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오답노트 09화

처음으로 빚쟁이가 되었다

09. 돈이 없어지자 세상이 바뀌었다

by Kyle Lee

안정적인 기업과 스타트업의 가장 큰 차이가 뭘까?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그 즉시 이렇게 답할 것이다. 돈. 돈을 제 때 지급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스타트업에 합류했을 때 나는 제법 호기가 있었다. 서울 중심부의 거대한 빌딩 숲에 한가운데 자리한 사무실에서 나와 좁은 골목길에서 매캐한 매연과 하수구 냄새가 흘러나오는 새로운 사무실로 자리를 옮길 때에도 차고에서 부대끼며 뚝딱거리던 애플컴퓨터의 도전을 떠올렸다. 나는 어쩌면 용맹한 한 마리 호랑이인지도 모른다. 눈앞에 놓인 장애물을 물어뜯고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리라. 그런 마음으로 새로운 환경에 도전했다.


호랑이는커녕 호구라는 치타도 되지 못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깨달았다. 나는 호랑이 같은 것이 아니었다. 호랑이는커녕 사바나의 대표 호구로 손꼽히는 치타나 재규어도 되지 못했다. 이 엄중한 현실은 한 달도 되지 않아 아주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사무실에 찾아온 빚쟁이들과 호기롭게 맞다이를 뜨는 네 살 연하의 기존 멤버를 보면서.


내가 몸담고 있던 팀은 나름 여러 개의 자회사가 있었고 꽤 다양한 비즈니스 영역에 손을 뻗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많은 매출을 가져오는 회사는 단연 건설사였다. (스타트업이 무슨 건설사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고, 그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생존전략을 짠다.)


건설사, 특히 시공사가 살아가는 방식에는 어떤 마초적인 울림이 있다. 당시 건설사의 재무를 담당하던 네 살 어린 동료는 이 팀이 처음 꾸려질 때부터 함께해온 원년멤버였다. 대학생이 되자마자 대표와 함께 사업에 뛰어들었던 멤버인데, 그다지 크지 않은 키와 삐쩍 마른 체구로 인해 그다지 깊은 인상을 주는 친구는 아니었다. 굳이 어느 쪽이냐 묻는다면 이 친구도 결국 나와 같은 초식동물 부류가 아닐까 생각했다. 좀 더 친해지면 같이 근처 풀밭에 가서 사이좋게 풀이나 좀 뜯어먹어볼까. 햇살 좋은 날에 도토리도 좀 줍고.


그러던 어느 날, 회사 입구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유리문을 부서져라 두드리던 한 무리의 사람들이 문이 열리기 무섭게 소리를 질러댄다. 내 돈 내놔.


내 돈 내놔!


“돈을 주기로 했으면 제 때 주던가, 그것도 아니면 연락이라도 받아야 할 것 아니야!”


일을 하고도 돈을 받지 못한 업체 대표는 굳은살이 거칠게 박인 주먹으로 응접실 테이블을 두드렸다. 여러 목소리가 뒤섞여 사무실 전체가 쩌렁쩌렁 울렸다. 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광경이었다. 제1 금융권 은행 이외에 다른 곳에서 돈을 빌려본 적도, 내야 할 돈을 연체해본 적도 없었던 나는 이 모든 것들이 낯설었다. 사물놀이와 오케스트라단과 아프리카의 토속 타악기가 뒤섞여 심포니 연주를 하는 것만 같았다. 지옥의 오케스트라는 이런 식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구석진 방에서 건설사 재무담당자가 나와 응접실로 들어갔다. 아주 잠시, 목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가는가 싶더니 이내 잠잠해진다. 마치 롤러코스터 같다. 언제 바닥으로 고꾸라질지 모르는 안개 너머 레일을 보는 느낌이다. 아니나 다를까, 머지않아 응접실은 다시 한차례 요란스러운 소음으로 가득 찬다.


없는데 어쩌라고.


그런데 이번엔 조금 달랐다. 커다란 망치를 두드리는 것 같던 육중하고 거칠었던 아까의 목소리와는 달리 약간 앳되면서 까랑까랑 찢어지는 중고음의 톤이다. 귀를 기울여보니, 재무담당자가 소리치고 있다. 어쩌라고요, 없는데. 아니 내가 안 주고 싶어서 안주냐고. 먹고 죽을래도 없다니깐. 뭔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뭘 해도 해주지. 뭐 나가서 내가 장기라도 팔아올까요. 나보고 씨발 어쩌라고요.


벌꿀 오소리다. 그는 나와 같은 초식동물이 아니었다. 그는 작은 체구에 앞뒤 가리지 않고 일단 머리부터 박고 보는 벌꿀 오소리였다. 아니면 작은 하마 같은 건가. 작은 하마를 건드리면 지읒 되는 거예요 하고 그가 말하는 것 같았다. 여리여리하던 그의 모습은 대체 어디로 가버린 걸까.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절대 돈 관련 일은 맡지 말아야겠다고. 나는 아마도 저런 상황을 견뎌내지 못할 것 같다고.


09 처음으로 빚쟁이가 되었다.jpeg instagram : @maywithmayday


성실하게 땀 흘려 돈을 벌어야 한다고 배웠는데


부모님은 늘 성실하게 땀 흘려 돈을 벌어야 하고, 쉽게 얻은 돈은 쉽게 사라진다고 가르치셨다. 평생 부끄러운 돈은 백 원 한 푼 받지 않으셨던 부모님이었다. 게다가 외할아버지는 큰돈을 벌 수 있었던 분이셨음에도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봉사하는 삶을 택하셨다. 대한민국 최고의 외과의사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두 번의 개인병원 폐업이 있었다. 누구는 감자 한 포대 받고 수술해주고, 누구는 배추 받고 약 지어주고. 또 누구는 그냥 해주고.


이런 집안 내력은 삶을 풍족하게 만들어주진 않더라도 상당한 자부심을 안겨주었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 없게 살리라. 그렇게 살면, 언젠가 합당한 보상을 받게 되리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대체 어디서 생긴 믿음인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정말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누면서, 착하게 살아야 한다,라고.


저 사람, 그때 사무실 찾아왔던 그 사람 아냐?


한동안 건설사는 쭉 사정이 좋지 못했다. 한 번은 빨간딱지가 사무실에 붙기도 하고, 일주일에 두어 번 씩 채권자가 찾아와 사무실 벽을 두드리는 일이 반복되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던가. 몇 달이 지나자 나 또한 이런 상황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거칠게 호통치는 누군가를 보는 일이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될 만큼.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우리 쪽 건설현장에 들어오는 업체명 틈에서 낯익은 이름이 들렸다. 사무실로 찾아와 호통치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어? 이상하다. 저 사람 대금이 나갔나? 아직 돈이 막힌 걸로 아는데.


“그 사람, 어떻게 우리 현장에 와있어? 돈 다 나간 거야?”


나의 물음에 재무담당자가 웃으며 답했다. 아뇨, 일부만 나갔어요.


“일부만 나갔어요. 그리고 이번 공사일 해주면 이번 거랑 미지급된 대금도 같이 주겠다고 했어요.”


어쩌겠어요. 우리 망하면 어차피 돈 못 받는데. 차라리 일 해주고 여기서 벌리는 돈으로 자기도 받는 게 낫죠. 담당자는 아주 태연하게 이야기했다.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로다. 중생이여 어찌 고뇌하느냐,라고 말하는 것처럼. 물고기는 물 밖에서 숨을 쉴 수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세상은 정글이었다.


사업을 하며 마주친 세상은 단연 정글이었다. 땀 흘려 번 돈도 부끄러운 돈도 검은돈도 여기서는 모두 그냥 돈이었고, 돈이 없는 회사는 흉악범보다 못한 존재였다. 나의 지난 순진했던 가치관을 가지고는 감히 살아남을 수 없는 피라니아 가득한 수조 같은 곳에서, 나는 지금껏 능력 있는 분들의 감사한 보호막 안에서 화초처럼 살아왔음을 실감했다. 세상에는 그렇게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것과 이 도박 같은 상황에서 승리한 사람이 훨씬 더 큰 열매를 얻어 세상을 움직인다는 것도.


시간이 흐르고 회사에 적응했던 나는 결국 일부 관계 법인들의 재무 업무에도 관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필연처럼 내게도 시련의 시간이 도래했다. 난생처음 받아보는 빚 독촉.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문자와 전화.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하소연하는 채권자들의 다양한 전략을 상대해야 했고, 때로는 욕설과 위협에도 함께 소리쳐야 했다. 작은 돈으로 큰돈을 움직이는 법이 있다는 것도 배웠다. 그리고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도 신뢰를 잃지 않는 방법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사업은 크건 작건 도박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이 도박판에 뛰어든 사람들은 성공한 사업가, 그리고 사기꾼이라고 적힌 피켓이 각각 양 끝에 자리한 외줄 한가운데 선 자들이라고. 계산이 잘 맞아떨어져 무리하게 벌였던 도박이 성공한다면 그는 성공한 사업가라 적힌 피켓을 향해 걸어가고, 그렇지 못하면 사기꾼이라 적힌 피켓을 집어 들게 된다고.


나의 아이가 어떤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는지 생각해본다.


이 스타트업 팀에서는 약 4년의 시간을 보냈다. 정식으로 합류하기 전에도 계속 교류하며 업무와 네트워크에 도움을 주던 기간을 생각하면 거의 5년에 달하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끝으로 나는 사회와 삶에 대해 큰 경험과 깨달음을 주었던 이 회사를 떠났다. 호기로웠으나 결코 가볍지 않았던, 공동창업자로서의 스타트업 도전을 끝내게 된 이유는 꽤나 다양하지만, 내가 하지 않은 결정으로 인한 빚쟁이 생활에 질린 것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음을 부정하지는 못할 듯하다.


내가 옳다고 믿으며 지켜왔던 나의 모든 기준은 지난 4년의 경험으로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이제 나는 어떤 가치관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맞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나는 앞으로 태어나게 될 나의 아이가 어떤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는지 생각해 본다. 그래서, 내가 바라는 내 삶의 방식을 찾아보기로.


나는 과연 나의 아이에게, 내가 배운 것처럼 가르칠 수 있을까? 나는, 내 아이의 삶이 어떤 모습이길 바라고 있을까. 이 질문 너머의 답을 언제쯤 다시 확신하며 굳건히 걸어갈 수 있을지, 아직은 요원하기만 하다.




[작가의 말]
글 : Kyle Lee (https://brunch.co.kr/@kylelee)
“일러스트에 있는 저 다람쥐가 저래요. 제가 저런 표정을 하고 있대요.”

그림 :
매이 (instagram : @maywithmayday)
"안녕하세요, 새앙쥐입니다. 주식은 라즈베리예요. 해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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