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오답노트 12화

마스크 좀 내려봐요. 얼굴은 봐야지.

12. 면접 제안이 왔다(2)

by Kyle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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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 이야기를 쓰다 보니 최근에 보았던 또 다른 면접이 떠오른다. 이곳도 스타트업이었고, 국내 최고 중 하나로 손꼽히는 콘텐츠 회사의 인사팀장 포지션 오퍼였다. 역시 이번에도 면접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국내 최고로 힙한 콘텐츠를 만드는 조직의 문화와 사람들, 그들의 바이브가 궁금했다.


회사에 대한 이미지는 명확했다. 영상에서 보여주는 자유분방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신선함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최고의 무기였다. 이들의 톡톡 튀는 개성의 매력은 영상마다 최소 여섯 자리를 넘어서는 조회수가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지는 이미지고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다. 면접을 보러 가기 전, 으레 그렇듯 회사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해본다. 매출, 업력, 직원 수 변동 이력, 퇴사율, 투자 히스토리와 연봉정보, 복지체계, 그리고 퇴사자의 회사와 관련된 각종 썰. 어렵지 않게 회사에 대한 악의적인 악담을 찾아낼 수 있을 만큼 많은 퇴직자들이 분노에 차 있었다. 후루룩, 글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이미지는 이미지고,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다. 환상은 벗겨내고, 속살을 보자.


환상은 벗겨내고 속살을 보자.


어느 회사건 단점이 존재한다. 아무리 좋은 회사라도 모든 직원이 만족하는 경우는 없다. 그리고 때로는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기도 하며, 그럴 경우 ‘소’에 해당한 사람에게 조직은 거대한 절대 악이 된다. 악과 마주한 개인은 억울한 마음을 풀 길이 없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은 대나무 숲에 소리를 지르는 일이다. 요즘의 대나무 숲은 무척 잘 다듬어졌고, 수풀 속에 숨어 들어주는 이도 많다. 소리 지를 맛이 난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인터넷에 떠도는 악평을 곧이곧대로 듣는 것은 좋지 않다. 같은 회사라도 부서마다 천차만별로 분위기가 다를 수 있고, 누구의 밑이고 누구의 위 포지션이냐에 따라서 같은 사람과 일해도 만족도 평가가 극적으로 달라지기도 한다. 바깥에서 접할 수 있는 정보는 딱 거기까지다. 참고자료 그 이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게다가 스타트업인데 말해 무엇할까. 기대감을 내려놓고 면접장에 들어섰다.


어쩌면 이리도 사람들의 평과
똑같을 수 있을까.


면접은 대략 40분 정도가 걸렸다. 채광이 좋은 통유리로 된 작은 사옥을 나서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이리도 사람들의 평과 똑같은 곳이 있을까. 회사에 들어서자 20대 중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직원이 면접장으로 안내해주었다. 운영을 담당하는 임원의 개인 사무실이었다. 해당 임원과 안내해준 직원이 면접을 진행했다. 아마도 직원은 인사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운영 임원은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인 책상에서 일어나 회의 테이블로 다가왔다. 좋게 말해 자유분방했고, 나쁘게 말해 부스스했다. 사무실에서 잠을 잔 것인지, 노숙을 하다 왔다고 해도 믿을 만큼 까치집을 한 머리에 헐렁거리는 티셔츠가 조화롭게 매칭이 되었다. 직원들의 캐주얼 복장과는 또 다른 차원의 자연스러움이었다. 하기사 복장이 무슨 문제일까. 정말 몰두해서 일할 때는 다 그렇지. 나도 스타트업에서 일할 때는 그랬다.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새벽이고 주말이고 나가서 급한 일을 처리했다. 새벽 1시에 급한 스케줄을 통보받고 새벽 5시까지 출근한 적도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면접관이 방금 떠난 그 책상을 보았다. 3분의 1쯤 남은 고급스러운 싱글몰트 병이 보인다. 저거, 치즈랑 같이 먹으면 향이 예술이지. 음.


면접관의 나이는 나와 거의 비슷하거나 조금 더 어린 듯했다. 젊은 나이에 임원, 특히 결정권의 상위권에 들어가게 되면 세상이 만만해 보이기 쉽다. 아니, 그보다 ‘사업병’에 걸리면 그건 더 답이 없다. 그리고 이 면접관은 딱 그 위험한 문을 들어선 것 같았다. 그가 입을 열 때마다 내 귓가에는 이런 환청이 들렸다.


“나는 사업을 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매 순간 치열한 책임감을 감당하는 슈퍼맨 같은 삶을 살아가고, 당신같이 월급이나 받으며 안전하게 일하는 직장인들이 먹고살 수 있는 건 나 같은 창업자 정신이 있는 사람들 덕분이며, 그래서 책임에 짓눌린 나와 같은 사람의 무게를 모를 것이고, 그렇기에 당신이 어떤 경력을 가졌던, 나이가 어떠하든 사회적 연령은 내가 더 높으며 결정권과 명령권도 내가 갖는 것임을 나의 모든 말 한마디 한 마디마다 당신이 느끼게 해 주겠다.”


잘 감이 오지 않는다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예를 들어보자. 바로 이런 느낌이다.


“인사 직무 관련 전문지식이 충분히 있다고 판단하세요? 아니, 구체적으로 말 길게 할 필요 없고. 아니, 사실 관심 없어요. 세부 법령이 뭐 어쨌네 근로기준법이 뭐 어쨌네 하는 거 관심 없고, 그냥 문제 되지 않게 잘 처리하는 게 필요한 거죠. 말 나오고 문제 되는 것만 없으면 솔직히 인산지 뭔지 거기서 하는 거 별 관심 없어요.”


뭘 그런 걸 대답이라고 해요, 당연한걸. 그건 됐고요, 하고 그가 말할 때마다 나의 머릿속에서 딱따구리 한 마리가 두개골을 쪼며 외친다. 꼰대! 꼰대다! 참 다행히도 나는 이런 꼰대 임원을 많이 겪어보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대처법을 잘 알고 있다. 웃는다. 편안하게. 몸에 힘을 빼고. 상대의 느물 느물한 말 덩어리 표면을 타고 스르륵 흘러내려간다. 때로는 유연함이 필요하니까. 일이 되도록 하기 위해 까는 것과 까고 싶어서 까는 것의 차이를 잘 구분해야 한다.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매우 중요한 스킬이다.


면접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나도 상대도 더 이상 서로에게 물을 것이 남지 않았다. 이제 슬슬 일어나야겠구나 하고 짐을 챙길 준비를 하던 순간, 그가 말한다.


“그런데 얼굴도 제대로 못 봤네. 마스크 좀 내려봐요. 그래도 얼굴은 봐야지.”


마스크 좀 내려봐요.
그래도 얼굴은 봐야지.


면접장에서 나와 조용한 골목길을 걸었다. 오후 3시가 조금 넘은 강남의 고요한 주택가 사이사이로 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내려앉았다.


나는 어땠더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면접자가 아닌 면접관으로 면접장에 들어갔던 경험이 압도적으로 더 많다. 나는 혹시, 혹시 나도 내가 앉은자리의 권리에 취하진 않았을까.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할 순간에 권리를 악용하지는 않았을까. 나는 과연 나와 함께했던 동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남아있을까.


중심잡기가 참 어렵다.


중심 잡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면접관이 되어 사람을 뽑는 입장에서는 물어보고 싶고 확인하고 싶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작은 규모의 회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도 중요하다. 한 사람이 잘못 들어와 조직 전체가 위태롭게 흔들리는 경험을 스타트업 치고 안 해본 곳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에 그 면접관의 예민함과 까칠함 자체를 기분 나쁘게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다.


사람을 밟고 올라선 자리.jpg instagram : @maywithmayday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은 지위가 월계관이나 왕관이 아님을 말하고 싶었다. 이를 망각하고 착각에 빠지는 순간 조직 문화는 위에서부터 상하기 시작한다. 중간층은 위와 아래의 눈치를 보며 이도 저도 못하게 되고, 아래는 앞에서 입을 닫고 뒤에서 조직을 버릴 준비를 한다.


면접을 마치면서 “최대한 빨리 연락을 주겠다.”라고 하던 그 임원은 꽤 오랫동안 연락이 없었다. 약 2주가 지났을 무렵부터는 역시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면접을 봤다는 사실 자체가 희미하게 기억에서 지워져 갈 무렵, 중간에서 추천을 해주었던 헤드헌터에게 전화가 왔다. 마지막에 안타깝게 불합격하게 되었다고. 면접을 본 지 2개월이 지나, 가을 낙엽이 지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 후로 나는 그 회사가 만든 콘텐츠를 잘 보지 않게 되었다. 유튜브에 썸네일이 보일 때마다, 나는 그 임원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아니, 사실 관심 없어요. 근로기준법이니 뭐니 그런 건 알아서 하시고, 문제없게만 하면 뭘 하건 관심 없거든요.


관심에서 멀어진 직원들은 어떤 표정으로 이 영상을 만들었을까. 한 마리 공작새처럼 끼를 펼치는 출연자들을 찍고 있을, 카메라 뒤편의 그들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뷰파인더를 바라보고 있을까. 왠지 미안해져서, 도무지 손가락이 가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내가 좋아하던 채널을 떠나보냈다.


내가 언제까지 직장인 노릇을 할지는 잘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좋은 직장인이 되는 것인지를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하지만 그래도, 어떤 것을 하지 않아야 하는지는 조금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는 것보다 실천하는 것이 늘 더 어려운 것이 문제겠지만.




[작가의 말]
글 : Kyle Lee (https://brunch.co.kr/@kylelee)
“직장인 생활이 제 처음 예상보다는 조금 더 길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업 작가님들 존경스럽습니다.”

그림 : 매이 (instagram : @maywithmayday)
"사람 위에 서려고 하면, 사람이 밟아야 하는 무언가로만 보이지 않을까요? 우린 땅을 밟고 가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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