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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le Lee Aug 16. 2018

아빠도 할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대요

나이가 들어서야 보이는 것이 있다

생애 첫 유럽 배낭여행을 하던 때의 일이다.


독일 뮌헨에서 새벽 열차를 타고 허름한 퓌센에 내려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향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 독일 퓌센]


다그닥 거리는 마차를 타고 지나가는 여행객들을 바라보며 묵묵히 경사진 도로를 오르던 중, 무릎 정도의 작은 몸을 뒤뚱이며 한 아이가 내 앞을 가로질러 숨바꼭질 숫자를 세는 것처럼 벽에 달라붙었다.


아이는 모기소리처럼 가늘게 울고 있었다.


[울고있는 아이, 독일 퓌센]


어리둥절한 내 곁에는 한 남자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이가 울고 있네요."


"잠투정이에요. 기차에서 내리느라 억지로 깨웠더니 심통이 났어요."


제 딸입니다. 이제 3살 조금 넘었어요,라고 남자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아이가 어린데 함께 여행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말에 남자는 함박웃음을 짓는다.


"이게 다 추억이죠. 봐요.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딸에게 디즈니의 모티브가 된 성을 꼭 보여주고 싶어 미국에서 날아왔다는 남자는, 아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묵묵히 아이의 곁을 지켜주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였다.


[잠투정하는 아이와 행복한 아빠, 독일 퓌센]


나는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나는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특별히 아버지가 내게 나쁘게 대했던 것도 아닌데, 아버지는 늘 어렵고 불편한 존재였다. 아버지가 곁에 있는 것이 불편했고, 아버지가 뭔가를 묻거나 요구하는 것도 싫었다.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은 늘 부담스러웠고 짐스러웠으며, 자꾸만 철부지 어린애로 취급받는 느낌도 좋지 않았다.


왜일까.


아버지가 특별히 나를 괴롭힌 것도 아니었는데.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은 정말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아버지와 함께 한 시간이 너무도 적었던 탓이다. 아버지가 나를 잘 모른다고 느꼈던 것 이상으로, 나는 아버지의 삶을 모르고 있었다.


[경복궁, 대한민국 서울]


거의 무일푼으로 어머니와 살림을 꾸리신 아버지는 생활을 위해 늘 일에 매달려 있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면 집을 나서고, 일이 끝나 집에 돌아오면 저녁 10시가 넘는 그런 생활을 아버지는 30년이 넘도록 한결같이 지켜오셨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주말이면 아버지가 집에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부업을 위해서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 외에 남는 시간에 아버지는 늘 잠에 빠져 계셨다. 


당연하다. 나라면 한 달도 버티지 못할 것 같은 그런 생활을, 아버지는 30년 넘게 계속하셨음이 신기할 따름이다. 


[지휘하시는 아버지, 부천시민회관]


대학교 3학년을 마친 겨울,  어머니에게 등을 떠밀려 아버지와 함께 약 3주간 내 생애 두 번째 유럽 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마주한 아버지는 늘 피로에 지쳐있는, 평소 내가 알던 아버지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장난기가 넘쳤고, 느끼한 스파게티를 즐겼고, 독한 에스프레소를 음미할 줄 아는 발랄한 스물다섯 청년 같은 남자였다.


[콜로세움, 이탈리아 로마]


숙소로 돌아온 밤이면 참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아버지는 내게 "졸업하면 뭐 할 거야?", "만나는 여자 친구는 없어?"와 같은 질문을 던졌고, 나는 아버지에게  "아빠 어렸을 때는 어땠어요?", "엄마랑 연애할 때 주로 뭘 했어요?"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이야기가 돌고 돌면서, 우연히 듣게 된 아버지의 고백.


"아빠도 할아버지랑 안 친했었어."


아빠도 할아버지랑 안 친했었어


[포로 로마노, 이탈리아 로마]


생전 단 한 번도 안아준 적이 없었다는 무뚝뚝한 할아버지. 그래서 누구보다 다정하고 따듯한 아빠가 되고 싶었다는 아버지. 하지만 다정한 아버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는, 우리 아버지.


그 겨울의 여행 이후로 나는 아버지와 함께 앉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고,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저 녀석이 어느새 다 컸어."라고 말씀하셨다.


[융프라우요흐, 스위스 인터라켄]


가끔  퓌센의 우는 딸을 바라보는 주름 가득한 남자의 행복 가득한 웃음을 떠올릴 때면, 그 얼굴 위로 아버지의 웃는 얼굴이 겹쳐 보이곤 한다. 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하던 그 시절에 아버지는 새벽잠을 덜어 내며 어머니와 함께, 눈가 촉촉이 젖은 나의 얼굴을 닦아주며 그렇게 웃고 계셨으리라는 그런 생각에.


설경이 멋졌던 스위스에  언젠가 다시 한번 꼭 가보고 싶다는 아버지.


그 여행에,  꼭 아들과 동행하고 싶으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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