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면접 제안이 왔다 (1)
“여기는 강남 8 학군이 아니에요. 팀장이라도 실무를 뛰어야 하는 스타트업이에요.”
정말 할 수 있겠어요? 면접관이 물었다. 지난 4년을 영상으로 만들어서 보여주고 싶다. 설마 이런 질문을 받을 줄이야.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하지만 나의 이런 생각은 말이 되어 나오지 못한다. 마스크에 가려진 나의 입은 쓰디쓴 미소를 애써 가리며 너털웃음을 토해낸다. 그럼요. 알고 있지요. 실무를 손에서 놓아본 적은 없습니다, 하고.
면접 제안이 왔다.
몇 년 전 취업사이트에 올려두었던 이력서를 보았다며 한 헤드헌터가 메일을 보냈다. 혹시 면접을 볼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 회사 이름을 찾아보았다. 대한민국 차세대 유니콘 기대주로 급격히 떠오르고 있는 핫한 회사다. 매출을 내기 시작한 지 단 한 해 만에 수십억 단위로 점핑을 했다. 공시된 자료를 보아도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투자 유치 여력도 커 보이고 앞으로의 매출과 사업분야도 건실하다. 이 회사, 숫자로 보이는 모습은 굉장히 예쁘다. 하지만 인사 바닥에서 구른 짬빠가 있는데, 이 정도 정보로는 부족하다. 여기저기 커뮤니티를 들쑤시며 회사의 속살을 하나 둘 캐내기 시작한다. 직원 수, 연봉 수준, 복지 수준, 직원들의 불만이나 회사에 대한 아쉬움 등이 고구마 줄기처럼 나오기 시작한다.
종합적으로 볼 때, 이 회사는 성장 가능성이 무척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럼에도 비전이 분명하고 업을 이어나가는 운영진의 행보가 탄탄하며 흔들림이 없다. 아직은 갖춰진 시스템이 없어 구성원들이 많이 힘들지언정, 스타트업 치고는 꽤나 안전한 회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헤드헌터와 통화를 하면서 면접 제안을 받아들였다. 비단 이 회사뿐만 아니라, 면접 제안을 받으면 거의 거절하지 않는 편이다. 꼭 이직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다른 회사를 합법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정식으로 손님으로 초대되어 그 회사의 고위직급자인 면접관을 만나고, 인사담당자를 만나고, 회사 내부의 시설이나 배치 등을 보고 직원들의 업무 분위기를 직접 느끼며 나의 업에 참고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면접을 보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회사와 산업에 대한 공부도 하게 된다. 적어도 면접장에 들어가서 창피를 당하지 않기 위해 반 강제적으로 새로운 영역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된다. 이 모든 것들이 단 한 번의 면접을 통해 이루어지게 된다.
면접 기회를 통해 배우는 것들이 결코 적지 않기에 면접에 가지는 기대가 큰 편이다. 새로운 것을 접하기 전의 소소한 기대감과 떨림을 안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경력기술서를 업데이트하여 헤드헌터에게 전달했고 1시간도 되지 않아 면접 날짜가 정해졌다. 꽤나 급한 모양인가 보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는 강남 8 학군이 아니에요.
꽤나 한적한 공장 부지 같은 곳에 위치한 이 회사는 꽤나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바쁘게 일이 돌아가고 있는 회사에서만 느낄 수 있는 활력이다. 오는 길에 보인 낙엽도 무척이나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주었다. 정말 콧노래가 절로 나올 것 같은 기분으로 면접장에 들어섰다. 그리고 나의 설레는 마음은 5분도 되지 않아 화장실 걸레짝처럼 누더기가 되어버렸다.
면접관으로 들어온 부대표라는 분은 간단한 소개와 함께 폭풍처럼 질문을 던졌다. 지난 회사들에서의 경력사항. 이직사유. 현재 주거지와 가족관계. 현재 하고 있는 업무와 연봉 수준 등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력서를 열심히 들추며 질문을 이어가던 면접관은 어느 지점에선가 잠시 손을 내려두고 나의 눈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여기는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인원이 100명가량 되지만 인사팀은 있었던 적이 없어요. 그냥 인건비 처리하는 경리가 알아서 급여랑 4대 보험 업무를 봤는데 그것도 완전 개판이었고… 그래서 지금 인사팀이 만들어진 게 일주일도 안됩니다. 팀원도 그냥 채용을 담당할 신입에 가까운 친구 한 명뿐이고.”
인사팀장을 뽑는 거지만, 인사팀장도 실무를 해야 해요. 여기는 그런 곳입니다. 당장 100명에 가까운 직원들 급여업무나 4대 보험 업무를 팀장이 직접 하고 팀원도 가르쳐야 합니다. 여긴 완전, 그러니까, 진짜 스타트업이에요. 자기 자리 청소도 직접 하는 그런 곳이란 말입니다. 면접관이 말했다.
의아했다. 왜 이렇게까지 흥분해서 눈에 불을 켜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스타트업의 사정에 대해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4년 넘게 창업 시장에서 바닥을 기며 일했다. 사무실 청소 용역을 쓸 돈도 없어 매일 아침 가장 먼저 출근하여 회사 앞 현관부터 3층짜리 사무실을 혼자 빗질하고 물걸레질을 하던 나였다. 인사담당 임원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인사업무를 해본 부하직원이 단 한 명도 없어서 말단 직원이 하는 일부터 기획 관리 단계의 영역까지 내 손으로 안 한 것이 없었다. 막말로 내가 바로 인사팀 그 자체였는데.
“난, 그래요, 인사팀장으로 지원하셨는데, 이런 아무것도 없는 환경을 과연 견딜 수 있을까요? 인사팀장을 뽑는 건데, 막중한 자리잖아요.”
영 안심이 되질 않아요. 면접관이 말했다. 그래요, 정말 그래 보여요. 하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덧붙여 이렇게 말해주고 싶기도 했다. 경력기술서에 그동안 제가 했던 일에 대해 상세하게 적어드렸는데. 거기 제가 했던 것들이 다 있잖아요. 그거 다 제가 한 건데. 못 믿으실 거면 면접에는 대체 왜 부르신 건가요. 목구멍을 간질간질 간지럽히던 이 질문이 새어나가기 전에, 면접관은 나의 의문을 해소해주었다. 바로 이 질문을 통해서.
“… 초등학교는 어디 나왔어요?”
“대치초등학교를 나왔습니다.”
“계속 집이 그쪽이었던 거죠?”
“네, 태어나서 대학 때까지 쭉 대치동과 청담동에서 살았습니다.”
“… 여기는, 강남 8 학군이 아니에요.”
그렇구나. 이거였구나. 누군가 내 뒤통수를 후려친 기분이었다. 뎅… 징이 울린다.
불꽃같았던 지난 시간이 만들어낸
상처를 건드린 탓이리라.
면접관의 불안감은 선입견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었나 싶다. 강남 8 학군에서 곱게 자란 도련님이 정말 이렇게 험하게 일을 해왔던 걸까에 대한 의심. 사실은 사람들을 부릴 줄이나 알았지 할 줄 아는 건 별거 없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 그리고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단어들이 줄지어 눈앞을 지나간다. 끈기 없음, 의존적임, 문제 해결 능력 부재, 엄마 찾아 삼만리, 해주세요 잉잉.
쉽게 벗겨지지 않는 가면이 있다. 사실은 꽤 자주 마주쳤던 선입견의 벽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출신 학교와 거주지를 듣고 이런 이미지를 떠올렸고, 나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이 가면을 벗기 위해 무던히도 조용한 싸움을 지속해왔다. 삼성에서 회사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매일같이 새벽에 출근해 경영지원 상무님과 아침식사를 하는 또라이 신입사원이었고, 스타트업에서 임원으로 업무를 할 때에도 현장 직원들 픽업이나 운전 지원을 나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급격한 자금난으로 회사가 대금을 지급하지 못할 때는 직접 채권자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사정했고, 사정이 더 어려울 때는 월급을 받지 않고 주말에 물류센터로 가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기도 했다. 이런 내게 고작 급여 실무 따위나 대청소 따위를 예로 들며 할 수 있겠느냐 묻는 질문에 눈에서 불길이 일었다. 보상받을 길 없던 지난날의 불꽃같은 시간이 만들어낸 상처를 건드린 탓이리라.
하지만 나의 이런 생각은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마스크에 가려진 나의 입은 쓰디쓴 미소를 애써 가리며 너털웃음을 토해낸다. 그럼요. 알고 있지요. 저도 스타트업 경험이 있습니다. 여전히 못 미더운 표정을 한 면접관은 눈길을 돌려 다시 이력서를 뒤적이고, 나는 더 어떠한 변명이나 설명을 덧붙이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선입견이 만든 필터는 쉽게 벗겨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알고 있다.
일단 테스트처럼 3일만, 아니,
하루만 일 해 보고 결정하면 어때요?
면접관은 마지막에 내게 이런 제안을 했다.
“솔직히 답변하신 것들은 다 이해했어요. 하지만 역시 안심이 되지 않아요. 그래서,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3일만, 아니, 하루만 나와서 일을 해보고, 팀에서 다른 사람들과 일하시는 모습을 보고 결정하면 어떨까요. 직접 어떻게 하시는지 보고 나면 좀 확인이 될 것 같은데.”
그렇게 절 안심시켜주시면, 그다음엔 저도 자신감을 가지고 대표님과 다른 임원분들 면접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면접관이 말했다.
반문하고 싶었다. 그래서 제가, 하루 동안 와서 회사 내부 직원들 정보를 다 파악하고, 급여 수준이나 인력 편제, 조직편제, 내부 민감 정보들 다 파악하고 이 회사 안 오고 경쟁회사로 가면 어쩌시려고요. 인사 정보는 정말 민감한데, 그걸 정식 계약도 하기 전에 외부인에게 공개하겠다고 하시는 건가요,라고.
하지만 역시 이번에도 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이유는 정말 단순하다. 면접관은 정말 한숨이 나올 정도로 답답했지만, 인사팀으로 차출했다는 그 채용 담당 인사팀 직원이 일을 아주 맛깔나게 잘했기 때문에. 면접을 진행하기 전 스케줄링이나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이 아주 수준급이었다. 회사보다 이 직원이 아주 탐이 났는데, 괜스레 면접장 분위기를 망쳐서 면접을 진행한 직원이 곤란에 빠지는 건 피하고 싶었다. 그 대신 면접관에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해석은 당신의 몫 이리라.
자격지심이거나, 아니면
뭔가 크게 데인 적이 있거나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면접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주었다. 마찬가지로 7년 차 인사 관련 업무를 하고 있는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면접관이 강남 출신 사람들에게 자격지심이 있거나, 아니면 뭔가 크게 데인적이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사업을 하면서 돈 가지고 치사하게 구는 강남 출신 졸부 투자자에게 시달렸을 수도 있고, 아니면 돈으로 발라 만든 스펙 화려한 강남 출신 직원을 뽑았다가 조직을 개판으로 망쳐먹은 경험이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니겠냐는 말이었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어느 카테고리이건 마찬가지다. 강남 출신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 것처럼, 흙수저나 특정 지방 사람에 대한 선입견도 존재한다. 세상에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보다 그 사람을 구성하는 어떤 특정 요건을 부풀려 그 사람을 지레짐작하고 예측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성별, 종교, 국적, 학벌, 출신지역 등 사람들은 누구나 온전히 누군가의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나만 피해자는 아닌 것이며, 어쩌면 때로는 나도 모르는 사이 폭력적 시선의 가해자가 되어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때로는 나도 모르는 사이
폭력적 시선의 가해자가
되어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 안에는 아직 풀리지 않은 숙제가 있다. 힘겹게 노력한 것에 대한 인정을 받고 싶은 순진한 욕심이 나의 감정을 흔든다. 프로답지 못한 자세다. 프로는 고요하고 냉철해야 하는데. 상황을 파악하고 냉정하게 계산하며 최선의 답을 내기 위해 감정을 소비해선 안되는데. 내가 지향했던 성숙한 사회인의 모습은 이런 것인데. 불혹이라 말하는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나는 여전히 억울한 마음을 유치하게 호소하며 바람 앞의 촛불처럼 또 흔들거리고 말았다.
언젠가 이런 시선을 다시 마주한다면, 나는 그때도 웃는 얼굴로 넘길 수 있을까? 확신이 서지 않는다. 온전히 나로 평가받고 싶은 욕심을 마음 한구석에 남길 만큼 나는 아직 어리석고 순진하다. 하지만 나는 그날 면접관에게 따져 묻지 않았던 것에 대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돌이켜 생각하면 오히려 오해를 더 깊게 남길 수 있었던 행동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과, 그 면접관의 선입견 어린 시선의 가장 큰 피해자는 오히려 그 면접관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했다. 면접관은 아마도 앞으로 강남 출신의 부하직원은 밑에 두기 어려울 것이다. 아니, 밑에 두더라도 신뢰하지 못하고 그 직원의 업무를 수시로 들추다 생산성과 효율성만 해칠지도 모른다. 스스로의 선택지를 줄이고 가둬버린 선입견의 가장 큰 피해자는 다름 아닌 그 면접관이 아닐까.
그리고 나는 그날 나의 면접을 진행했던 새내기 인사팀 직원과 저녁 약속을 잡았다. 그만큼 그 직원의 업무 스타일은 깔끔하고 인상적이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관계없이 꼭 커피 한 잔 나누고 싶다는 나의 문자에 그 직원은 “예스”라 답했다.
[작가의 말]
글 : Kyle Lee (https://brunch.co.kr/@kylelee)
“앉는 자리에 따라 보는 세상이 달라집니다. 사람이 참 이렇게 간사해요.”
그림 : 매이 (instagram : @maywithmayday)
"초면에 제가 어떤 타입인지 알겠다고 말하는 분들 앞에서 웃음 터트리지 않는 법을 연구 중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