 선생님. 단 한 번도 선생님을 담임교사로 만난 적이 없는데, 어버이의 품으로 나를 안아주셨던 선생님.


나는 교직에 나가서도 나의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내가 받은 사랑을 학생들에게 되돌려줄 수 있기를 바랐다. 나의 제자들이 내게 해주었던 따뜻한 말들은 잊지 못할 나의 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과 정확히 일치한다. 좋은 선생님과의 경험 덕분에 나의 교직 생활에도 좋은 제자들이 남겨진 듯싶어 감사하다. 아마 나를 사랑하는 제자들도 지금 그들이 만나고 있는 아이들에게 큰 사랑을 주고 있지 않을까?     


스승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제자


문득 오쇼 라즈니쉬의 우화 하나가 떠오른다. 어느 날 존경받는 성자에게 한 여인이 아들을 데리고 나타난다. 아들이 설탕을 너무 많이 먹어서 걱정인데 아무리 먹지 말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으니, 성자의 말은 무엇이든 듣는다고 해서 찾아왔다고 한다. 성자는 소년에게 3주 후 다시 자기에게 오라고 말한다. 여인은 속으로 설탕을 먹지 말라는 말 한마디 해주는 게 뭐 그리 어려워 3주 후에 다시 오라고 하나 생각한다. 3주 후 여인은 다시 아들을 데리고 성자에게 나타난다. 성자는 다시 3주만 더 기다려달라고 말한다. 여인은 왜 또 기다려야 하나 성자에게 묻지만, 성자는 답을 하지 않고 3주 후 다시 와 달라고 부탁한다. 다시 3주 후 그들이 왔을 때 성자는 드디어 소년에게 설탕을 먹지 말라고 말한다. 소년은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한다. 여인은 성자에게 그 말 한마디 하는 데 왜 6주나 걸렸는지 묻는다. 성자는 말했다.


“나는 설탕을 무척 좋아합니다. 그런데 내가 어찌 이 아이에게 설탕을 먹지 말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거짓입니다. 나는 3주 동안 설탕을 끊으려 무진장 노력했지만 실패했습니다. 다시 3주를 더 시도해 보았지요. 이제 나는 설탕을 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떳떳이 소년에게 설탕을 끊으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사는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을 가르칠 수 없다.

오직 자신이 경험한 것만을 가르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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