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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le Lee Aug 02. 2018

내가 너의 가족이 된다는 것의 의미

결혼할 때 생각해야 할 한 가지

"아직 한 번도 싸워본 적 없어요."


대학 선후배로 알고 지낸 지 1년 7개월. 연애기간 3년 7개월. 그리고 결혼기간 3년. 도합 8년 2개월이 지나도록 단 한 번도 싸워본 적 없다는 우리 부부의 말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놀라곤 한다. 어떤 사람은 설마 그럴 리가 라는 의심의 눈초리로 보기도 하고, 또 일부는 그 비결이 무엇이냐 묻기도 한다. 그럴 때면 뭐라 할 말이 없다. 그냥, 우리는 그다지 싸울 일이 없었다. 그뿐이다.


그냥, 우리는 그다지 싸울 일이 없었다. 


"결혼하는 과정에서도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고요? 그럴 수가 있나요? 정말 쉽지 않을 텐데."


결혼에 부침이 없을 수 있을까. 연애를 할 때에도 부딪힘은 늘 있었다. 결혼은 연애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를 눈 앞에 두고 상대방과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된다. 일단 서로 이야기하게 되는 돈의 단위부터가 다르니까. 살면서 단 한 번도 손에 쥐어본 적 없는 단위의 돈을 두고 서로의 생각을 조율해야 한다. 현실감각을 잃은 억 단위의 돈이기에, 그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집을 어디에 마련할 것인지, 살림살이는 어떻게 꾸릴 것인지, 결혼식은 어떻게 치를 것인지.


[용인의 어느 레스토랑, 대한민국]


서로 마음이 상할 수 있는 주제의 이야깃거리들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지뢰밭을 걷듯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무도 다른 삶의 배경을 가진 양가 부모님 사이에서 우리는 현실적인 타협안을 어떻게든 만들어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이런 갈등 속에서 각자의 집안을 대표해 부딪히지 않았을까. 우리에게도 이런 종류의 위기가 수없이 찾아왔다. 


다행히도
우리는 서로 뜻이 통했다.


서로의 부모님이 생각하시는 '결혼'에 대한 인식 차이를 어떻게든 좁히기 위해, 우리 두 사람은 각자의 집안을 대표하는 사절단이 되어 만났다. 비록 각각의 집안을 대변하는 사절단이지만, 우리는 서로 내통을 하고 있었다.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처럼. 정말 다행히도 우리는 서로 뜻이 통했다. 


결국, 우리는 서로의 집안을 반쯤은 배신하면서, 그리고 반쯤은 화의를 신청하면서 우리만의 독립국가를 세웠다. 양측 모두를 100% 만족시킬 방도는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그냥 우리가 양가 모두에게서 벗어나 경제적으로 독립해버리는 것. 우리는 결혼식부터 결혼생활 방식까지의 기준을 우리가 논의한 것에 맞춰 세웠으며, 이를 통해 양가 모두에게 원망 섞인 핀잔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 방법이 가장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포시즌 란다기라바루, 몰디브]


우리는 양가의 간섭을 거의 받지 않고, 우리의 작은 왕국을 건설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한 가지 놓친 것이 있었다. 우리가 언제까지고 독립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착각이었다는 사실이다.  


양가 부모님 용돈은 어떻게 드려야 할까요?


"이번 추석에 양가 부모님 용돈은 어떻게 드려야 할까요?"


결혼 이후에도, 우리는 양쪽의 밸런스를 맞춰나가는 문제가 쉽지 않음을 깨달았다. 조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나와는 다르게 아내의 조부모님은 모두 살아계셨고, 누나가 하나인 나와는 다르게 아내에게는 아직 사회생활을 하지 않는 어린 동생이 둘이나 있었다. 단순히 양가에 얼마씩, 공평하게 하자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서로 다른 환경적 여건은 '공평성'이 불합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비단 금전적인 부분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이를테면 이런 일도 있는 것이다.


"오빠, 이번 설에 혹시 1박 2일로 다 같이 놀러 갈 수 있냐고 엄마가 물어보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혼한 자녀의 방문을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은 모두 같다. 처가에 서운하게 하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뺏어간 나쁜 도둑놈 사위가 되는 것이고, 친가에 서운하게 하면 내 사랑하는 아내가 배은망덕한 며느리가 된다. 


[포시즌 란다기라바루, 몰디브]


인터넷을 보면 이런 문제로 배우자와 한바탕 전쟁을 치른 후기가 다양하게 올라온다. 그 글을 읽으면서 함께 분노하기도 하고, 공감하는 마음에 열을 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 삶에서도 이런 일은 다분히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영구적인 독립국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이번에 어깨를 많이 다치셨대요. 어머니가 많이 상심하신 것 같아요."


어느 날, 어머니에게 연락이 왔다. 근심 가득한 어머니의 목소리에 나도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 아내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수술을 마친 아버지 병문안을 갔을 때 어머니가 조용히 내게 말씀하셨다.


"보내준 돈 잘 받았어. 덕분에 수술비 걱정을 한시름 놨어. 고마워 아들."


어리둥절한 내게 아내는 옆구리를 쿡 찌르고 웃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어머니. 많이 못 해 드려서 죄송해요. 얼른 나으셔야 할 텐데 걱정이에요. 수술이 잘 됐다니 다행인데, 재활에도 많이 신경 쓰셔야 할 거라 어머니가 많이 힘드시겠어요..!"


아내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효자 아들로 만들어주었다. 부모님 병문안 갈 생각이나 했지, 뭔가를 도와드린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철없는 막내아들이 집안의 작은 기둥 역할을 했던 장녀 아내 눈에는 얼마나 철없어 보였을까.


[포시즌 란다기라바루, 몰디브]


그리고 이런 일도 있었다.


장인어른, 장모님과 우리 부부가 함께 쇼핑을 갔던 날, 물욕이라고는 거의 없는 장모님이 옷 한 벌에 완전히 시선이 고정되었다.


"영부인이 입으신 옷으로도 유명해요. 완전히 맞춤옷으로 만드는 거라 많이 만들지도 않아요."


옷을 보는 장모님의 눈이 반짝 빛난다. 하지만 가격표를 보는 순간 두 눈의 불빛은 등화관제가 실시된 70년대 서울의 밤처럼 사그라들고 만다. 평생을 검소하게 사셨던 장모님이 몇백만 원을 호가하는 이런 옷을 사실 리 없다.


모두가 다른 옷을 구경하는 사이, 나는 화장실을 간다며 몰래 빠져나와 그 옷을 결재한다. 장모님과 아내의 사이즈가 완전히 같기에, 아내의 사이즈에 맞춰 옷 수선을 의뢰한다. 이제 몇 달 간은 커피도 끊고, 점심도 컵라면으로 때워야 하겠지. 


그리고 2주 뒤, 아내가 놀란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건다. 


"한 번도 장모님이 그렇게 뭘 갖고 싶다는 표정을 하신걸 본 적이 없어요. 언제 또 그런 걸 찾겠어. 그래서 샀어요. 어차피 장인어른이랑 장모님 결혼 30주년 기념에 뭔가 하려고 모아놓은 돈이 있었는데, 그거 대신에 이거 산거야. 마음에 들어하시죠?"


그냥 다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그다지 어려울 것이 없다. 
내 부모, 내 형제니까.


최근 들어 아내는 우리 부모님께 '님'자 호칭을 빼버리고 말았다. 어머님 대신 엄마, 아버님 대신 아빠라는 호칭이 붙었다. 그리고 아내의 생일마다 장모님께 한 다발 꽃바구니를 선물하는 나를, 장모님은 사위라는 호칭보다 아들이라는 호칭으로 더 많이 부르기 시작하셨다.


[제주도와 우도의 중간 어디쯤, 대한민국]


양쪽 가족의 균형을 맞추는 일은 어렵다. 누가 혹시 서운하지 않을까, 어느 쪽이 혹시 불쾌해하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근심하는 마음이 늘 그림자처럼 따른다. 하지만 생각을 조금 바꾸면 그다지 어려울 것이 없다. 나와 아내는 이제 가족이 되었다고. 그러니까 아내의 부모와 형제도, 내 부모와 형제도 모두 같은 가족이라고. 


가족끼리는 원래 100% 공평할 수 없다. 필요한 곳에 조금 더 손이 가게 마련이고, 급한 곳에 더 빨리 지원이 가게 마련이다. 그런 것에 일희 일비 할 필요도 없다. 원래 가족은 이해타산으로 움직이는 조직이나 집단이 아니지 않은가. 그냥, 피로 묶인 인연. 하늘이 정해준 연이기에 뭐가 되었든 떨어질 수 없는, 그게 가족 아닌가. 괜히 천륜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가족이 되었다. 그렇기에 그 순간에 가장 필요한 곳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생각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방법이 되어주었다. 이제는 더 이상 완전한 독립국이 되지 못하지만, 더 많은 사람과 함께 우리는 더 큰 행복을 나누고 있다.


우리가 가는 방식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더 깊은 관계가 되었기에 상상도 못 하였던 어려움이 우리 앞에 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우리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가족이니까. 취사선택의 영역이 아니니까. 주어진 상황에서 끌어안고 앞으로 나갈 생각이다. 우린, 가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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